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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6월 24일 수요일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신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라며 뒤에 오실 구원자 예수님을 알립니다.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요한을 기리며 미사에 참여합시다.
말씀의 초대
이사야는, 주님께서 그를 모태에서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그의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다고 한다(제2독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고 열린 할례식에서 아기 아버지 즈카르야가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겠다고 하는 순간, 즈카르야는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한다(복음).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22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마을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펼쳐지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의 뜻과 하느님의 뜻이 어긋나는 긴장이 흐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말씀이 결국 이루어진다는 사실, 그것도 인간의 저항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이 긴장의 바탕이지요.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을 가진 요한이라는 이름 대신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지으라는 사회적 압력은 하느님을 향한 엘리사벳과 즈카르야의 순종 앞에서 힘을 잃고 맙니다. 즈카르야가 마침내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그는 다시 말을 하게 되고, 그가 처음으로 하는 말은 하느님을 향한 찬미가 됩니다.
즈카르야의 해방은 단순한 기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 인간의 망설임은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그리하여 하느님의 계획이 거침없이 펼쳐지리라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즈카르야의 이웃들은 두려움, 곧 거룩한 경외심에 사로잡힙니다. 사람들은 이를 마음에 간직하며 묻지요.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오늘 복음은 다음 말을 덧붙입니다.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1,66).
여기서 우리는 루카 복음서가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역사 안에 개입하신다는 것입니다. 작은 마을이 오랫동안 간직한 전통 의식과 이름 하나를 통하여 구원의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전통과 관습을 넘어서는 구원과 은총이 그렇게 인간 공동체 한가운데에 새겨집니다. 현실 논리와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과학이나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정당하다고 인식하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역사하심과 그분의 섭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즈카르야의 이웃들처럼 우리도 묻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무엇이 펼쳐질 것인가?” 그리고 이렇게 물음으로써 하느님을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살면서 신기한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1983년입니다. 여름 행사를 마치고 보좌 신부님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안면도로 단합대회를 갔습니다. 30명 정도가 같이 갔습니다.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잠시 쉬면서 있었습니다. 저와 교사 한 명이 돌아와 보니 버스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저와 교사는 수박 하나를 사 먹고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떼어내는 게임을 하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논두렁에 버스 한 대가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타던 버스였습니다. 바퀴가 논두렁에 빠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주님께서는 제가 힘들까 봐서 버스를 세워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해 안면도에서는 또 다른 추억도 있었습니다. 교사들과 함께 바닷가로 랜턴 건전지를 사러 갔습니다.
오늘 길에 성가도 부르고 즐겁게 오는데 그곳 청년들과 만났습니다. 청년들이 시비를 걸어서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교사 중의 한 명이 어둠을 뚫고 민박집으로 가서 일행을 데려왔습니다. 청년들은 우리를 보호해 주려고 했다면서 조용히 물러갔습니다. 지금도 어둠을 뚫고 용감하게 탈출(?)했던 교사가 생각합니다.
지난 5월 11일에 ‘북미주 사제 협의회’ 모임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신기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대표 사제이기에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 표를 구했습니다. 떠나기 전날 비행기가 취소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항공사에서 대체되는 항공편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달라스, 샌디에고,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노선이었습니다. 오후로 일정이 정해져서 오전에 운동도 하고, 좀 쉬다가 공항으로 갔습니다. 개막 미사도 부회장 신부님께 부탁했습니다. 샌디에고 가는 비행기에 탑승했는데 또 비행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에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노선이 보였습니다.
저는 서비스 센터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직원은 컴퓨터를 검색하더니 딱 ‘한 자리’가 남았다고 하면서 티켓을 주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비행기가 취소되었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인기를 질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님께 향하는 것을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만듭니다. 더 성공한 사람,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인정받는 사람이 부러워집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비교의 삶이 아니라 사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흔들리기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길을 충실히 걸어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의 십자가를 집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의 십자가를 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민 생활의 외로움과 경제적인 부담이라는 십자가를 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아픔과 오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 함께 일으켜 주시고, 길이 막힌 것 같을 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을 지내면서 세 가지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첫째, 겸손의 은총입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나는 그분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입니다.
둘째, 충실함의 은총입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충실함입니다.
셋째, 신뢰의 은총입니다. 비행기가 두 번 취소되어도 결국 길을 열어 주셨던 것처럼, 내 삶도 주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신다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도, 때로는 계획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하게, 충실하게, 그리고 믿음 안에서 주어진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을 그리며>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꺼져가는 생명의 끝자락 힘겹게 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늙은 부모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었던 요한!
그러나 당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버지의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부모와 갈라서야 했던 외톨이였습니다.
