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盆栽
오 성 찬
아버지가 처음 분재를 시작한 것은 오래 앓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겨울을 넘긴 이듬해 봄이었다. 무슨 병으론가 그늘의 풀처럼 여위어 오래 앓던 어머니는 어느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눈 녹듯 스러져버렸다. 그리고 성격이 거센 아버지는 장례식을 마치기까지 아이고, 아이고 목청 돋궈 울었지만 오히려 일을 하나 끝냈다는 듯 모든 거동이 시원스러웠다.
“강이네 아방은 오널 얼굴이 더 훤현 거 같은 게…….”
“게메 (그러게) 목소리도 탁 트이고…….”
상복을 입고 부엌가에 앉아서 음식을 장만하며 속닥거리는 동네 아낙네들의
이 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사나이 놈덜이란 다 한속이여, 각씨 죽는 머리맡에 앉아서 새각씨 얻을 생각부터 허논 놈덜…….”
목소리를 걸걸하게 터놓은 것은 경오네 할머니.
“에이 할망도…… 좀 조그맣게 말협서…….”
“크난 어떵. 그른 말 헴서? 돈 보고 장개 든 놈이 각씨 죽어시니 잘 됐즈 …….”
경오할머니의 목소리는 마당에까지 들릴 만큼 켰다.
“불쌍한 건 새끼덜뿐이여. 새끼덜만 불쌍해여…….”
경오할머니는 떡그릇을 들고 문지방을 넘으며 퍼더버리고 앉은 나를 보자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이 하는 이야기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그제도 밖에는 소복소복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리없이 내린 눈은 기와지붕의 골에, 정원의 동백나무 이파리에 내리며 멋쌓였다.
“……·거 눈 한번 푸지게 오는군. 눈이 오면 보리는 풍년이 들주만 늙은이덜 하영(많이 ) 죽어…….”
마루의 화로가에 앉아서 장죽에 눌러 담은 담배를 죽이던 시골서 온 친척 할아버지가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한마디했다. 우리는 이런 눈속에 어머니의 시신을 공동묘지에 묻었다. 하관을 할 때는 장막을 쳤는데도 눈이 날아들어 막 파헤친 생 흙더미 위에 나풀거리며 앉았다가 스며들었다. 나는 어머니가 오죽 추울까,
유독 추위를 많이 타던 연약한 몸뚱이가 오죽 추울까, 그것만 걱정되었다.
아이고, 아이고, 눈쌓인 공동묘지에 아버지 울음소리는 크고 공허하게 들렸다. 아버지는 가끔 우리들더러도 울라고 했는데 형들은 소리내어 우는 시늉을 했지만 나는 소리내어 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시신을 공동묘지에 묻고 온 아버지는 묘지에서 소리내어 울던 것과는 달리 그전보다 훨씬 표정도 밝아지고 활동적이 되었다. 어머니가 앓아 누웠을 때는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우리들을 쥐어박기도 했는데 그 버릇도 많이 누그러지고 그동안 밀린 여러가지 집안일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게 돌아갔다. 특히 아버지는 뭔가 정리할 일이 있다면서 읍사무소에를 들락거리고 어떤 때는 밤에 집을 비울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우리들은 우리들대로 제각각이었다.
“처가에서 물린 재산 정리하느라 정신없군…….”
“쯧, 이제 살판 난 거지 뭐…….”
한번은 밤에 아버지를 찾아왔다가 헛걸음을 친 동네 아저씨들이 골목을 나가며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들었다. 그들의 시선이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는 우리 형제들을 보며 슬며시 내리깔렸다.
그리고 그해 봄, 아버지는 분재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까 아버지는 뭉툭뭉툭 가지가 잘려 동체뿐인 동백나무 화분들을 마당가에 늘어놓고 일상 신이 났을 때의 버릇인 허리에 손을 짚고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손을 허리에 짚고 서 있는 뒷모습을 보자 나는 뱀을 보았을 때처럼 움찔했다. 더구나 중동에서 뭉툭뭉툭 잘려 동체뿐인 동백나무 화분들을 보자 무지스런 창용이가 돌을 던져 도마맴을 동강냈을 떼처럼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려고 얼른 댓돌에 발을 올려놓았다.
“강이냐? 학굘 다녀왔으면 다녀왔음니다, 인살 해야지…….”
아버지는 기어코 나를 댓돌 아래로 끌어내렸다.
“학교……· 다녀 왔읍니다…….”
나는 간신히 인사를 했다.
“그래야지. 인살 꼭꼭 해야능 거여. 그건 그렇고 어떠냐, 아버지의 이 분재
가……·근사하지?”
나는 아버지의 시선이 지시하는데 따라 분재 화분 여남은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마당가에 섰으나 차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나의 마음은 마치 복이 잘린 사람들을 세워논 앞에 선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차마 그런 말을 아버지 앞에서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내가 내 속의 말을 곧이곧대로 했을 경우 아버지는 지체없이 그 망치 같은 주먹으로 내 대갈통을 쥐어박았을 것이었다.
나는 말없이 서서 마당가 담장을 따라 줄줄이 놓여 있는 분재 화분들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뭉툭뭉툭 가지들이 잘려 있는데 굵은 가지들은 톱질했던 자국마저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런 분제 앞에 서서 나는 문득 하관을 하던 당시 어머니의 관을 떠올렸다. 지금쯤 그 시신은 햇살이 따사로와지니까 썩기 시작했을 거라. 나는 어물어불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다가 볼맞은 짐승이 굴로 들어가듯 방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또 불러내기라도 할까봐 숨을 죽이고 있었다.
