먼저 출판 된 시집을 모두 수거하여 소거할 정도로 시에 대한 애착을 가졌던 원무현 시인이 이번에 각고의 노력으로 새 시집 [홍어](현대시, 2004)를 상재하였습니다.
그 동안 시하늘에서 열심히 시를 쓰고 앞장서서 시를 이끌어 오신 공로가 지대합니다. 저무는 2004년 연말 12월에 원무현 시인의 시집으로 시 낭송회를 가질까 합니다. 질긴 생애를 시 속에 담아 드러내고 있는 시 편들이 눈물을 자아내게 합니다.
시하늘을 사랑하는 회원님, 바쁘시더라도 시 낭송회에 참석하셔서 원무현 시인의 시세계에 몰두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시집을 여유있게 사셔서 이웃이나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겠지요.
-2004년 12월 17일(금요일) 오후 7시 30분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빌딩 지하1층 카페 스타지오
-회비는 20,000원이며 시집, 식사, 음료 및 다과가 제공됩니다.
-주차는 3시간 무료입니다.
*시편들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거미집
-원무현
누가 폐가의 찢어진 문풍지라 하는가
금세라도 파편이 쏟아질 것만 같은 금간 거울이라 하는가
벽도 지붕도 없이 활짝 열려 있는 집
알뜰살뜰 가꾸니 허공도 명당이다
낭하와 처마사이 투명한 집 한 채
아침저녁으로 이슬이 놀러와서는 눌러 앉고
가끔 물잠자리나 배추흰나비가 귀한 목숨을 맡기기도 하는 집
이 집 너머 속이 훤한 물길을 따라가면
할머니와 아버지가 삶을 내려놓은 집이 있다
달빛 아래 오롯이 앉은 벙어리어머니가
침묵을 풀어내 적요寂寥를 수놓던 집이 있다
내 유년의 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액자가 걸린
검은 꽃 피는 나무
-원무현
우물물 퍼 어머니 여름밤 무더위를 씻어드립니다
손등과 어깨선 가득 엎드려있던 꽃이 달빛 아래 까맣게 피어납니다
이승에서 저승의 꽃을 피운 나무가
칠십 년 세월 구석구석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의 악력握力을 말합니다
“얘야 숨이 멎는 순간까지도 꽃을 피워낼 게다
논밭을 일구며 무꽃 배추꽃 다섯 마지기 가득 벼꽃도 피워 봤지만
내 몸에 피는 이 검은 꽃만큼 곱지는 않단! 다
네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에 시들지 않을 꽃은 오직 이 꽃뿐이란다“
나무여,
당신 가지에 열리던 눈물과 웃음을
따먹은 자리마다 핀 것이 저승꽃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마는
야윈 어깨에 떨어지는 눈물,
이승을 밝히는 불꽃은 뜨겁고도 뜨거워
이 검은 꽃, 한 송이라도 태웠으면 좋으련만
여름밤 무더위가 우물을 다 비워도 식지 않을 듯 합니다
어머니의 물감
-원무현
막둥이에게 젖을 빼앗긴 젊은 아버지가
헛기침으로 별만 더듬다가 잠들게 한
그런 화려한 시절도 있지 않으셨냐며
어머니 없는 가슴을 씻어드릴라치면
아서라 아서 수줍음을 가리는 손사래사이로
그림 몇 장,
마른 호박잎처럼 언제 바스라질지 모를 몸에 간직한
내 소년기 유년기 신생아기
어느 곳 어느 순간에든 어머니가 곁에 있는
나의 성장기모습은 어머니가 젊음을 짜내어 그린 것이다
아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는 어머니여
그러나 당신의 물감은
몇 만년이 지났어도 지워지지 않는
알타미라동굴에 칠해진 짐승의 피보다 진하다
홍어
-원무현
시집간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은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 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걸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 할거네요
......
