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하물며...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 본문은 새 언약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속 사역의 효과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스도의 피는 옛 언약의 제사보다 질적으로 우월한 것으로 옛 언약의 제사가 성취할 수 없는 것 즉 양심을 깨끗이 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막던 죄를 제거하는 구속 사역을 성취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새 언약의 목적이다. 새 언약을 통해서 양심이 깨끗해진 그리스도인들은 옛 언약하에서 불완전한 속죄로 인하여 제대로 섬길 수 없었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다.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 '프뉴마토스'에 대해서 혹자는 그리스도 자신의 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인격과 영을 통해서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뉴마토스'는 성령을 통해서 주어진 임무를 성취하는 이사야서의 '주의 종' 사상을 암시하는 것으로 성령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달리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속죄 사역을 이루신 대제사장이심을 시사한다.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 - '흠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모몬'은 70인역에서 결점이 하나도 없는 희생 제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희생 제사 용어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자발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완전한 순종의 성취를 시사한다.
[벧전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너희가 알거니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도테스'는 기독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에 대해 언급할 때나 표준이 되는 가르침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Kelly) 관용구이다. '에이도테스'가 사용되는 경우는 두 가지이다. (1)사도의 교훈을 심화시켜 설명할 때. (2) 앞에서 명령한 구절에 대한 설명이나 이유를 보충하고자 할 때이다.
이 두 가지 중 본절의 '에이도테스'는 후자의 경우이다. 왜냐하면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절은 권면에 이어 계속해서 그 이유를 설명해 나가기 때문이다.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 '망령된 행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스 마타이아스 아나스트로페스'는 유대인의 생활 양식을 가리키기보다는 이방인의 생활 양식을 의미한
더욱이 '망령된'의 헬라어 '마타이아스'는 이방종교의 특성을 나타내는 단어로 우상 숭배와 관련되어 사용된다. 한편 '구속된 것'의 헬라어 '엘뤼트로데테'는 고대 로마의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용어로 두가지를 의미한다 (1) 돈을지불하고 사다. (2) 속박에서 해방시키다. 베드로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구속받기 위해 치른 대가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금과 은'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밝힘으로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신 구속 사역이 완전한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대가의 귀함과 완전함에 대한 베드로의 진술은 '값 없이' 구속함을 받았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과 상치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비록 문자적인 의미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조점의 차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완전하여 (1)과(2)의 의미를 모두 강조하고 있지만 이사야는 바벨론에 포로가 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는 태도로 (2)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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