이후부터 아버지는 분재에 미쳤다. 어머니가 오래 앓기 전 아버지의 성격은 그랬었다. 아무거나 한가지를 붙들면 미친 듯 거기 빠졌으며 남의 눈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장기간의 어머니 병환으로 그럴 겨를마저 없었던 것인데
다시 그 증상이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는 뚜껑에 괴상스런 땅딸이 분재사진이 찍혀 있는 「분재백과」라는 책을 구입해다 놓고는 붉은 색 연필로 군데군데 선을 그어가며 밤 늦게까지 그걸 읽었다.
나는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책속에 그가 색연필로 선을 그어논 곳 몇 군데를 훔쳐보았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 씌여 있었다. ●곧은 줄기――한 줄기가 똑바로 자라서 일어난 모습으로 웅대한 느낌을 줌. 줄기는 위를 향해 차츰 가늘어지고, 가지가 갈라져 자연스럽게 나와 있고 뿌리 뻗음이 팔방으로 안정된 것. ●기울어진 줄기――줄기가 어느 쪽이든 기울어져 있는 형태, 가지는 전후 좌우로 나와 있음. ●두 갈래 줄기――밑뿌리부터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자라서 원줄기와 옆줄기가 굵기와 크기가 균형이 적절하게 주와 종을 이루는 것. 이외에도 그는 ●그루 서기 ●모양목 ●뿌리 이여어 ●당겨심기 ●돌붙임 ●싸리비 서기 등의 설명문에 붉은 줄을 그어놓고 있었으며 그 끄트머리에는 아버지 특유의 갈겨쓴 글씨르 〈이것들이 분재의 모범임. 꼭 이렇게 만들 것. 〉이라고 주서(朱書)해놓고 있었다.
아버지는 「분재백과」 속의 이런 이론을 그대로 해보려는 듯 새벽같이 륙색을 걸머지고는 산과 들로 나가 싸돌아다니다가는 어두워져서야 돌틈에 끼어 잘 자라지도 못하고 괴상하게 생긴 나무들만 몇그루 륙색에 넣어 짊어지고는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저넉도 먹는둥 마는둥 전기를 마루로 내걸게 하고는 캐온 분재용 나무들을 가지와 뿌리를 자르고, 미리 마련해둔 분에 체로 쳐뒀턴 흙들을 넣어서 다독거려 심는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이끼로 덮기도 했다.
이런 날은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들도 잠을 설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분재
를 만들 때 우리들을 불러서 지켜보게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이 학습장이 떨어져 사야겠다면 심지어 뚜껑 앞뒷면까지 죄다 쓰라고 돈 십 원 주는 걸 아끼면서 화분들은 골고루 사다가 쌓아놓는 것이었다. 둥근 분, 사각 분, 육각 분, 북처럼 생긴 분, 긴 분, 짧은 분, 많은 분을 갖춰뒀다가 나무에 걸맞는대로 심었다.
그는 산에서 캔 나무들을 어떤 것들은 뿌리를 수건으로 싸고 가지나 이파리들이 다치지 않게 새끼로 엮어서 륙색에 넣어가지고 왔으며 어떤 나무들은 산 흙을 붙여서 파내었기 때문에 무거워서 낑낑거리며 지고 오기도 했다. 그런 나무들을 구부러진 뿌리는 바로 세우고 상뿌리는 작은 뿌리 아래서 바싹 잘라 털뿌리들이 번성하도록 했다.˙
거기다 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캐오는 것이 산림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산감(山監)들이 픽 두려운가보았다. 륙색에 담기 어려운 큰 나무들은 사방 가지들을 무참하게 잘라내고 동체만을 담아 왔는데 가끔은 산감을 만났으나 용케 피한 얘기들을 자랑처럼 떠벌렸다. 그런 끝에는 우리들더러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이 나무들은 아버지가 묘목으로 키워 자란 것들이며 절대로 산에서 캐온 것들이 아니여, 알았어 ? 누가 와서 물으면 꼭 그렇게 대답해야 해…….”
형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게 어디 당키나 한 소리인가. 저 무참하게 중동에서 잘려 동체뿐인 나무들이 어린 묘목 때부터 집에서 키운 것이라니…… 그래서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아부지, 그렇지만 그걸 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수과?”
“압다. 그새끼, 젤 꼬맹이가 말썽을 부리네…… 그렇다면 그런 줄이나 알 것
이지…….”
아버지는 퉁방울 눈을 부라리고 머리 한 올 없는 대머리를 뒤로 쓸어올렸다. 이것은 그가 아이들에게 부당한 것을 지시하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 때 취하는 버릇이었다. 그리고 그의 망치 같은 주먹이 내 뒤통수를 탁 쳤다.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그는 산에서 많은 나무를 캐다가 화분에 심었지만 그것들이 다 사는 것은 아니었다. 사는 것보다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많았다. 그렇지, 산다는 게 기적이지. 몸뚱아리도 뿌리도 사방 게 다리 무지르듯 잘라놓고 좁디좁은 화분에 억지로 담아 꽂아놨으니 살 까닭이 없었다. 그는 하루 두 번씩 아침 저녁 호스를 대고 물을 뿌려주는 등 부지런을 피웠으나 죽을 것은 어쨌든 죽었다.
죽은 것들은 할 수없이 집 뒤꼍의 빈터에 쌓아놓았다. 가지와 뿌리들을 무지른 채 말라 죽은 나무들, 그것들이 뒤뜰 한 쪽에 산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언젠가 형들이 보는 잡지에서 어느 나라든가 포악한 군대가 사람들을 꿰미로 옭아놓고 무더기로 죽여버려서 나중 해골들만 마치 장작들을 차곡차곡 쌓아논 듯이 남아있는 걸 보았는데 이 죽은 나무들의 형해 앞에 설 때마다 그때 그 징그러운 사진이 머리에 떠오르곤 했다.