이제 밥걱정은 없으니 한 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길
-원무현
공원 매표소에서 이천 원을 주고 산 길이
해벽海壁 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태종대 자살바위 옆 2시 방향에 깎아지른 벼랑이 보인다
벼랑을 움켜쥐고 있는 몇 그루 동백과 소나무 발톱이 반짝인다
묘연했던 길의 행방이 보인다
벼랑 속으로 들어간 길
길은, 저리도 제 삶에 열심인 것들과
현기증을 견디고 있다
산복도로
-원무현
멈추지 않고 가다보면 하늘 문 앞일 것 같은
산복도로에 꽃핍니다
자갈치시장서 노점 하는 정순네 할머니
지난 겨울 빙판 길에도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오르내렸다고
어미 아비 여윈 일곱 살이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초경 치른 손녀를 보노라면
저것이 시집가는 거 보고 눈감을 수 있을라나
하루하루 안타까운 게 세월이라
늦은 밤길 소쿠리 가득 이고 가는 보름달이
자고 난 사이 남은 생이 슥둑 잘려나간
초승달을 인 듯 무겁지만
정순아 내 새끼야 아직은 거뜬하다고
산복도로 담벼락 구석구석 개나리 진달래 핍니다
십구공탄 구멍구멍 고인 어둠 뚫으며 피는 불꽃처럼.
몸의 말 1
-원무현
물도 가끔은 流水에 각을 그린다
그럴 때마다 솟는 은사시나무는
강의 쉼 없는 흐름에 뿌리 닿은 수직이다
수평과 수직이 이루는 세계는
한없이 포근해
우듬지 뿐 아니라
밑둥치까지도 새들의 거처가 된다
사내의 무릎에 누워 새들의 의자를 바라보는 여자는 지금
눈이 흔들의자처럼 평온하다
길도 더러는 방향을 틀어 모퉁이를 제공한다
길모퉁이가 지친 등짝의 휴식을 기억하며 街燈을 켜고 있다
강이든 길이든
흐르는 것들이 잠시 발을 빼 외곽을 세우는 것은
의자가 필요로 한 때를 아는 까닭이다
코끼리거북의 산란기
-원무현
끝이 없는 산고가 해변을 채우고 나면
두어 선택받은 생명만이
태양의 따듯한 혀가 등을 핥는
축복 온몸 넘치게 받으며 大海로 大海로
싸리꽃 같은 백사장을 밟으며 갈 때
바닷바람 한줌 등 짝에 실어보는 거
생의 시작과 끝이 한나절도 못 되는 거
그런 삶이 숙명인 줄 알아
유리조각 재생공장 같은 모랫벌 속에서
우우우 밀려오는 파도를 재우고
들려오지 않는 저녁 종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라져 가야만 하는 흔적들아
너희 쓸쓸한 최후를 위해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생존법칙이 새겨진 눈물뿐이구나
아 지금은 몇몇의 영광에게 보낼 박수를 멈추고
등골에 저며오는 저 아픔들과 함께 하기 위해
더 깊은 고통의 바다로 가야만 하는, 산란의 때.
묻지 마라
산다는 게 한 편의 연극이라는 둥
일장의 춘몽이라는 둥 가볍게도 떠벌리며
노을 속으로 뛰어드는 낙엽이여 묻지 마시라
이 차가운 겨울에도 지구가 스스로 돌아가는 힘을
잠시도 풀지 않고 고단해야만 하는 이유를
묘지학교에서
-원무현
모래알이나 바람결에도 학교는 있어
더러 사람들이 눈 초롱 귀 쫑긋한다면
세상 제일로 들어가기 어려운 곳은
묘지학교다
목숨을 내놓은 자 만이 입학이 허용되는 곳
산 자들은 명절 때마다 몰려와
유세차간지모월간지삭모월간지효손감소고우
언어의 제전을 펼치며 교정을 발칵 뒤집어놓지만
온몸을 봉한 채
발끝도 나란히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학생김해김공학생경주최공학생원주원공학생전주이공
학생안동권공학생동래정공학생제주고공학생현풍곽공......