뭇사람의 존경 받는 가문의 영광도
주님 섬기는 사제의 안정적인 지위도
당신의 몫은 아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늦둥이 외아들
하지만 따스한 부모의 품이 아니라
거친 광야가 당신의 보금자리였습니다.
여린 살갗 보드라운 천으로 감싸는 것은
당신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사치요,
단지 성긴 낙타털옷만이
당신을 거칠게 보듬을 수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빵과 맛난 살코기
몸과 마음을 유혹하는 달콤한 포도주는
결코 당신과 어울릴 수 없는 호사 일뿐
메뚜기와 들꿀에 당신은 생명을 맡겼습니다.
제 생각을 펼치지도
제 목소리를 내지도 않으며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기에
당신은 있으면서도 없어야 했습니다.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탐욕을 채우려 혈안이 된 이들에게
위선과 가식을 옷 입은 이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당신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준엄한 질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생애 첫 순간부터 평탄치 않은
비범한 당신의 삶의 여정에 이끌려
수많은 이들이 당신께 찾아와
살기 위해서 머리를 숙이며
오시기로 한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당신께 투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자리를 탐하라는 사탄의 유혹은
당신께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고
살기 위해 당신을 찾은
무수한 이들을 참으로 살리기 위해서
당신은 스스로를 죽이고 죽였습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마침내 동생의 아내를 탐한 부정한 압제자의
썩은 냄새 진동하는 흥겨운 술판의
싸구려 노리개가 되어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
당신은 한없이 작아짐으로써
정의의 주님을 드러내었습니다.
당신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주님을 품음으로써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당신은 사라졌지만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 닮은 많은 이들을 통해서
오늘도 찬란히 부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탄생과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오늘,
당신의 추하고 속된 세상과의 단절을 본받아
주님과 온전히 하나 되기를,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운 당신의 비움을 본받아
주님으로 온 삶을 채울 수 있기를,
헛된 명예를 내던져버린 당신의 낮춤을 본받아
주님을 온 누리 모든 이에게 들어 높이기를,
부정과 불의에 맞섰던 당신의 정의로움을 본받아
주님의 정의를 온 몸으로 당당히 선포하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다짐하며 기원합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고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이름을 짓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자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 즈카르야 역시도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습니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인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기존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기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 안에서 기존의 전통과 새로운 시도가 서로 대립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도 인간적 전통과 신앙의 전통이 대립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그러한 난감한 상황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져야 자세는 모든 해답을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바로 신앙의 역사 안에서 이어져 오는 참된 신앙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의 경우 말씀을 따라 아기의 이름을 짓자 혀가 풀리고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도 역시 주님의 손길이 늘 함께 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구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곧 말씀 안에서 참된 생명이 있고, 참된 해방이 있고. 참된 구원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요한(John)
신분 : 세례자, 예언자
활동연도 : +29년경
같은이름 : 밥띠스따, 밥티스타,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세례자(Joannes Baptistae)는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 즈카르야(Zacharias, 11월 5일)와 아론의 자손이며 성모 마리아(Maria)의 친척인 성녀 엘리사벳(Elisabeth, 11월 5일)의 아들로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인 카림에서 태어났다.
그 역시 천사의 탄생 예고를 통하여 그동안 수태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에게 잉태되었다(루카 1,5-25). 그는 서기 27년경까지 유대 사막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30세가 되었을 때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기 시작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오실 때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보고는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며 말렸다(마태 3,14). 그리스도께서 갈릴래아로 떠나신 뒤에도 그는 요르단 계곡에서 자신의 설교를 계속하였다.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는 세례자 요한의 언행과 군중들에 대한 그의 권위를 두려워하던 중에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들어 그를 사해의 마캐루스 성채에 투옥하였다.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은 옳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헤로디아는 간계를 꾸며 딸 살로메에게 그의 목을 청하도록 하여 요한은 결국 참수 당하였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고,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이다.
성 루몰도 (Rumold)
활동년도 : +775년경
신분 : 주교, 순교자
지역 : 말린(Malines)
같은 이름 : 루몰두스, 루몰드
성 루몰두스(Rumoldus, 또는 루몰도)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말린의 주교이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고향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하느님만 충실히 섬기던 수도자였는데, 영혼들을 구하려는 열정을 이기지 못하여 인근의 우상숭배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다녔다. 그는 로마(Roma)까지 여행했는데 그곳에서 선교사 칭호와 주교로 축성된 후 벨기에 중앙부 브라반트(Brabant)로 파견되어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와 합류하였다. 그는 말린에서 두 사람에 의해 순교했는데, 그가 그들의 사악한 행동을 공공연히 비난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유해는 말린의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루몰두스는 또한 아일랜드 더블린(Dublin)의 주교로서, 스코틀랜드 왕의 아들로서 기억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