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여성의식의 특성
환상적 통합성(2)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성문학을 통해 새롭게 창조되는 한국 여성의 유형과 삶터는 다음과 같은 것에 연원을 둘 것이다. '사람은 본래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고 있다면, 그의 자아 개념은 실존적으로 형성되며, 실제에서도 그런 진취적이고 개척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언어와 자아의 실현 관계에서 보면, 자아는 언어를 통해서 형성되며 인간의 마음은 언어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넓고 깊고 높은 다양한 경험으로서 자아실현은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자아실현은 '타고난 소질의 개발'이 아니라 ‘잠재 가능성의 실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아실현의 원천이 되는 잠재 가능성이나 소질이라는 것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렸을 때 그리고 생애를 통해서 '여러 경험'에 따라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활동 지역이나 범위가 제한되던 여성수필가에게 있어 상상적 문학의 기능은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바구니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과수원 가득 우리 집의 가을은 익어가고 있다. 호박덩굴을 헤치고 애호박을 따다가 양지를 골라 호박고지를 썰어 널고, 깻잎 부각도 가지런히 널고 댓돌에 앉으니 세상 아무것도 부러운 것 없이 평화롭다. 노랗게 물든 깻잎을 딴다. 송이마다 까뭇까뭇 열매를 보듬고 풍성했던 가을을 전송한다. 어떤 잎은 소슬바람에조차 사그락 떨어져 내린다. 한잎 또 한잎 채곡채곡 따 모으는 내 손끝에서 가을은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누가 푸짐하게 먹는다고 손가락 성한 것이 없도록 극성스럽게 따들이느냐고 그이의 핀잔을 받으면서도 연일 들로 밭으로 내닫는 속셈은 비밀스러운 음모다. 나는 그 일속에서 내가 따뜻한 여성임을, 부지런하고 알뜰한 아낙임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정갈하게 말려서 몫몫이 비닐 봉지에 갈무리할 때 참 행복해진다. (굵게 강조 : 인용자)
- 반숙자,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중에서 -
여성수필가 반숙자의 「겨울이 오는 길목」 속에는 남편과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여심이 탐스럽게 널려 있다. 여성수필가는 서울에서 공직 생활을 하던 남편이 과수원이 좋다고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해서 따라 내려와 남편이 좋아하는 만큼 사과나무를 좋아하는 여인이다. 가을 하늘로 뻗은 사과나무 가지에 달린 탐스런 사과를 따면서, 작가는 ‘이렇듯 계절을 내 손으로 따면서 내가 남자 아닌 여자로 태어남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지. 세상을 휘두르는 남정네의 업적도 위대하지만 더 많은 곳에서 흔적 없는 일에 여인만의 아픔을 묵묵히 견뎌내며 사랑과 정성을 쏟고 사는 여인들이 있어 세상은 아직껏 따습고 살만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인용 예문에서 드러나듯이 그녀는 여성으로서 주어진 운명을 순응하며, 사랑받는 아내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한다. 치마폭 가득 계절을 따 담고 논둑길을 걸어오며 순하디순한 충청도 여인으로 태어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축복받은 생명으로 의미화하며 무한히 감사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보편성과 개성의 극단적인 거리, 즉 여성관의 양면성을 지니고, 사회변화에 지체현상을 보여왔던 여성들이 현대 사회 특히 1980년대를 거쳐 오면서 여성의 자아와 일에 대해 주체적 요구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여성수필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여성은 불확실에 도전하며, 위험부담을 안고 모험을 해 가면서 '나'를 투입해서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어 '나'를 실현하고 나를 상승시키려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상호주의 심리학자 Cooley에 의하면, 자아의식은 개인의 주체성의 발달을 통해서 그 개인의 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개인의 주체의식은 그에 관한 남들의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형성된다. 특히 개인의 자아실현은 사회 질서 속에서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를 맞아서 세계문화의 주체로 설 수 있는 의식과 기술의 준비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 낯설고 어려운 세계와 여성이 친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도 여성수필의 역할과 기능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일군의 여성수필가들이 자아실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자아실현 문제와 상충되는 낭만적 사랑과 관계를 사회 질서 속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아직도 여성의 행동적 방향은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려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여성의 딜레마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하는 여성수필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가정과 사랑 그리고 자아의 환상적 통합론인 것이다. 사랑과 자아가 모순적으로 화해하고 있던 '여성다움과 자아'의 문제를 훨씬 더 주체적인 눈으로 그리는 수필들이 발견되는데, 이들 수필은 가정과 자아의 환상적 통합을 주창하고 있는 글들이다.