저 빼곡한 침묵들에게서 무엇을 배웠는지
적막한 이곳에도
사월이 되면 목련이 펑펑
소리 없이 날던 장끼가 꿩꿩
이곳에서 문지기를 하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떨어뜨리고 간 흔적을 수업료로 대납하며
묵묵히 적막의 페이지를 넘기고
고요의 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상 가장 허무한 것은 삶이 빠져나간 주검이 아니라
침묵이 들어 갈 틈도 없었던 삶이었다’
교훈! 을 되새기며 묘지학교 동문이 되어가고 있다
水深만이 물의 깊이가 아니다
-원무현
先史人의 흔적이 또렷이 각인되는 반구대암각화를 지나면 한실마을 수몰지구다. 일몰을 눈동자에 담으며 적요의 깊이를 더해 가는 검둥개처럼 곳곳에 웅크린 돌담의 흔적에 엎드려 맡는 물 냄새는 깊다. 담수한계선을 넘은 오랜 가뭄에 밀밭은 불타고 댐의 수심은 지금 바닥이다. 탁한 에메랄드빛 수면을 손날을 세워 밀면 검은 바닥이 드러난다. 이미 물이 완전히 말라 갈라진 뒤꿈치를 드러내는 근처바닥에는 깨진 옹기조각이 꽂혀있고 부러진 안테나가 감람나무가지처럼 반짝인다.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얕은 물의 깊이, 나는 물의 깊이를 수심으로만 측정해왔었다. 능선을 넘어온 바람이 낮게 깔리어 수면에 일으키는 잔잔한 물결이 눈부신 것은, 미나리를 깔아놓고 언양 버스터미날 후미진 구석을 이 땅의 지층으로 올려놓는, 노파의 골 깊은 주름에 반짝이는 땀방울을, 먼 여로에 꺼지지 않는 한 점 불빛으로 남기기 위해 이미 쓰여진 문장을 지우고 지울 때, 백지 위를 물결처럼 밀려나가는 지우개의 흔적을 닮은 까닭이다.
깊이 일만 길 먼바다의 水深만이 물의 깊이가 아니다.
廢鑛
-원무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서 무엇을 캐려고 한 해 서너 번 어머니 몸 속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달빛 쏟아지던 그 밤, 들창너머 푸르스름한 아버지 방에는 어머니 열리는 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높아질수록 벙어리 내 어머니도 머지않아 말문이 열려서, 아 말문은 열려서, 장날 동무들 틈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아들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반가워하리란 믿음이 단단해지고. 나는 한줄기 서광에 휘감겼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자꾸만 어머니의 입을 틀어막는 것일까. 가갸거겨. 사람의 말을 캐기 위해 바윗덩이 같은 어머니를 여는 것이 아니라면. 아버지는 무엇을 캐느라 이 깊은 밤 거친 숨을 몰아쉴까. 어머니를 건넛방으로 돌려보낸 아버지는 방금 까지도 암석을 뚫다가 엔진이 멎은 착암기처럼 열이 가시질 않는지 거푸 두레박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곯았다. 무엇일까. 꿈에서조차 엔진을 켜고 찾아 헤매는 아버지의 鑛脈은.
이듬해초여름 외할머니가 금동아 내 금동아 동동을 태우던 울음도 우렁찬 막내 동생을 내려놓으셨다. 삼우를 마친 뒤 "일곱 형제 앞길 막아서 손에 쥔 고등학교 졸업장도 팽개치고 데릴사위로 장가든 날부터 막장인생이었다"며 문경 어느 탄광으로 훌쩍 떠난 아버지가 다섯 해나 지난 뒤에야 잔기침과 허리통을 끌고 돌아오실 때까지, 어머니는 자면서 가끔 짓던 미소마저도 닫고 쓸쓸해져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오신 그 해가 지나도 끝내 말문이 트이지 않고, 나는 장날이면 교정에 홀로 남아 빈손으로 귀향하는 초라한 광부처럼 어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동생이 "버버리 버버리" 어머니를 놀려먹던 악동들을 향해 던진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발음도 분명한 사람의 말이 돌멩이가 되어 날아갔다.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를 닫아놓고 막장까지 가서 찾아 헤매었던 아버지의 鑛脈은
이제는 당신의 꿈도 운명도 한줌 재로 닫아버린 아버지여
어머니는 정녕 폐광이었을까요.
