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바위꾼에 대한 단상
德松 /홍성기
옛날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에서 호남선 철로를 따라 약 3km 남짓한 거리에 신태인읍이 위치해 있으며 그곳에 신태인국민학교가 있었다. 신태인읍 거의다 가서 철길 옆에 야바위꾼들이 날마다 자리를 펴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야바위판을 벌이곤 하였다.
야바위는 사전적으로 "교묘한 수법으로 남을 속여 돈을 따는 노름의 하나이다"라고 되어 있다. 야바위꾼들은 항상 바람잡이들을 동반하고 다닌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손님으로 가장한 바람잡이들이 하나 둘 나타난다. 첫번째가 다가와 손님인척 내기를 걸고 돈을 따서 가는척 연기를 하고 이어서 두번째도 나타나 내기를 하고 돈을 따서 간다. 손님들이 볼 때 나도 하면 금방 딸 것같은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정말 그들의 수법은 기기묘묘하여 언제 바꿔치기 하는지 도무지 마술처럼 알아낼 수가 없다. 바람잡이들의 존재도 까맣게 모른체 물끄러미 보다가 나도 모르게 빠져 들었다.
친구들은 잠시 구경하다가 학교에 늦는다고 부지런히 학교로 갔는데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몰래 남아 야바위판을 계속 구경하였다. 손님 인듯한 어른들이 돈을 묻고 숨겨둔 카드를 찾아내자 돈을 배로 주었다. 내가 생각한 대로 카드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고 나도 하면 쉽게 딸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상적인 어른들이라면 야단을 쳐서 보내야 옳은데 돈을 걸라고 해 처음에 100원을 걸고 했는데 보기 좋게 당하고 말았다.
카드가 세장인데 한 장만 다른 색으로 되어 있으며 세장을 이리저리 위치를 바꾼 후 그 카드를 맞추면 건 돈의 두배를 주는 것이다. 내 눈엔 분명히 가운데에 다른색 카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확인해보니 옆에서 나왔다. 또다시 눈을 크게 뜨고 다시한번 도전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 마지막 남은 100원을 걸고 눈을 다시한번 동그랗게 떴다.
"아저씨, 손대지 마세요!"
내가 봐둔 카드를 얼른 짚었다. 그러나 열어 보니 엉뚱한 카드가 나왔고 돈을 돌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지만 헛수고였다. 나는 터덜터덜 학교로 갔다. 지각했을 뿐만 아니라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크게 혼날 줄 알았지만 다행이도 선생님께서는 매도 안대고 혼만 내셨다.
그 당시 나는 공부를 잘하여 분단장도 하고 선생님과 부모님께 많은 신뢰를 받았던 터라
“선생님, 내일은 틀림없이 육성회비를 가져오겠으니 한번만 봐 주세요!”
겨우 위기 탈출을 할 수 있었다.
막상 집에 오니 한번 가져간 육성회비를 또 다시 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말하면 믿어 주시는 아버지께 다음과 같이 거짓말을 꾸며 대었다.
“아버지, 제가 똥구가 많이 아파서 그런데, 약값 좀 주세요”
아버지는 얼마나 많이 아프냐며 같이 병원에 가보자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는
“아니요, 저 혼자 병원에 가도 되니까 300원만 주세요!”
아버지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돈을 꺼내 주셨다. 그리고 꼭 약을 사서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께 너무나 죄송하다. 이렇게 해서 다음날 육성회비를 무사히 갖다 내고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전혀 생각지 못한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교회에 다니게 되고 어느날 기도하던 중 어린 시절 철부지로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돈을 타갔던 그 사소한 일이 큰 죄였음을 깨닫고 회개하며 흐느껴 울었다. 그 후론 헛된 사행성 놀이나 행위는 절대하지 않겠다며 나 자신과 약속을 하고 지금까지 잘 지켜왔다. 그런데 십여년 전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이었다. 동대문 지하상가 모퉁이에서 야바위꾼들을 다시 목격하게 된것이었다. 군복을 잘 차려입고 휴가 나온 군인이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하고 억울해 하면서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어느새 그 주위를 바람잡이들이 나타나 겁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버젓이 야바위꾼들이 건재하고 있음에 회의를 느끼며 씁쓸한 마음으로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다. 누군가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