또순이 정신은 이렇듯 근면성실함이다. 동양 민족 중에 일본 여성 다음으로 한국여성이 부지런하다고 한다. 여성이라고 하여 나약하고 소극적인 시대는 지났다. 오히려 튼튼한 몸과 정신으로 단련되어 자란 여성은 안일하고 나태하게 자란 여성에 비해 이 사회를 쉽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국의 여성처럼 내실을 기한 여성도 드물 것이다. 봉건주의 사회 속에서 묻혀 표출되지 않는 밀폐된 가정에 젖어있던 그 시대에 살면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과 류관순 같은 훌륭한 여성들이 탄생되지 않았는가.
하물며 오늘날처럼 남녀평등이 현실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여성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가. 한 알의 밀알처럼 살아온 또순이 소녀의 삶과 정신이 우리 한국 여성의 가슴 밭에 뿌려진다면 장차 알알이 영근 수백 배의 결실이 이 땅 방방곡곡에 쏟아져 나오리라. 이 가을이 무르익으면 제2, 제3의 또순이들이 이 사회를 황금 볏단같이 풍요로이 메우리라.(pp. 61-62) (굵게 강조 : 인용자)
- 한영자, 「또순이」 중에서 -
조선 시대라는 봉건적 억압 속에서도 신사임당 같은 여성이 훌륭한 여성이 탄생했듯이 여성들은 제도적 현실적인 여러 가지 여성에게 불리한 환경에 살면서 삶이 힘들어도 참고 인내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작가의식은 페미니즘 관점이 아니다. 억압적 기제에 저항하고 반항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순을 타파할 수 있다는 여성학적 사고는 이 작품의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또순이 정신의 다른 말인 ‘근면 성실함’의 포장을 벗기면, 인내와 순종이라는 전통성 여성성이 드러난다. 아직도 남녀평등 사회라는 미명 하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이 많은데, 여성수필가의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가사일도 내 일처럼 열심히 하고, 밖에 나가 일도 열심히 하는 ‘또순이’가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변화를 수용하는 데 인색해 지면서 가부장제만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민병욱은 수필문학의 정체성은 기존 수필이 가지고 있는 체제지향성, 지배질서의 순응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사회변혁이나 세계의 재편성을 요구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요청을 기존 수필이 거부 배척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여성의 자각과 해방적 여권 운동은 수필의 사회적 생산성과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수필의 사회적 생산성은 수필가의 역사의식 또는 사회 인식과 관련된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여성수필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필의 사회 비판적 기능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수필은 사회적 기능방식의 내용적 진술성을 담아내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기존 질서와 가치를 '기존 질서와 가치의 관점'으로 재발견하여 그 허위의식을 폭로, 비판할 수가 있다.
여성수필가 한영자는 기존 질서와 가치의 과점‘을 재발견하기보다는 한국적 상황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위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또순이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슈퍼우먼의 다른 이름은 ‘또순이’다. 작가는 옛날의 봉건적 밀폐시대에서도 신사임당과 유관순 같은 훌륭한 여성이 나왔으니, 요즘 같이 남녀평등이 실현된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 가정 경제에 도움을 주고 아울러 자신의 자아실현도 이루는 일거양득의 또순이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여성수필가가 수필의 도입부에서 말하고 있듯이, 또순이의 삶과 정신은 인생의 밀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참된 생애의 도전이고, 자신의 역경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몸을 던져 헤쳐 나가는 자세다. 주부로서 가정에 묻혀 아이나 남편 뒷바라지만 하고 나태하고 안일한 삶과는 다른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삶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태도 또한 여성학적 입장에서 보면,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모순인 가부장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다시보기가 요구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