돌북
-원무현
암벽을 뚫어서 연 나제통문
오늘은 무주 사는 김씨와 김천 사는 황씨가 지나갔다
지난 봄 자기네 뒤꼍에 화사하던 꽃들 저만 보기엔 쪼까 거시기했다고
지난 겨울 자기네 처마에 달디단 곶감 저만 먹기엔 우째 쫌 그랬더라꼬
나제통문은 앞뒤가 훤히 열린 북이다
꽃씨 몇 톨 묘목 몇 그루에 서녘도 붉게 물들이며,
천년을 두들겨도 찢어지지 않는
*원무현 시집 『돌북』해설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텅 빈 굴뚝들
-최 영 철(시인)
세상에 이유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지만 이유 없는 시인 또한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시인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들인 그 동안의 공덕, 이를테면 그를 낳아 기른 부모, 성장기의 시적 감수성을 배가시켰을 자연의 향기와 빛깔, 생의 비의를 가르쳤을 아름다운 시와 그림과 음악, 주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역할들. 그리고 한 사람의 시인을 위해 부여된 수많은 인연들, 그것은 때로 혹독한 불운이기도 했을 것이며 찢어지는 가난과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거듭되는 행운과 부족할 것 없는 환경과 승승장구의 갈채 속에서 한 사람의 시인이 탄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불운의 고비를 넘어온 시인의 노래와 행운의 탄탄대로를 달려온 시인의 노래가 같을 수는 없다. 앞의 질감이 말랑말랑하고 달콤하다면 뒤의 질감은 딱딱하고 쓰디쓸 것이다. 앞의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속성이 너무 부드럽고 연약해서 쉬 변질되거나 읽는 이의 판단을 혼미하게 할 수 있다면 ! 뒤의 딱딱하고 쓰디쓴 속성은 씹어 삼키기에 불편하지만 읽는 이의 현재를 반성하고 각성하게 하는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가 환기하는 순간들은 대체로 안온한 시간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어떤 기억들이다.
원무현의 이번 시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은 시인 자신의 성장사와 무관하지 않다. 시인의 성장기는 평화로운 가족공동체의 붕괴와 농경사회의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할 즈음이어서 근대화 과정이 남긴 파행과 질곡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는
눈 내리는 밤이면 고구마를 깎다말고
굳은살이 박힌 뒤꿈치를 묵묵히 깎으셨다
이른 새벽 정미소 가는 길이 얼어붙어 있어도
아버지 발자국을 밟으며 나는 즐거웠다
아버지는 왜 눈 내리는 밤이면 뒤꿈치를 깎으실까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 동안
눈은 녹고,
그 길에
꽃상여가 요령소리를 뿌리며 지나갔다
아무런 흔적도 없는 하얀 길 위에
첫발을 올려놓으시던
아 아버지
- 「아버지의 예의 1」
가부장적 농경사회에 있어서의 아버지는 그 자체로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표식이었다. 떠도는 유목민의 자식 이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힘을 익히며 단련되어 간다면 농민의 아들은 뿌리박혀 참고 견디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런 의미에서 유목민의 부자관계는 극복을 전제로 하고 농민의 부자관계는 답습과 순종을 전제로 한다. 유목사회의 부자관계는 새로운 도전을 향해 함께 열려 있지만 농경사회의 부자관계는 묘한 애증으로 점철되어 있다. 농투성이의 울분이 자식을 통한 보상심리로 과다표출 되기도 하고, 아버지로 대표되는 대책 없는 삶의 방식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끊임없이 들끓기도 한다. 눈 내리는 밤에 '고구마를 깎다말고/굳은살이 박힌 뒤꿈치를 묵묵히 깎'는 아버지의 행위가 농투성이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도려내기 몸짓이라면, 정미소로 가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평화롭게 성장하고 있는 어린 나의 한 단면이다. 그 길에 뿌려지는 꽃상여는 고단한 농경의 터전에 뿌려지는 눈물과 한숨으로 곧 다가올 결별을 예감하고 있는 장면으로 읽힌다.