아버지는 오로지 산에 나무를 캐다가 분재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울타리 안 텃밭을 골라 상(床)을 만들고 뿌리꽂이, 잎꽃이, 줄기꽂이 등 삽목과 접목도 해보는 것이었는데 그중에도 특히 부름접법의 접목은 신기한데다 뭔가 깨닫게 하는 바가 있었다.
대목(台本)과 열매나무[穗木]의 맞붙은 데를 날선 칼로 양쪽 다 상처를 낸 다음 신서란(新西蘭) 끈으로 질끈 묶어뒀다가 활착을 하면 열매나무의 밑동을 뚝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대목의 몸뚱이에셔는 두 개 종류의 나무가 자라게 되는 것이었다.
이밖에 어미나무에서 그 일부인 줄기나 가지를 땅에 묻어 뿌리가 나게 하는 휘묻이 법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여러가지 나무 접목법을 퍽 재미를 붙여 시험하는 듯했다. 나무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 성격을 잘 다루어서 이쪽 의향대로 부리는데 쾌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가끔 이런 분재들을 같은 취미를 가진 아저씨들을 데려다가 보이면서 자랑을 했다. 이 아저씨들은 거의가 아버지께서 분재를 시작하면서 사귄 친구들이었는데 산에 갈 때도 한패거리가 되어서 같이 가고 노상 얼려다녔다.
그들은 가끔 한패거리 중 좋은 나무를 찾아내서 캐가지고 오는 날은 어울려 축하 술도 나누었다. 가끔은 우리집에서도 술자리가 벌어졌는데 그런 때면 전화로 웬 아주머니 한 분을 불러와서 부엌을 통째로 맡겨 음식을 장만하게 했다.
어머니보다 여남은 살은 젊어 보이는 이 아주머니는 어딘가 일반집 여자와는
다른 냄새가 풍겼는데 그녀의 입꼬리께에는 팥알만한 사마귀가 있는 게 특징이었다. 부엌 일을 할 때는 가지고 온 앞치마를 두르고 일을 했다.
“김형, 이제 아주 우 마담을 들여앉힙서……·그만 했음 돌아가신 아주머니께
도 섭섭지 않을 만큼 수절했수다…….”
술이 웬만큼 오르면 사내들은 그 사마귀의 여자를 아버지 옆에 불러 앉히고는 자꾸 아버지의 팔을 끌어다 여자의 어깨에 걸치게 하며 추스렸다. 그러면 아버지도 좋아서 술로 벌개진 얼굴을 더욱 벌겋게 물들이고 겔겔겔 웃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일에는 다 순서가 있는 법이라구…….”
그리고 이렇게 취해서 떠들다가 떼거리로 나간 날 밤은 아버지는 어디선가 밖에서 자고 오곤 했다.
“씨팔, 외할아버지만 알아봐라. 혼이 날 텐데…….”
이런 날 밤 큰형은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어서 아버지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았다. 큰형이 이렇듯 가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그뿐, 막상 아버지 앞에서는 한마디도 말을 못했다. 그는 아버지 앞에 서면 얼굴부터 확 붉어지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거기다 둘째형은 아예 이런 불평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형이었다. 눈치를 봐가며 오히려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려 드는 쪽이었다. 우리 형제는 모두가 아버지의 친구들인 분재 패거리와 사마귀의 여자가 집에 오는 것을 내심 못마땅해 하면서도 누구 하나 툭 터놓고 아버지께 항의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패거리의 말을 받아들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년도 못 채워 그 여자를 우리집에다 들여앉혔다.
그런데 그녀가 오기 한 달쯤 전 어느날 문득 시골 사시는 외할아버지 내외께서 우리집에 들이닥쳤다. 두루마기와 한복으로 점잖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네는 묵연히 그동안 아버지가 마당에 들여논 분재들과 집의 안팎을 한바퀴 둘러보시더니 응접실로 올라 앉으셨다. 외할아버지 내외는 본래 점잖으신 분이었지만 이날 그들의 표정은 오소소 추워 보였으며 초조한 기색조차 보였다. 할아버지께서 엉거주춤 응접실 의자에 앉아 장죽에 담아 담배 한 대를 붙이는 동안에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아버지께서 급히 집으로 들어오셨다.
“아니, 올라오신다구 전갈이라두 하시잖구? 어찌 이리 급한 걸음을…….”
코가 납작하게 마루에 엎드려 절을 한 아버지는 몸둘 바를 모르게 황송해 하며 쩔쩔매었다. 우리들한테는 무섭게만 구는 아버지가 할아버지들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다.
“……·일이 있어 읍내 나온 길에 들렀네. 잠시 저녀석덜이나 만나보고 갈까 하구…….”
할아버지는 분재가 널려 있는 마당가에 엉거주춤 서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로 턱짓을 했다. 할머니도 시선을 우리에게 돌렸는데 그 눈길이 문득 젖어 있었다.
“아이들˙이야 뭐. 너무 잘 지냅니다.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음니까? 이녀석들, 할아버지 할머니께 큰절 했냐?”
“그래. 절 받았으니 아이들 몰아세울 건 없구…….”
할아버지의 말속에는 단쇠를 물속에 담갔을 때처럼 냉정한 데가 있었다. 그리고 그뿐, 어른들 사이에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고즈넉한 늦가을 저녁 무렵, 마루 끝에 기울어져 가는 햇볕 한 무더기가 몰려 있었다.
“……·그래 아이 에미 세상 뜬 지도 이제 일년이 다 돼가니 그만하면 수절됐겠다 얼른 사람 들여앉힐 궁릴 허게…….”
한참만에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한숨 섞어 말을 꺼내셨다.
“거,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제가 벌써……·어떻게…….”
아버지가 말막음을 하는데 이번엔 할아버지의 엄한 말이 그 말허리를 부러지르고 나섰다.
