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 -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2. 1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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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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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6. 02:46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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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청량산에는 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10여 년 동안 수도하며 글씨 공부를 했던 김생굴이 있고, 최치원의 자취가 서린 치원대가 있다. 금탑봉 아래 외청량사 응진전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영정이 남아 있고, 자그마한 산신각의 호랑이 그림이 특이하다.
조선시대 문신 주세붕이 청량산에 대해 예찬한 글을 보자.
이 산은 둘레가 100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둘러싸고 있고 절벽이 층을 이루어 수목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또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에게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중국의 형산(荊山)에서 맑은 물을 마시고 만월암(萬月庵)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청량사
663년(신라 문무왕 3)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청량산 도립공원 내 연화봉 기슭 열두 암봉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청량사에서 마주 보이는 건너편의 청량산성은 공민왕 16년(1361)에 쌓은 산성으로 둘레가 16킬로미터쯤 된다. 10만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오자 노국대장공주를 데리고 이천을 거쳐 이곳에 온 공민왕은 청량산 근처에 솟아오른 축융봉 아래 청량산성을 쌓고 1년간 숨어 지냈다. 청량산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보이는 축융봉에는 공민왕이 숨어 지냈다는 오아대와 공민왕당 그리고 군창(軍倉)의 흔적이 있다. 그곳에는 그때 새긴 바둑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 바둑판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봉화고을 사람들은 그때 이곳에 왔던 공민왕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아서 그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산성은 선조 28년에 관찰사 이권일이 봉화군수에게 명하여 크게 개축했다고 한다.
청량산 현수교는 해발 800미터 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다리다. 산악 지대에 설치된 보도형 교량 중 가장 길고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하늘과 가장 가깝다 해서 ‘하늘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최대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ㆍ시공되었으며, 바닥재가 강화유리라 아스라한 계곡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봉화군이 2008년 이 다리를 설치한 이래로 관광객이 크게 늘어 새롭게 명물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지는 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9 : 우리 산하, 2012. 10. 5., 신정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