추곡수매장 가신 아버지 돌아오시네
논과 논 사이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두고
감자밭 고구마밭! 둘러 둘러 오시네
품삯커녕 비료값도 안나와
빚만 저축한 한해 농사에
아무리 삭히려 해도 자꾸만 치미는 말
"속았다. 속았어." 그 말
전례 없이 풍작을 이루고도 남은 힘이 있어
움벼를 밀어 올리는
저기 여섯 마지기 논이 행여나 들을까
추곡수매장 가신 아버지
멀리 멀리 둘러서 오시네
-「아버지의 예의 2 」
이 시의 화자는 앞의 시에 비해 좀더 성숙된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른 새벽 정미소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얼어붙은 길을 밟으며 가던 「아버지의 예의 1」에서의 화자는 눈 내리는 밤마다 뒤꿈치를 깎던 아버지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한 철부지였지만 「아버지의 예의 2 」에서는 아버지의 절망을 읽을 줄 아는 성숙한 소년이 되어 있다. '논과 논 사이 가로지르는 신작로를 두고/감자밭 고구마밭 둘러 둘러 오시'는 아버지의 행동에서 "속았다. 속았어."라는 절규를 읽을 줄 아는 소년으로 성장해 있는 것이다. 품삯은커녕 비료값도 안 되게 빚만 저축한 꼴이 되어버린 한 해 농사에 낙심하고 있는 아버지를 고스란히 읽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 다음 행으로 진행되면서 아버지의 낙심은 벼들의 희망과 겹쳐지면서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추 곡수매가의 하락으로 아버지의 농심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전례 없는 풍작을 이루고도 힘이 남아도는 나락은 이미 베어낸 그루에서 움터는 움벼를 밀어 올릴 만큼 왕성하다. 아버지는 그런 왕성한 기운으로 잘 자라준 여섯 마지기 논의 나락에게 낙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논과 논 사이를 가로지른 신작로를 두고 감자밭 고구마밭을 둘러 둘러 집으로 가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아버지의 예의」연작시를 통해 쇠락해 가는 농촌현실과 가부장의 한 단면을 그려내고 있고 그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시인의 성장사를 기록하고 있다.
우물물 퍼 어머니 여름밤 무더위를 씻어드립니다
손등과 어깨선 가득 엎드려있던 꽃이 달빛 아래 까맣게 피어납니다
이승에서 저승의 꽃을 피운 나무가
칠십 년 세월 구석구석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의 악력握力을 말합니다
“얘야 숨이 멎는 순간까지도 꽃을 피워낼 게다
논밭을 일구며 무꽃 배추꽃 다섯 마지기 가득 벼꽃도 피워 봤지만
내 몸에 피는 이 검은 꽃만큼 곱지는 않단다
네 아버지 만나러 가는 길에 시들지 않을 꽃은 오직 이 꽃뿐이란다“
나무! 여,
당신 가지에 열리던 눈물과 웃음을
따먹은 자리마다 핀 것이 저승꽃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마는
야윈 어깨에 떨어지는 눈물,
이승을 밝히는 불꽃은 뜨겁고도 뜨거워
이 검은 꽃, 한 송이라도 태웠으면 좋으련만
여름밤 무더위가 우물을 다 비워도 식지 않을 듯 합니다
-「검은 꽃 피는 나무」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비교해 보면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감정은 보다 애잔하다. 이 시에 동원된 소재들, 우물 꽃 달 뿌리 나무 눈물 등은 여성성의 완성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대표할만한 소재들이다. 거기에는 오랜 인내와 희생과 생명의 기운이 충만해 있다. 야윈 어깨에 떨어지는 눈물은 흘러흘러 우물이 되어 고였고, 숨이 멎는 순간까지 꽃을 피워낼 수 있는 힘은'칠십 년 세월 구석구석을 움켜쥐고 있었던 뿌리의 힘이었다. 그런 우물물을 퍼서 어머니의 여름밤 무더위를 씻어드리는 화자의 행위는 어머니의 눈물로 어머니가 살아온 한 많은 세월을 씻어내는 치유 행위이다.'여름밤 무더위'는 어머니가 살아온 뜨겁고 고달팠던 지난 시절일 것이며 그런 씻김 행위를 통해 그 동안 '손등과 어깨선 가득 엎드려있던'어머니의 꽃이 '달빛 아래 까맣게 피어 '난다. 그러나 그 꽃은 찬란한 자태와 향기를 자랑하는 꽃이 아니라 '눈물과 웃음을 따먹은 자리마다 핀' 저승꽃이다. 그렇지만 그 저승꽃은 노화 현상이 낳은 흉한 자욱이 아니라 어느 꽃보다 고운 꽃이며 저 세상으로 지아비를 만나러 갈 때에도 시들지 않아야 할 꽃이다. 그럴진대 그 꽃이 어찌 수시로 피었다 지는 무꽃 배추꽃 벼꽃에 비길 수 있으랴.