“거, 임잔 왜 남의 소리하듯 질러가? 바로 대지 못하고……·소문 듣자니 자네가 요즘 마땅치 못한 여자와 얼려 다닌다는데……·그게 사실인지 알고 싶어 왔네…….”
할아버지는 뚜렷한 증거가 있는 듯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순간 아버지는 목께까지 확 얼굴이 달아올랐다.
“소문이 시골까지 내려갔구나마씸·…·해도 그 여자 심성만은 에미 못지 않게
고운 여자우다…….”
궁여지책의 아버지 변명은 모기 소리만하게 들렸다. 나는 늙고 약하신 할아버지네 앞에서 저렇듯 거센 아버지가 나약해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셨다. 그리고 그길로 무뜩 자리를 일어나셨다.
“허긴 이제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도 못되네……·제 일 제가 알아서 할 탓이지…….”
할아버지는 단 이 한마디를 남기시고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서릿발같이 거절하신 채 황망히 길을 떠나셨다. 우리 삼형제에게 천원짜리 몇 장씩을 구겨 쥐어준 후……˙.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한참 낭패한 표정이더니 그래도 몇번인가 외가집 나들이를 한 끝에 외할아버지네를 어떻게 설득시켰던가 한 달이 채 못되어 그 여자를 집에 들여 앉혀버렸다.
큰형은 그 여자가 집에 들어온 것을 여간 못마땅해 하지 않았다.
“씨펄, 어멍과 한 약속은 어쩌구 일년도 못되어 첩을 얻어들이는 거여?”
큰형은 우리끼리 앉으면 볼이 부어서 씨부렁거렸다. 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늘의 식물처럼 나른히 누웠을 때 아버지는 어디선가 술이 취
해 목까지 얼굴이 붉어서 들어와가지고는 어머니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설레발을 쳐댔다. 그때 우리도 어머니 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장면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여보, 걱정하지 말라구.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재혼 같은 건 안해…… 내겐 당신뿐이야…….”
아버지가 술냄새 나는 얼굴을 누운 어머니 곁으로 눕히면 어머니는 고개를 틀어 외면하며 가만히 눈을 감아버리시는 것이었다. 이런 때 지그시 감은 어머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으며 어떤 때는 눈꼬리에 맑은 이슬이 맺혀 있곤 했다.
큰형이 불끈하는데도 둘째형은 아무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일상 아
버지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따르는 편이었으니까…….
“아버지가 하는 일인데 우리가 어쩔 것이여…… 따르는 수밖에……….”
이렇게 둘째형은 언제나 미지근한 태도였다.
“멍청이 새끼,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구 옳든 글튼 무조건 따르란 말이냐?”
둘째형의 말에 큰형은 발끈했지만 막상 둘째형이 그렇다면 한번 아버지나 그 여자에게 정식으로 대들어보라고 빈정거리자 큰형도 슬그머니 풀이 죽고 말았다.
그녀는 들어올 때 번쩍거리는 자개장농 두 개와 약간의 세간, 아버지가 가꾸는 것과 비슷한 분재 몇 분을 가지고 왔다. 그리고 이색적인 것은 황소만한 복서 누렁이를 끌고 온 것이었다. 이 수놈 누렁이를 그녀는 꽤 오랫동안 키웠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 우리집에 와서 우리 형제들에게 무조건 관대했으며 유식도 제법 우리들 식성을 물어가며 거기 맞추려 들었다. 우리들 개개인의 성질을 파악하고 환심을 사려들었다.
그러나 차츰 세월이 흐르고 그녀 스스로 우리 집안 내력을 파악하면서부터 그녀는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그녀의 벗들을 집에 끌어들이기 시작했으며 아버지가 안 계실 떼는 응접실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퍼더버리고 앉아 어디엔가로 전화를 걸어 한참 사설을 떨곤 했다.
그런 때 우리들은 방안에 틀어박혀 문을 닫아걸고 숨을 죽인 채 엿들었는데 어떤 때는 그녀의 말투로 미뤄 상대방이 남자라는 걸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이런 때 그녀의 음성은 나긋나긋했으며 가끔은 간드러진 목청으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녀가 들어온 지 며칠이 안돼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방으로 불려갔다. 돌아
가신 어머니께서 갈추레 누워 있던 아버지 방 아랫목에는 그녀가 마련한 빨간 카핏이 깔려 있고 거기 소반에 차려친 술상은 이미 반 넘어 비워져 있었다. 별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아버지의 눈꼬리도 약간은 풀리기 시작해 있었으며 걸맞지 않게 분홍빛 한복으로 성창을 한 그녀는 완숙한 몸매에 술기 탓인지 얼굴이 더욱 붉고 입꼬리께의 사마귀도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들 삼형제는 문가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버지가 잔에 따라놓은 술잔을 쭉 비우자 그녀가 은빛 나는 주전자의 술을 따라 잔을 채웠다. 그리고 문지방 옆에 차례로 꿇어앉은 우리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이 아줌마가 엄마 대신 우리집에 들어와서 밥짓고, 빨래하고, 너희들 뒤치닥거리를 해주는 게 좋으냐 싫으냐?”
그런 아버지의 시선도 여자를 닮아 생소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가부를 묻고 있었으나 그 말투는 강한 억압조였다. 고개를 숙이고 앉은 큰형도 둘째형도 대답이 없었다. 나야 형들이 있으니까 이런 때 아무 말도 안 해도 되는 게 차라리 속 편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마음이 조마조마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형들이 무슨 대답을 해서 한판 북새통을 일으켜놓을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좋으냐 싫으냐? 왜 대답들이 없냐? ”
이번엔 아버지가 들고 있던 술잔을 상위에 탁 놓으며 약간 큰소리르 말했다.
