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맥아더명언이 아니라 군가의 가사<김승웅>
받은편지함
추수백운도
하태형
방장님,
우리나라에서 가장 값비싼 고미술품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이 될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아마도 秋史의 <세한도(歲寒圖)>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 그림은,
추사의 유배지인 제주도 귤중옥(橘中屋)과 주변의 소나무 몇그루를 거친 갈필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무릇 화가들에겐 소위 화풍(畵風)이란게 있는 법입니다.
저는 예전부터, <세한도>란 뛰어난 작품이 있으면 그 이전에 이와 유사한 풍의 그림이
최소한 한두개 정도는 있는게 맞지 않나란 생각을 해오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의 외우(畏友)인 창원대 도진순교수가, 바로 이 세한도와 유사한 풍의 추사 이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그림인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기에,
그의 논문 초고(草稿) 내용을 간략히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 그림(사진)을 보면, 세한도와 매우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과 그 집을 에워싼 나무들, 그런데 세한도에는 없는 풍경인 뒷배경의 산과 지평선등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의 우측에는 ‘英英白雲’으로 시작하는 4言 8句의 화제시(畵題詩)가 적혀 있습니다.
이 그림은 秋史의 종손가(宗孫家)에 전해 내려오던 것인데,
1985년 임창순선생이 ‘세한도의 필치와 같이 황한간솔(荒寒簡率)하면서 창고(蒼古)한 운치를 풍기는' 그림으로
소개한 이후 2002년 유홍준의 <완당평전>, 2003년 김현근등의 연구가 이어집니다.
특히 유홍준은 <완당평전>에서 이 작품을 <영영백운도(英英白雲圖)>라 명명하고
더하여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를 그린 그림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한편 일각에서는 그림에 추사의 낙관이 없고 또 “구도에 질서가 없고 획이 날림이라 분명한 위작”이라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현재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 이수경 학예사와 2022.3.7일 통화하여 확인)
그런데 2007년, 안동김씨 문정공파에서 양평친환경농업박물관에,
추사의 절친이었던 황산(黃山) 김유근(金逌根)의 문집인 <황산유고(黃山遺藁)>를 기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황산유고>에 위 ‘英英白雲’의 4言 8句詩가 <제추수백운도(題秋樹白雲圖)>란 이름으로
그대로 실려있다는 사실을 안대희교수가 2013년 책으로 발표, 소개하게 됩니다.
논문의 내용이 복잡하나 이상의 여러가지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 집니다.
두 절친인 秋史와 黃山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어느날 재회를 합니다.
그 재회의 기쁨을, 黃山 김유근은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이백(李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인
<봄날에 이백을 생각하며(春日憶李白): 아래>에 나오는 나무(樹)와 구름(雲)에 빗대어 시를 지어 표현합니다.
(이후로 친구사이를 칭하는 표현인 ‘운수지교(雲樹之交)’란 성어가 탄생합니다)
渭北春天樹(위북춘천수) 저는(두보) 위수 북쪽 장안에서 봄빛 드는 나무들을 보고 있는데,
江東日暮雲(강동일모운) 형은(이백) 장강을 거닐며 황혼의 붉은 구름을 보고 있겠군요.
何時一樽酒(하시일준주) 언제 만나서 술 한잔 같이 나누며
重與細論文(중여세논문) 다시 고아한 시 이야기 나눌수 있으리오..
빼어난 시인이었던 김유근은, 두사람이 만났던 가을이란 계절에 맞춰 각각 ‘가을나무(秋樹)’와
‘흰구름(白雲)’의 만남으로 四言詩를 지었고 그러자 추사는 두 사람이 만난 장소를 그림으로 그린후,
畵題의 시로 김유근의 시를 써 넣습니다.
이제 김유근의 <제추수백운도(題秋樹白雲圖)>란 시를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英英白雲 繞彼秋樹 두둥실 떠있는 흰구름, 가을나무에 둘렀네
從子衡門 伊誰之故 (그대) 사람들과 함께 내 집에 다다르니, (지금껏 못 만난것) 그대의 연고인가 나의 연고인가?
山川悠邈 昔不我顧 산천은 아득히 멀어, 내가 돌아볼 겨를이 없었으나
今者何如 庶幾朝暮 이제는 어떠한가? 아침 저녁으로 만나세나
위 시의 해석은 제가 단 것으로, 저는 이 두사람의 만남의 장소를 김유근의 집으로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 나오는 ‘衡門(형문)’이란 단어 때문인데,
‘衡門(형문)’은 <詩經>에 나오는 두 개의 기둥에 한 개의 횡목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문을 얘기하는 것으로,
이후 도연명이 <歸去來辭>에서 자신의 집을 ‘衡宇(형우)’라 표현한 이후,
주로 자신의 집을 낮춰서 표현하는 謙辭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안대희교수나 도진순교수등은 ‘衡門(형문)’을 추사의 별서(別墅)로 보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때의 만남을 끝으로 두사람은 다시 재회하지 못합니다.
그러자 김유근은 <추수백운속도(題秋樹白雲續圖): 추수백운도에 이어>란 시를 다시 지어
절친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我所思兮 川原悠曠 내가 그리워하는 이여.. (우리를 갈라놓는) 강과 들은 저리도 아득한지
睠彼秋樹 白雲在上 (문득) 저 가을나무 돌아보니, (예전처럼) 흰구름이 걸려있구나.
舒卷惟意 寧須定向 (구름은) 마음대로 흩어지고 모이니, 정한 방향이 있으리오마는
搔首延佇 心焉獨悵 머리 긁적이며 목빼고 기다리니, 마음이 어찌 이리도 슬프단 말인가
그리운 벗인 추사와 만나고 난뒤 몇년여 세월이 흘러,
다시 가을하늘 흰구름을 바라보며 지은 <추수백운續圖>를 보면,
‘睠彼秋樹 白雲在上’이란 구절에서 글을 지은 장소가 <추수백운圖>상 장소와 일치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습니다.
마치, ‘저 가을나무와 그 위의 흰구름은 예전이나 다름없는데’ 내 벗은 어딜가고
나 혼자 ‘搔首延佇(소수연저)’, 즉 머리 긁적이며(搔首), (난초를 묶어놓고) 목을 빼서(延頸) 우두커니 서(佇) 기다린다는,
<이소(離騷)>의 ‘結幽蘭而延佇(결유란이연저)’의 구절을 사용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태형 드림
<미코그룹부회장겸㈜미코파워 대표이사, 수원대 경제금융학과 특임교수/현대그룹 산하 현대경제연구원장,
법무법인 율촌연구소장겸 고문 역임/경북고~서울대 경영학과~뉴욕주립대(경제학 박사)졸/대구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