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마이산 은수사 기행
심미안(審美眼)이 남보다 뛰어난 분들이 그림을 잘 그린다. 그러고 보니 화가는 거의가 미남이다.
준수한 이목구비에 잔잔한 미소, 날렵한 몸매와 단정한 옷차림,
정길(鄭吉) 화백은 향토색이 짙은 농촌 풍경을, 감칠 맛 나게 잘 그린다.
빨간 기와지붕에서 고추 말리는 풍경, 콩 타작하는 도리깨질, 남도 풍광(風光)은 언제 봐도 정겹다.
화백에게서 전갈이 왔다.
임금님에게 진상하던 웅어가, 금강에 떼 지어 올라오니, 한번 다녀가시라고.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일에는 빠지는 일이 없는, 길수, 상복, 명택 원식이 형들과, 맛 고장 남도를 향해 ‘이랴 낄낄’ 달구지를 몰았다.
정 화백과 곧장 횟집으로 갔다.
“짐의 잔이 비어있는데 경의 눈에 보이지 않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약(술)을 내리로서.’
은수사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스님은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이성계 장군은 지리산 운봉(雲峰)까지 쳐들어와 살육(殺戮)과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길에 마이산에 올라 기도를 드렸다.
기가 충만한 곳이라, 기도를 드린 보람이 있어, 3일째 되는 날 비몽사몽간에 하얀 신선으로부터 눈금이 새겨진 목검(木劒)을 받았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이 척도(尺度)로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재들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덩’ 하는 북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염원을 들어준다는 신통한 북이다.
마이산 정상에는 이성계 장군이 심었다는 돌배(石梨) 노거수 한 그루가 있었다. 어른 대여섯이 손을 잡아야할 크기다. 고목이 들지 않고 충해(蟲害)도 없다고 한다.
마이산에서
산사를 찾는 이유 중 하나가, 세속의 번뇌를 잊기 위해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리라.
그래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물 좀 얻어 마실 수 있어요?’
무슨 불쾌한 일이 있었던지, 퉁명스럽게 턱으로 샘 있는 곳을 가리켰다.
흐르는 물도 떠 줘야 적선하는 법인데? 어라! 어디서 뺨 맞고 누구에게 화풀이야?
스님 말 좀 물어 봅시다.
이 돌배는 낙과(落果)하는 양이 적지 않을 터, 누가 떨어진 것을 팔지 않겠냐고 묻지 않던가요?
작년에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런데 어찌 알았습니까?
그래서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지요?
네. 그랬습니다.
그 분이 일본 말을 쓰던가요?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뒤에 스님을 잘 아는 사람으로 부터 부탁이 들어왔지요?
아래 마을 김 씨가 술병을 들고 왔기에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낙과를 주워 항아리에 모아두면 노란 즙이 나옵니다. 그걸 폐(肺)에 한사(寒邪)가 들어 콜록콜록하는 불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나요?
그렇게 해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돌배나무의 키를 재보고, 구멍을 뚫어보자고 하지 않던가요?
마이산이 자랑하는 보물인데!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지요.
산문에 연락해서 다시는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알았습니까?
이만하면 오만한 스님을 충분히 놀려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님이 작심한 듯이 말문을 열었다.
물어봅시다. 당신은 귀신이요?
제가 무얼 압니까. 짐작으로 한 말입니다.
그러자 노상에서 이럴 일이 아닙니다. 법당으로 가시죠.
자랑 같지만 소승은, 일반 대중이 집안 대소사를 상의해오면, 최선의 방책을 강구해서, 한 번도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괴하게 생긴, 말 귀 형상과, 바위에 난 구멍에 대해 물으면, 쥐구멍을 찾고 싶었습니다.
마마자국 투성이인 바위는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요?
아래서 위로 올라와 솟아오르는 약수의 정체는?
겨울철에는 기자들이 비박을 하면서, 역 고드름의 결정적인 순간을 사진 찍으려고 합니다.
전북도지사 전북대학교 총장, 그 외에 알 만한 인사들에게 물어보면 ‘알아봐 드리지요!’하고 끝입니다.
불경만 중얼거릴 줄 아는 중이,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놀려주려던 생각은 사그라지고, 도리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나이테를 측정하려고 온 것이요.
바위 생성 원인을, 1억 5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中生代 白堊期), 경상계 역암층 운운하면,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 자리에서 궁금한 점을 다소 해소해 드릴 수 있으나, 서울에 올라가 자세한 내막을 글로 써서 보내겠습니다.
황해 스님! 안녕하셨어요.
제 친구는 고려대에서 지질학을 강의하는 김형식 박사입니다.
그 친구는 고맙게도 스님이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대학원생 졸업 논문으로 출제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마이산의 지질과 함께 위 논문들을 보내드립니다.
연이어 50,000 분지 1 지형도도 추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주
===============================
https://youtu.be/gE1ltKSIF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