“왜 그걸 그렇게 다그쳐요? 싫으면 싫은 대로 할 수 없지. 그게 억지로 된답디까?”
여자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안되는 게 어디 있어 ? 만들면 되는 거지. 이제 다 좋아지게 될 테니까 두고 보라구…….”
아버지는 여자를 힐난하는 척하면서 시선으론 어루만지고 있었다.
“왜 안 좋습니까? 참 편하고 좋아마씸……˙.”
내가 예상했던 대로 둘째형이 눈을 빠꼼히 뜨고 속에도 없는 말을 뱉았다. 거기다 그는 제법 너스레를 떨 줄도 알았다.
“그렇지 이 아줌마가 안 왔으면 이제도 그 추위에 너희들이 밥 짓고 빨래하고 해야 하는 거여. 그러니까 고맙지? 고맙냐, 안 고맙냐?”
아버지의 말투에는 이미 주정이 반은 섞여 있었다.
“고마와마씸…….”
이번에도 둘째형이 대표로 고개를 쳐들고 아버지의 질문을 수긍했다. 나는 큰형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는데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이 순간부터 이 아줌마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실지로 밥 해주고 옷 해주니까 어머닌 셈이여. 너희 엄마는 죽어버렸으니까 말이여…….”
나는 그만 누운 어머니 앞에서 죽어도 재혼은 않겠다고 다짐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서 그걸 아버지께 상기시켜줄까보다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다. 이제 겨우 일년밖에 안됐는데도 그새 그 말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짐짓 잊어버린 척하곤 있을 뿐이지……·허긴 아버지의 거짓말은 이제 새삼스러운 건 아니니까. 나는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혼자 사려부었다.
“알았냐 몰랐냐? 알았으면 한번 불러봐, 〈어머니〉 하고 말이여……·!”
“어머니…….”
둘째형이 겨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어찌 우습던지 나는 하마터면 쿡쿡 웃을 뻔했다. 슬쩍 훔쳐 보니까 큰형도 웃음이 나겠던지 한 손으로 코를 만지는 척하며 킁킁거렸다.
“헤헤헤, 이건 순 엎질러 절 받기네…….”
그녀도 우스웠던지 헤헤거리고 웃었다.
“어쩔 것이여.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엎질러서라도 절을 받아야지……”
그리고 아버지는 또 쭈욱 술잔을 비웠다.
“너희들 말이여. 이제 새엄마가 들어와서 집안 일을 맡아 하게 되니까 너희들도 새엄마를 힘껏 도와줘야 한다. 알았냐?”
여자의 웃음이 아버지에게 전파됐는지 그의 음성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말속에는 뼈가 들어 있었다.
“……·내가 이제부터 집안의 규칙을 세울 참이여……·밥은 꼭꼭 제 시간에 일어나 먹구우……·용돈도 오늘부턴 새엄마에게 타 써……· 빨랫거리, 이런 것도 될 수 있는껏 줄여…… 자기가 빨 수 있는 건 자기가 빨구 말이여……. 오줌끼 있는 〈사루마다〉 같은 건 너희들끼리 빨아 입어! 그리고 밥 제 시간에 안 먹는 놈은 아주 끼니를 굶길 참이여…….”
아버지가 이쯤 주워섬기는 걸 보면 새엄마라는 여자는 그동안 우리들의 소행을 시시콜콜 아버지께 일러바친 게 틀림없었다. 이래저래 못 살겠다, 그러니까 이놈들에게 혼벼락을 내달라, 내가 당신 집에 저놈들 오줌 기저귀나 빨러 온 줄 아느냐, 그러면서도 엄마 소리도 못 들으니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쳐 온 것이냐 ? 술상머리에 앉아서 앙알거린 게 틀림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으려니까 팬티를 벗어놓을 떼마다 오줌 방울이 흘러서 누렇게 뜬 앞자리와, 그 맞은편에 아무리 밑구멍을 잘 닦노라 해봐도 묻어 있곤 하던 똥자국이 떠올라서. 얼굴이 붉어졌다. 음지식물처럼 누렇게 뜬 어머니는 앓는 중에도 우리들이 벗어놓은 팬티들을 모아놨다가 아무 불평없이 빨아주곤 했었다. 어머니의 손은 표백제처럼 한번 닿기만 하면 빨래가 깨끗이 되 어서 나왔었다.
그녀가 짐승새끼라도 쳐다보듯 하는 시선 속에 아버지의 지루한 설교를 다 듣고 우리 방으로 돌아오자 큰형은 개어논 이불 옆에 털썩 앉으며 책가방을 끄당겨 그속에서 숨겨두었던 배배틀린 담배 한 개비를 찾아내었다.
“씨 펄, 부시기나 굽자…….”
형은 이제 겨우 고등학교 일학년이었는데 이제까지 안하던 짓을 시작한 것이다.
“형, 아버지 규율이 더 엄해졌는데 그래도 되는 거야?”
둘째 형의 말을 큰형은 자조적으로 타박했다.
“관둬 임마! 너나 비위 잘 맞춰서 잘 먹고 잘 살아라!”
큰형은 담배연기흘 가슴껏 빨아들였다가 천정을 향해 후이 내뿜었다. 연기가
제법 보기좋게 퍼져 올라갔다.
“형, 형은 내가 이것 저것 대답을 하고 순종하는 척하니까 날 밉게 보지만 나까지 그렇게 하지 않아봐, 형과 강이가 더 닥달을 당할 건 삔하다구…….”
“사설 떨지마, 우리가 네 덕을 보고 있다구? 큰 덕 베풀어줘서 고맙다, 그나
저나 난 그 여우 같은 년한테 용돈 타 쓸 일이 막연하다……·씨펄, 학교도 그만 집어쳐 뻔져?…….”