저물 녘 해가 미루나무에 걸터앉아 햇살을 헹굽니다
어릴 적 물고기가 빠져나간 손가락사이로 노을,
노을이 올올이 풀려서 떠내려갑니다
누런 광목 천 하나로 사철을 건너신 어머니
어머니께 꼭 끊어드리고 싶었던
비단 폭 같은 냇물을 움켜쥡니다
이제는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텅 빈 굴뚝을
우렁우렁 넘어오는 부엉이 울음이 맵습니다
-「저녁 무렵」
이 시의 시간적 무대가 된 저녁 무렵은 시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의 생과 그런 어머니가 건사해온 한 가족의 질곡과 동일 선상에 놓이는 공간이다. 미루나무에 걸터앉아 햇살을 헹구는 저녁 해는 한 시절을 고달프게 통과해온 어머니의 지난 시간을 아우르고 위! 무하며 조금씩 기울고 있다. 그 시간은 많은 기대와 설램을 동반했던'어릴 적 물고기가 빠져나간 손가락사이''노을'로서의 시간이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리거나 다시 붙잡을 수 없고 막바지 시간으로서의 '노을'은 '올올이 풀려서 떠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속절없이 기우는 노을 속에서 시인은 '누런 광목 천 하나로 사철을 건너신''어머니께 꼭 끊어드리고 싶었던/비단폭 같은 냇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갈망은 다시 되돌릴 수도 움켜쥘 수도 없는 헛된 미망이었을 것이다. 다음 행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제는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는 텅 빈 굴뚝'이 그런 사실을 잘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 회한 때문에 '우렁우렁 넘어오는 부엉이 울음'은 맵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 상실감은 다른 시 「파종」의 후반부에서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눈물이 떨어집니다/산두 심으면 산두 싹/보리 심으면 보리 싹 내놓던/이 투명한 어머니영토에서/더 이상 무슨 싹이 나길 바라겠습니까마는/눈물을 심습니다//철 늦은 파종입니다
꽃집 모서리 앉은뱅이간판 밑에 엎드려 두리번거리던
길은 달동네 층층계단을 하얗게 오른다
자갈치시장 좌판과 이십사시 당구장에서 나와
세탁소 앞을 지나는 두 쌍 발자국 사이는 멀어서 오가는 도둑괭이 발자국에 경계가 없다
발자국이 호떡집을 지나 과일 집에 이르러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얽히고 설킨 발자국에 달빛이 고물거린다
한참을 그렇게 가던 발자국이
담배 집 모퉁이를 돌더니
열쇠 집 옆 계단 길 밑에서 나란히 멈춘다
두 쌍의 발자국이 코를 마주한다
한 쌍의 발자국이 깊숙이 찍힌 첫 번째 계단에서
다른 한 쌍의 발자국이 사라졌다
한 쌍의 발자국이 등에 업힌
그들의 귀가를 읽어 줄 누가 또 있는지
하늘은 그해겨울이 가기 전 다시 한번 눈길 하얗게 펼쳐놓았다
-「두루마리」
근대화 과정의 이농 현상은 사실 이농이 아닌 실농에 가까웠을 것인데 이 시의 화자 역시 그 언저리에서 어느 날 도시 변두리로 거처를 옮기고 있다. 비료값도 안나오는 농사를 작파하고 도시로 흘러들었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궁핍한 상실감에 빠져 있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흘러온 그들의 삶은 이렇다할 근거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하루아침에 유목민의 삶으로 탈바꿈한 양상이었다. 이 시를 관통하는 두루마리라는 제재는 등 떠밀려 합류한 유목민의 대열에 휩쓸려 가면서도 농경민의 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어떤 몸부림으로 인식된다. 생경한 도시 유민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농경의 자식으로 가닥을 잡으려는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끈끈한 연대감을 찾아 헤매는 화자의 시선은 달동네 층층계단을 지나 자갈치시장 좌판과 이십사시 당구장과 세탁소와 크고 작은 가게들을 지난다. 그 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던 두 개의 발자국이 계단 길 밑에서 나란히 멈추고 두개의 발자국은 하나가 된다. '한 쌍의 발자국이 등에 업힌'그들의 귀가는 행복한 합일을 향해 나아갔던 가난했지만 훈훈했던 농경사회의 원형을 지향하고 있다.
