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선(Ouch! line)'
창조적 인간관계를 만드는 사람들
*출처=shutterstock
무릇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가 없는 생명은 생명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 관계는 창조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다.
파괴적인 인간관계는 만남으로 해서 서로를 파괴시키는 반면, 창조적인 인간관계는 만나면 서로를 성장시킨다.
인격 또는 성격이 성숙한 사람은 대부분 창조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들은 아마도 창조적인 인간관계의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부모도 되고, 어떤 사람의 자녀도 되며, 그리고 남편과 아내, 또 다른 사람의 친구와 직장 동료도 된다. 이런 만남 속에서 창조적인 인간관계는 자기 자신도 성장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도 성장시킨다.
창조적인 인간관계는 우리가 상대방을 인정해 주고, 상대방에게 친절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태도를 보일 때 일어난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D. H. 로렌스는 "우리는 살아서 생명을 전해 주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명을 전해 주지 못하면 생명은 우리를 통해 흘러가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말하는 생명이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미소 짓지 아니하고, 친절하지 못하며,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반생명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자연과 교감함으로써 건강할 수 있고 또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 한 송이의 꽃과 나무에서 무한한 생명력을 느끼고, 새들의 노랫소리에서 창조주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진실로 영성이 맑은 사람이다.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는 바람을 '바람 수사'로, 새를 '새 수녀'라고 부르면서 자신은 늘 그들과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 얼마나 바람같이 자유롭고 건강한 사람인가? 자연과 교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연 속에서 절정의 환희와 초월의 신비를 경험한다. 깨달은 사람은 창조적 관계가 곧 생명의 본질임을 안다.
창조적 관계를 형성하는 수많은 요인 중에는 ‘아야! 선(Ouch! line)’을 인정하기가 있다.
모든 사람은 아픔을 느끼는 자신의 영역이 있다.
신체적이든 정서적이든 다른 사람이 그 영역을 침범하면 아픔을 느낀다. 아픔을 느끼는 이 영역을 우리는 '아야! 선(Ouch! line)'이라고 부른다.
프로 레슬러를 꼬집었더니 싱글벙글 웃는데, 연약한 피부를 갖고 있는 여성을 꼬집었더니 아프다고 소리지르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렇다고 그녀를 "왜 저 프로 레슬러는 웃고 있는데 너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느냐?"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야! 선'은 사람마다 다르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픔을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오직 당하는 사람만이 아픔이 어디에서 느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의 '아야! 선'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아야! 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깨달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야! 선'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아야! 선'을 존중하는 사람들이라야 창조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글 | 윤종모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