큰형은 심란한 듯 또 후이 담배연기를 천정을 향해 내뿜었다. 둘째형은 집게가 건드림을 당하고 집속으로 기어들어간 때처럼 표정을 굳히고 말이 없었는데 그도 그녀로부터 용돈 타 쓸 궁리를 곰곰 하나보았다.
그 여자를 집안에 들여앉힌 후에도 분재에 대한 아버지의 정열은 식지 않았다. 알고 보니까 그 여자도 제법 분재에 대한 상식이 있고, 아버지를 알게 된 동기도 같은 취미에서 비롯된 듯했다.
다시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 아버지는 죽다 남은 분재들이 어느 정도 활착하기 시작하자 끝을 갖추는 작업을 서둘렀다. 그는 새벽마다 싹이 튀어나오는 분 하나하나를 드러내선 분에 따라 자기가 만들고 싶은 형태를 구상한 다음 우선 눈 따는 작업부터 했다. 자기가 구상한 형태를 위해 필요한 가지만 남기고 다른 눈은 모조리 따버렸다. 또 위쪽으로만 힘이 가지 않도록 불필요한 상가지도 잘랐다. 오염송 같은 나무는 봄이 되면서 탐스러운 새싹들을 비죽비죽 내밀었는데 아버지는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돋아나는 싹들을 중간에서 모조리 따버리는 것이었다. 또 단풍잎의 눈을 딸 때는 핀셋 같은 토구까지 동원됐는데 순을 따준 다음에는 싹들이 자라는 데 따라 가지 자르기, 잎 자르기, 가지·잎 솎아내기 순으로 작업이 진행 됐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아버지는 어금니 한 쪽을 질끈 깨물고 한편으론 중얼중얼거리면서 일을 했다. 새싹들을 무지르면서 손가락 끝에 쾌감이 오나보았다.
한번은 오엽송의 순올 따줄 때 동네 아버지의 친구 한 분이 오셨다가 그 어린 순을 그리 무지스레 따느냐고 나무랐는데 그때 아버지는 나무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이런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장의 분재론(盆栽論)을 입꼬리에 게거품을 물고 연설했다.
그러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는 철사걸이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분재의 재배 과정에서도 가장 안쓰러운 작업이었다. 아버지는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우선 동선(銅線)을 굵은 것, 가늠 것 여러 타래 사다가 시퍼렇게 불에 구운 다음 식혀 구부리기 쉽게 만들어 놨다. 그리곤 너덜너덜 이상스런 헝겊과 고무판, 쇠집게 등을 마련해뒀다가 어느날 아침 그걸 꺼내놨다.
“왜 철사걸이를 하려구요?”
그것들을 꺼내놓는 것만 보고도 여자는 척 알아맞혔다.
“그래. 철사걸이를 해서 전체의 조화를 더 좀 살리고, 줄기와 가지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해보고 싶단 말이야……그리고 몇 개는 분재의 모양을 바꿔놔야겠어…….”
“철사걸이는 효과를 빨리 낼 수 있어서 좋아요. 비교적 단기간에 나무 모양을 바꿀 수 있고, 필요 없는 가지도 정리할 수 있지요…….”
“어따 우리 선생님, 잘도 아시는구만…… 선생 뜻대로 만들어보리다…….”
그들은 화사한 아침 햇살 아래서 겔겔겔 웃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에서 돌
아와보니까 그들은 마당가의 분재 거의를 도둑놈을 묶듯 동선으로 마구 동여놓고 있었다. 어떤 것은 줄기, 어면 것은 가지를 헝겊과 고무판을 대어가며 뱀이 나무를 감아올라가듯 감았으며 어떤 가지는 짼 다음 비틀어 매놨는데 나무들이 작은 것이었기 때문에 마치 철사에 나무를 부름접한 끝이 되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그 작업을 벌인 듯한 아버지는 저녁을 먹은 후 마당가에 나와 버릇인 그 허리에 두 손을 짚고 서서 자신있게 말했다.
“봐라. 이제 저것들이 희한한 작품들이 될 테니……·안되는 게 어딨어 ? 맘 먹은 대로 펴고 구부리고 해놓으면 다 되게 되어 있다구……”
그러는데 설겆이를 끝낸 여자가 사내의 큰 슬리퍼를 꿰어 신은 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와 사내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러자 사내가 우리 방 쪽으로 힐끔 시선을 보내더니 팔을 돌려 분재에 철사걸이를 하듯 여자를 뒤로 안아버렸다.
그걸 우리 형제들은 창호지가 터진 문구멍을 통해 내다보며 킥킥 거렸다.
아버지는 분재에 철사걸이를 한 것뿐 아니라 심지어 둥근 대나무까지 삼각이나 사각이 지게 만들 줄 알았다. 봄에 죽순이 솟아서 웬만큼 뻗어올라 넝마 같은 껍질을 쓰고 있을 무렵 그 죽순의 사방으로 판자를 대어 고정시켜 놓으면 죽순은 굵어지는 동안 둥글게 굵어 질 충분한 공간이 없으니까 할수없이 삼각이나 사각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굵어진 대나무는 판자를 메어내도 그대로 굳어져버려서 각이 진 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가 굳어진 다음에 각진 대를 대하는 기분이란 묘한 것이었다. 분재를 하는 패거리들도 아버지가 만들어 논 각진 대를 보고 아버지의 머리가 대단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아버지의 분재 방법에 대해 의견들이 달랐다. 특히 한 패거리
중에 챙 없는 빵모자를 쓰고 언제나 고불통을 입에 물고 다니는 박씨 아저씨는 아버지의 분재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분재란 어디까지나 분속에 자연의 풍경을 축소시켜 창조한 것이라야지 억 지로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구……·거기다 이렇게 철사 자국이 생생히 남아 있거나 반창고 자국이 있어서는 환멸이지…….”