고향 옛 집터다
뒷간 옆에 우물 있고
우물 옆에 뒷간 있다
우물에 돌멩이 던진다
똥통에 똥 덩이 떨어지는 소리 우물 가득 울린다
똥통에 똥 덩이 던진다
우물에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 똥통 가득 출렁인다
뒷간 옆에서 마시는 우물물이 시원시원 넘어간다
털끝만큼의 시름도 없다
우물 옆에서 보는 똥이 시원하다
우물과 뒷간 사이 뒷간과 우물 사이
석류나무가 멀뚱멀뚱 꽃눈 연다
여기가 내 집이었다
별 하나 꼬리를 태우며 사라지는 밤하늘
저 아득함 뒤에 있는 화엄이 넘 뵈는
-「화엄에 들다」
인간의 시간은 늘 절대적이지 않다. 미래를 꿈꾸면 과거는 늘 볼품 없을 것이며 현재의 여건들이 상실과 결여를 동반한다면 과거는 늘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도시에서 맛본 상실의 아픔은 지나간 시간을 아름답고 넉넉한 공간으로 확대 재생산해낸다. 실재했던 궁핍하고 초라한 시간과 공간은 넉넉하고 고운 기억으로 환기된다. 그런 기억의 효과에 힘입어 과거는 위와 같은 설레고 들뜬 가락으로 변주된다. 그 가락에 힘입어, 마시는 물을 공급하는 우물과 배설하는 똥을 받아내는 뒷간이, 뒷간 옆의 우물과 우물 옆의 뒷간으로 흥겹게 하나가 된다. 또 '똥통에 똥덩이 떨어지는 소리'와 '우물에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가 하나가 된다. '뒷간 옆에서 마시는 우물물이 시원시원'하고 '우물 옆에서 보는 똥이 시원'하다. 그렇게 '우물과 뒷간 사이 뒷간과 우물 사이'에서 '석류나무가 멀뚱멀뚱 꽃눈'을 틔웠고 우리 역시 거기서 나날의 힘을 충전 받았다. 그런 흥겨운 한때를 재현하고 있는 이 시의 가락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먹고 배설하는 것이 하나였던 삶을 살았다. 그것이 자연의 평화로운 순환이었다. 먹고 배설하고, 배설한 것이 다시 먹을 것을 키우는 이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순환고리를 거역하면서 인간은 지금 갖가지 재앙에 부닥치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걸 김미소」에서 시인은 그렇게 잃어버린 우리의 감각에 대해 '가짜와 진짜를 한눈에 식별해내는 예리한 시각도/ 유행을 미리 예감하는 직감도/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기능은 정지되고/모두들 침묵이 말인 석상이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셀러리맨 원씨의 하루」에서는'풍선은 목이 졸리고서야 허공에 제 길을 낼 수 있듯/나의 하루는 넥타이로 목을 졸라맨 뒤에야 열린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길어 올리고 내리는 두레박이 되어 있는 김미소 씨나 추락하지 않으려고 목을 다잡아 매며 버둥거리는 셀러리맨 원씨나 모두 지금 현재 우리들의 우울한 자화상들이다. 원무현의 이번 시집은 농경사회의 붕괴에서 소시민의 파편화 된 삶에 이르는 지난한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이제 그 긴 여정을 추슬러 자신의 시야를 어느 한 정점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앞으로 서야 할 지점은 아무래도 이 거대도시의 우울한 뒷골목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정모는 연례적으로 열리는 시하늘 가족 모두를 위한 행사라서 그럴 수도 없고 시집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여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멀리서라도 마음으로 시집 사기로 지원해 주시면 좋지요. 조촐하게라도 그간의 정이나 공적을 생각해서 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첫댓글 이번에는 주변인 시동인들과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창재 님 주선하시지요. 시집 상재를 축하합니다.
