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 운현궁
영원한 인간사랑 ・ 2023. 11. 4.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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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 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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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9. 08:37조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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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학습백과 초등 창의적 체험활동
운현궁
1. 운현궁에는 누가 살았을까요?
준비물: 사진기, 필기도구 * 주말 상설 공연이나 특설 행사가 있는 날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어요. * 우리 고유의 명절에는 재미난 민속 행사가 열려요. * 전통 예절 교육과 전통 예술을 배워 보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세요. |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에는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던 궁궐이 많이 있어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임금이 대신들과 함께 정치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던 궁궐이에요. 궁궐을 지키는 무사, 궁녀, 내시들도 살았기 때문에 궁궐은 굉장히 넓고 화려했어요.
종로에 있는 운현궁은 작은 한옥 마을처럼 느껴져요. 그런 운현궁이 나라를 좌지우지1)하며 조선 역사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었어요. 바로 흥선 대원군이 운현궁에 살 때의 일이랍니다.
흥선 대원군은 조선의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아버지예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대신해서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임금처럼 나라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흥선 대원군은 임금보다 더 큰 권력을 누렸어요. 하지만 아들 고종, 며느리 명성 황후와 정치적으로 대립하면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요.
운현궁은 이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궁궐로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어요. 운현궁에서 한 시절을 호령했던 흥선 대원군의 발자취를 찾아볼까요?
대원군은 어떤 사람을 말하나요?
조선 시대에는 임금의 맏아들이 왕위를 물려받았어요. 아들이 일찍 죽거나 딸만 있을 경우에는 왕실의 자손 중에서 왕위를 이어받을 인물을 고르기도 했어요. 그렇게 선택된 왕세자의 친아버지를 대원군이라고 불러요.
임금이 살던 궁궐은 어디인가요? 조선을 세우면서 가장 처음 지은 궁궐은 경복궁이에요. 훗날 창덕궁과 창경궁을 새롭게 짓고 임금이 잠시머물거나 왕자와 공주들이 따로 옮겨와 살기도 했지요.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서 사라진 뒤로는 주로 창덕궁과 창경궁 등에서 임금이 살았어요. 그 후 고종 때에 이르러서야 경복궁을 새로 세웠답니다. |
임금이 살던 경복궁이에요.
2. 흥선 대원군은 어떤 인물인가요?
1) 새로운 조선을 꿈꿨던 대원군
제25대 임금인 철종이 후계자 없이 죽음을 맞이하자 고종은 대왕대비 조씨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잇게 되었어요. 고종은 흥선 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이었지요. 임금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은 나이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나랏일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어요.
먼저 흥선 대원군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사라진 경복궁 건물들을 다시 지었어요. 조선을 침략하는 서양 세력도 막으려 노력했지요. 이 모든 것은 왕권을 강하게 지키기 위한 흥선 대원군의 의지였어요. 신하들의 싸움으로 어지러웠던 정치를 개혁하고 시대에 맞게 법을 고치기도 했어요.
2) 대원군의 쇄국 정책
대원군은 문물 교류를 요청하는 서양 세력을 강하게 물리치며 쇄국 정책을 단행했어요. 천주교 사상이 왕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고 천주교인들도 박해했지요.
이 일을 구실 삼아 쳐들어 온 프랑스 함대의 침입을 두 차례나 물리쳤지만 그로 인해 죄 없는 백성들이 다치고 죽었으며 나라의 보물도 많이 빼앗겼어요. 고종을 대신해 정치를 했던 10년 기간 동안 흥선 대원군은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아야 했어요. 그 뒤 고종이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하자 대원군은 운현궁으로 돌아갔지요.
쇄국 정책이란 무엇인가요? 외국과 문물 교류를 하지 않는 정책이에요. 정치, 외교와 같은 분야에서 외국인이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무역을 금지하는 거지요. 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쓰고 외국 오랑캐를 배척한다는 뜻의 ‘척화비’를 세웠어요. 이 때문에 조선은 국제 정세의 흐름에서 점점 더 멀어졌어요. |
3) 운현궁에서 생긴 일
* 고종과 명성 황후의 가례 : 흥선 대원군은 과거 정치가 혼란했던 것이 왕비의 집안이 권력을 잡고 나라를 휘둘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외척2)을 뿌리 뽑기 위해 친척이 많지 않은 규수3)를 찾았지요. 명성 황후가 된 민자영은 홀어머니와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재주가 비상하고 영특했어요. 명성 황후는 운현궁에서 왕비가 될 수업을 받았고, 이곳에서 고종과 가례를 치렀답니다.