그는 약간 치솟은 들창코를 벌름거리며 냉소 섞어 말했다.
"그렇다고 만드는 과정이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아버지는 박씨 아저씨 앞에서는 주늑이 들어서 자기 주장을 뚜렷이 하지 못했다.
“분재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나무의 개성을 잘 알고 그 재목에 따라 소박하고 개성이 넘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구. 맘 내키는 대로 성급히 만지거나 철사 세공(細工)을 하는 일은 금물이야. 이건 분재를 망쳐놓는 원인이라구…….”
딴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크게 반발을 하고 나섰을 텐데도 박씨 앞에서라 아버지는 숙제 안해온 아이처럼 얼굴을 붉히고 서 있었다.
“철사걸이만 해도 그래. 균형 잡히지 않은 가지나 줄기를 교정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분재의 꼴을 갖춰가는 데 모자라는 점을 다른 가지로 막아주거나 무리하게 눈가림하는 것은 금기사항이지. 너무 공간이 많다 해서 딴데 가지를 억지로 구부려 다 대신해서도 안되구…….”
아버지는 그저 수긍하는 자세이고 둘러선 딴사람들은 고개 까지 끄덕였다.
“분재를 하는 데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는데 김형은 너무 욕심이 승한 것 같애…….”
박씨 아저씨는 결론을 내리듯 이 한마디를 하고 아버지의 분재 화분 앞을 떠났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들이 가버리자 여전히 어거지로 철사걸이를 하고 가지 구 부려놓는 작업을 계속했다.
“지가 알면 나보다 얼마나 더 알 것이여? 분재란 재목을 가지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가는 것인데…….”
“그렇다구요. 가타부타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요……·자기 주장대로 하
는 거지…….”
여자도 대거리를 하며 사내가 분재를 손질하는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나무뿐만 아니라 우리 형제들까지도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가려 했다. 아버지가 우리 형제들을 방으로 볼러 그 여자에게 〈새엄마〉라는 호칭올 쓰도록 하고 용돈의 공급처를 바꾼 이래 그들은 과연 그들 하고 싶은 대로 우리에게 했다.
속옷 빨래는 물론 우리끼리 밤에 수도가에서 해야 했으며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시간에 기상, 제 시간에 귀가를 해야 했다. 때가 지나면 그녀는 나머지 식사를 모조리 그녀가 줄을 매서 더불고 온 누렁이에게 줘버렸다. 누렁이는 우리 몫의 밥까지 얻어먹어서 등짝이 넓적하게 살이 쪄 있었다.
부엌의 솥과 그릇들은 언제나 반들반들 윤기가 나게 닦여 있었다. 부엌에 있
어서 만큼 그녀는 대단한 결벽증이었다.
“지저분하다는 소리만큼은 듣기 싫어요…….”
이것은 그녀가 입에 달아서 하는 소리였다.
게다가 그녀는 우리 중 누구라도 그녀에게 저항적이거나 〈새엄마〉라는 호칭을 써야 할 때 안 쓰고 미적거렸다가는 꼭 앙갚음을 했다. 꼭 줘야 할 돈 꼭 시간 안에 필요한 용돈을 빙글빙글 웃어가며 늦추고 애간장을 태웠다. 그렇게 해서 애를 말리는 데에 그녀는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
한번은 큰형이 학교에서 원보훈련(遠步訓鍊)을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왔는데 정해진 저녁 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다. 형은 하루종일 원거리를 걸어서 몹시 지치고 배가 고픈 듯 탈진해 있었다. 형은 우선 손발을 씻고 속옷을 갈아 입더니 부엌으로 가보는 모양이었다. 이유가 뚜렷한 만큼 그래도 뭔가 먹을 걸 남겨놓았겠지 하는 미련에서인 듯했다.
그러나 이날도 형 몫의 법을 누렁이에게 갖다 쏟아주는 걸 우리는 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형이 여간 측은하지 않았다. 그녀는 핑계만 있으면 우리 몫의 밥을 누렁이에게 주려 했으므로 형이 미리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었다.
“씨펄, 연놈들을 칵 죽여버려?…….”
부엌에서 돌아온 형이 눈알이 붉어서 주먹을 그러쥐고 부르르 떨었다. 뭔가 일을 꼭 저지를 것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서 한참을 씨근거리던 형은 벗어 팽개쳐 두었던 땀내 나는 속옷들을 가지교 수도가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래오래 빨래를 주무르는 모양이더니 방으로 들어와서는 이불을 내려 들쓰고 새우처럼 웅크려 누워버렸다. 그리고 그날 밤 형은 몹시 피곤했을 터인데도 오래 잠을 못 이루고 뒤채고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닷새째 날 누렁이는 독살되었다. 새벽에 여자가 한참 떠드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 바지를 꿰며 밖으로 나갔더니 누렁이는 쇠사슬을 쓴 채 네 다리를 옆으로 뻗고 널브러져 있었다.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몹시 몸부림을 쳤던 듯 주변 마당이 먼지가 쓸리고 땅이 패여 있었다. 아버지도 잠옷 바람으로 이미 나와 멍청히 서서 이런 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내 누렝이, 아이고 내 누렝이, 내 새낄 누가 독살했구나!…….”
여자의 목소리는 사뭇 울음조였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편 고소했으나 이일로 해서 일어날 집안의 풍파가 자못 두려웠다. 한참 북새통을 떠는데 형들이 방에서 나왔다.
“이건 분명 우리집에 원한이 있는 놈의 짓이여, 분풀이를 현 게 틀림 없어…… ”
여자는 앙탈을 하며 가끔 형들 쪽으로 시선을 쏘았다. 그러나 두 형의 표정은 그저 멍청했다.
“그만 해! 이제 떠들어보면 어쩔 것이여, 뒷처리나 깨끗하게 해야지…….”