원무현 시인! 드디어, 기다리던 시집이 나왔군요. 땀과 노력의 결실인 시집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원무현시인 시낭송회로 한다하니 더욱 가고싶고...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시집 빨리 보고 싶네요.^^ (12월엔 일이 많아서 가지는 못할 것 같아 죄송하고 아쉽습니다;;)
딱 걸렸네요 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요 축하드립니다
누가 제 졸작을 난도질 좀 해주세요 피투성이로 만들어주세요
뒤늦은 생각이지만 12월보다는 1월 정모때 원시인님 시집상재 시낭송회로 하면 좀 다녀올 수 있을텐데요..아무래도 12월은 좀 갈 수 없어서 마음이 조바심만 납니다.모든일이 그렇군요....
원시인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빨리 보고 싶네요.
정모는 연례적으로 열리는 시하늘 가족 모두를 위한 행사라서 그럴 수도 없고 시집이 나오는 시기에 맞춰 여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멀리서라도 마음으로 시집 사기로 지원해 주시면 좋지요. 조촐하게라도 그간의 정이나 공적을 생각해서 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원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그날 지척에 있으니까 시간이 허락되면 가겠습니다
원무현 시인 축하합니다..그날은 한잔 사는거지요?^^
원무현 시인님 축하합니다. 몇 편의 시를 읽고 가슴이 징해 옴을 느낍니다.
축하드립니다. 가슴이 아련해오네요.
원무현 선생님 축하합니다. 제가 항상 보고 배웁니다. 축하합니다.^^
우와...꼭 사보겠습니다...베스트셀러를 위하여 ~ !!
시 낭송회에 오셔서 사는 게 더 좋습니다. 이유는 그 시집의 시인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함께 한다는데 그 까닭이 있습니다.
저야 가고싶지만...ㅡㅜ;; 가우님...토요일에 하면 안되는건가요...?? 흐흑... 1월달부터는 갈 수 있어요...^^;;
축하~! 축하합니다~!!! 그 날 참석은 어렵겠으나 진심으로 축하드리오며 익산의 서점에서 원 시인님의 아름다운 영혼과 만나볼까...합니다.
시집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토요일 경북문협행사에 가야하니 금요일엔 참석이 어려울것같네요.이번엔 꼭 시낭송회 참석을 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시 낭송회는 금요일에 정해져 있어 미안합니다. 1월 정모는 토요일에 합니다. 1월 15일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 땐 꼭 오세요.
대구에 살고있으니 가보고싶어요.아는 사람이 없어서 조금은 서먹하지만 참석하겠습니다.ㅡ윤정강 ㅡ
꼭 오셔요. 금혜 님, 저도 처음엔 아는 사람 한사람 없는데 그냥 시가 좋아서 참석했었지요^^
원무현 시인님의 많은 작품들을 좋아했었는데 그 중에서도 시인님게서 진짜로 아끼는 작품만을 모아서 상재하신 것 같습니다.~~ 저도 서점에 가서 구입해야 겠네요.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오며.....~~
*축하드려요! 원시인님^^ 가서 뵙고 싶은데...지난번에도 서로 시간대가 빗나가서 뵙질 못했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강순태시인을 뵙고싶은데요 꼭 오시소^^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으로 소주 한 잔 올립니다^^
원무현 시인님!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다시 읽어도 가슴바닥을 퍼올리는 뭉클한 시선들..... 무게감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