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치-1탑









산치2탑

산치3탑

"인도 서부 마디야프라데시주의 동쪽 지방에 있는 불교 유적지로 슝가 왕조의 수도였던 비디샤Vidiśā 근처에 있다. 약 90m 높이의 언덕 위에 세개의 스투파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1~12세기에 걸쳐 제작된 많은 불탑과 사당, 승원(비하라)의 유구가 보존되어 있다.
제1탑의 동문 옆에는 주두에 네 마리의 사자를 조각한 아쇼카왕Aśoka의 석주(石柱)도 남아 있다. 산치 대탑(제1탑)은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1세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현존하는 조각은 서기 1세기 전반경의 작품이다. 기단부의 지름은 36.6m이고 스투파의 높이는 16.5m이다. 스투파의 주위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돌로 된 울타리(베디카)를 둘렀으며 사방에는 전기 안드라 시대에 만들어진 문(토라나)이 있다. 이 4개의 문에는 불전이나 본생담의 내용을 깊은 양각 기법으로 새긴 부조가 장식되어 있다.
제2탑은 산치 대탑(제1탑)의 서쪽 조금 아래에 위치하며 기원전 2세기 말 말와지방을 통치하던 슝가 왕조에 의해 세워졌다. 이 스투파가 발굴되었을 때 돔 안에서 불타의 양대 제자의 사리와 기원전 250년경 아쇼카왕이 소집했던 결집(結集)에 참석한 10대 성인(聖人)의 사리가 발견되었다. 토라나는 없지만 베디카가 보전되어 있고 여기에도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제3탑은 대탑의 북쪽 약 45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베디카는 남아 있지 않지만 부조가 새겨진 남문이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불타의 2대 제자의 이름을 새긴 사리 용기가 발견되었다. 그 외에 이 언덕 위에는 굽타시대에 속하는 제17사당 및 기둥 일부가 남아 있는 차이티야(제18사당)가 남아 있으며 중앙에 뜰이 있는 사각형의 승원지(僧院地)도 여러 개 있다."
글 인용;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사진 출처;http://en.unesco.org/ ....外 多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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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쇼카 왕이라면 100명인가 하는 형제를 한 명 놔두고 모두 죽인 사람 아닌가요?
Asoka(阿育王;BC3C),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
인도 역사상 최초의 통일제국(남부 타밀 지역을 제외) 건국자,
강력한 전제군주제를 확립,
칙령 · 법령 등을 새긴 石柱 설치, 순찰사 파견, 대규모 관개사업, 전국적 도로망 구축, 우물 설치 등 중앙집권화 추진...
역사상 동서양의 통일제국 건국자들처럼 전쟁 · 숙청 · 살육 등이 뒤따랐습니다.
아쇼카왕이 성왕으로 추앙받는 것은 통일 이후의 행보입니다.
즉위 7년 불교에 귀의하여, 그간의 살상을 참회하며 武力정책을 중단하고 불교적 덕치주의를 표방하며, 他 종교에도 관용책을 펼칩니다.팔리어로 불경 결집, 도처에 불탑 건립, 彿跡 순방 등 열렬한 護佛정책을 추진합니다. 스리랑카에 왕자를 통해 포교하여 남방불교(소승)의 토대를 마련하여 동남아로 불교가 전파되었다. 시리아 · 이집트 및 북아프리카 · 그리스 · 마케도니아 등 여러 나라에 포교단을 파견하였다.
북인도의 지방종교이던 불교를 세계종교로 발전시킨 佛子여서 ‘聖王’으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로마세계에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의 '한평생 武力的성향’도 통일기의 아쇼카왕과 거의 같습니다.
‘밀라노칙령’이후에도 內戰을 계속하고, 임종 직전에 세례 신자가 된 것이 다른 점이라 할까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하다’고 했던가요.
그렇다고 빛을 싫어할 수도 없으니 세상 만사가 아이러니합니다요...
무늬만 불자지만 최고 가보고 싶은 곳이 인도입니다.
불교유적뿐만 아니지요? 인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