아버지는 여자를 달래어 부엌 쪽으로 데리고 가서 뭔가 속닥거리더니 이내 방으로. 들어가서 어디엔가로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일로 해서 조반도 굶은 채 등교하는데 돼지들을 도살장으로 실어가는 큰 짐자전거를 탄 구레나룻의 건장한 사내가 휘파람을 불며 우리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가 분재하는 김씨네 집이냐?”
구레나룻의 사내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큰형은 대답은 않고 시선으로 우리가
걸어나온 골목을 가리켰다.
큰형이 고등학교 삼학년이 되면서 아버지와 형 사이에 심심찮게 벌어졌던 진로선텍 실랑이는 언제나 그랬듯 아버지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형은 취미대로 문과계통 진학을 희망했으나 아버지는. 기어코 형을 의대 (醫大) 쪽으로 밀어넣었다.
“의대 나와가지고 척 병원만 차려봐라. 뭐가 부러울 게 있겠나? 잔소리 말고 아버지 시키는 대로 의데엘 진학해라!”
아버지의 주장에 언제나처럼 꺾을 수 없는 고심이 서려 있었다.
“딴 대학 나와서 취직도 안 되고 빌빌거리는 꼴덜 봤지? 거기 대면 의과는 얼마나 떳떳하냐? 의(醫)논 인숟(人術)이라, 명분 좋겠다, 돈 벌겠다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어?”
“……”
형은 더 말해봤자 막무가내라는 걸 잘 아는 듯 잔뜩 볼이 부어서 마룻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요즘 돈이란 건 모두 병원과 은행, 교회로 빠지고 있어. 도시에선 툭 섰다 하면 은행이더라. 그리고 읍내에만도 봐라. 큰 집 새로 짓는 건 모두 의사들이잖냐?”
그래서 형은 할 수없이 서울로 올라가 의과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고 의대에 들어 갔다.
그러나 처음부터 취미 없고 하기 싫은 공부가 잘될 리 없었다. 그래 형은 자연히 공부도 처지고 학급 동로들한테서도 소외당했다.
형은 간신히 예과 이년을 마치기는 했으나 본과 일학년 일학기 때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본과에 올라가면서 형은 해부학 등 인체에 관한 실기를 강의받게 되었는데 원체 취미가 없는 터에 시체 가까이 가는 게 겁조차 났다. 그래서 실험시간마다 몸을 사리고 뒤물러서는 기색이었기 때문에 같은 조 동료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 낮에 형은 캠퍼스 뒤뜰 아카시아 그늘에서 점심으로 가져간 도시락 뚜껑을 열다가 히뜩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의 도시락에서 밥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귀와 코가 굴러나왔던 것이다. 시체에 대해 겁을 먹는 걸 지켜 본 학급 동료들이 형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점심은 다 먹어치우고 대신 귓바퀴와 코뻬기들을 가득 담아놨던 것이다.
그런데 형은 방심한 상태에서 그걸 보고 뒤로 넘어져서 기절해버렸다. 장난을 꾸며놓고 그가 놀라는 꼴을 구경하자고 먼 발치에 숨어 지켜보던 동료들은 형이 뒤로 넘어져서 이슥히 기다려도 일어나지 않자 그쪽으로 쫓아가 보았다. 그들이 쫓아갔을 때 형은 입에 게거품을 문 채 눈을 허옇게 뜨고 부륵부르룩 몸을 떨고 있었다. 그들은 그제서야 장난이 지나친 것을 깨닫고 그를 업어 학교의 부속병원으로 급히 옮겼다.
형은 놀라서 뒤르 넘어질 떼 뇌까지 다쳐서 치료가 석 달이 넘게 걸렸다.
아버지가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가고 얼마 있다가 그 여자도 유람이나 떠나듯 요란하게 옷차림을 하고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석 달 만에 내려온 형은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양지쪽 의자에 내다 앉혀놓으면 형은 초점 없는 흐릿한 시선으로 하루종일 거기 앉아 있었다. 형은 그렇게 앉아서 입꼬리께로 줄줄 침을 홀리고 있곤 했다. 그러다가 가끔 그 귀와 코때기들이 환상으로 나타나는 듯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소리지르며 몸을 부륵부륵 떨었다. 그리고 아무데로나 도망가려고만 했다.
형의 이런 증상이 심해지자 아버지는 할 수없이 형을 쇠사슬로 발과 팔목을 묶어서 광속에 가둬놓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형을 옭아놓고는 마당가에 나와서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북새를 한참 치르고 나면 여자는 또 옆에서 앙알거렸다. 그래서 툭탁거리는 말다툼도 벌어졌다.
이날도 형이 발작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그 여자는 형의 사지를 붙들고 사슬로 옭는 실랑이를 한참이나 벌였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빵모자 박씨 아저씨가 들렀다. 그는 마당으로 들어와서는 빙글거리며 이런저런 일로 물을 잘 못 줘 말라가고 있는 분재들을 지켜보았다.
몇개의 분재는 그때까지도 철사걸이를 풀지 않아 나무의 살이 비죽거리며 튀어나와 있었다.
박씨 아저씨는 고불통을 꼬나물고 담배연기를 하늘로 날려보다가는 킁킁 코방귀를 뀌었다.
형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참이라 아버지도 머리칼 없는 대머리의 땀을 팔소매로 닦으며 마루 끝에 나와 섰다.
“김 형은 애초부터 그게 탈이었어. 분재를 만드는데도 무리가 있었지만 사람까지 분재 모양으로 만들려 했으니…….”
그는 혼잣말처럼 뇌이더니 그 들창코를 하늘로 쳐들고 다시 킁킁거렸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형이 갇혀 있는 광 쪽에서는 다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비명이 새어 들려왔다.
―1981년 7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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