* 흥선 대원군의 정치 사랑방 노안당 : 흥선 대원군은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10년간 정치를 했어요.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이 아니라 운현궁에서 모든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했어요. 왕권을 강하게 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모든 일들이 운현궁의 사랑채인 노안당에서 이루어졌어요.
흥선 대 원군이 나랏일을 결정했던 노안당이에요
가례란 무엇인가요?
왕이나 왕세자, 왕세손이 혼례를 올리는 것을 가례라고 해요.
3. 운현궁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운현궁 체험 코스
수직사 → 노안당 → 노락당 → 이로당 → 유물 전시관
운현궁 체험 코스
1) 수직사
수직사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맡았던 이들이 살던 곳이에요.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작은 한옥이었던 운현궁의 규모가 날로 커졌지요. 대원군의 권력이 커지자 경비병이나 관리인의 수도 늘어났어요.
현재 수직사에는 화로와 가구, 호롱불이 전시되어 있고 군복을 입은 경비병 모형도 볼 수 있어요.
2) 노안당
흥선 대원군의 사랑채 건물이에요. 흥선 대원군은 은퇴한 후에 주로 노안당에서 머물렀다고 해요. 그리고 이곳에서 임종4)했어요.
3) 노락당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에요. 고종이 태어났을 때 지어진 건물로 이곳에서 고종과 명성 황후의 가례가 치러졌어요. 이후에도 잔치나 중요한 행사를 할 때 노락당을 이용했다고 해요.
4) 이로당
이로당은 여자들이 머물던 곳이었어요. 여자들이 거주하면서 살림하던 곳이라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됐어요. 마당이 막혀 있고 건물이 ‘ㅁ’자 형태로 되어 있어요. 높은 툇마루 때문에 정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곳이에요.
5) 유물 전시관
운현궁에 얽힌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에요. 척화비, 당백전 등 대원군의 행적5)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고종과 명성 황후가 가례를 올릴 때 입었던 궁중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요.
6) 이것만은 해 봅시다.
① 전통 예절 교실에 참가해 보세요.
운현궁의 이로당에서 전통 예절 교육이 열려요.
② 궁중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 보세요.
옛날 군복이나 궁에서 입던 당의를 입어 보고 운현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세요.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예요.
③ 전통문화를 체험해요.
닥종이 인형 교실, 한글 서예와 한문 서예 교실, 보자기 만들기 교실, 자수 교실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직접 만들어 보는 강좌가 열려요.
4. 체험 학습 보고서
운현궁에 다녀와서
가족들과 운현궁에 다녀왔다. 운현궁은 창덕궁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살았던 곳이다.
운현궁의 역사
운현궁은 고종이 태어난 곳이고, 고종이 왕위를 이어받은 후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했던 곳이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은 후 대왕대비는 흥선 대원군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 왕위를 이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고종이다. 작은 한옥이었던 운현궁도 고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점점 규모가 커졌다. 또 명성 황후가 이곳에서 왕비 수업을 받고 고종과 가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운현궁은 조선 후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 중 하나이다.
운현궁에서 해 본 체험들
운현궁은 크고 넓은 경복궁과는 다르게 작고 소박했다. 그래도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높고 방의 개수도 많아 민속 마을에서 본 양반가의 집과 달리 위엄이 느껴졌다. 궁중 의상을 입어 보는 체험이 있어서 당의를 입고 이로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상궁처럼 옷을 입고 궁을 다녀 보니까 사극의 주인공같이 느껴졌다. 이로당은 옛날에는 남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운현궁을 돌아보며 느낀 점
흥선 대원군과 고종에 대해서 잘 몰랐었는데, 유물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조금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가례를 위해 화려한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5. 여기도 좋아요
1) 덕수궁 정관헌과 중명전
고종은 경복궁을 떠나 덕수궁을 정치의 중심으로 삼았어요. 고종은 서양 여러 나라와 수교를 맺고 외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덕수궁에는 서양식으로 궁궐도 짓고 서양의 외교관과 선교사들도 드나들게 했지요. 정관헌은 연회를 열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에요. 화려하고 이색적인 건물이지요. 중명전은 고종이 덕수궁 안에 세운 왕실 도서관이에요. 붉은 벽돌로 지어져서 외국 건물처럼 보여요.
위치: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2) 운현궁 양관
운현궁 이로당 뒤편으로 3층짜리 흰색 건물이 있어요. 흥선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용이 지은 서양식 저택이에요. 전통 한옥 안에 서양식 저택을 지어 함께 썼다는 것이 재미있어요. 지금은 덕성여자대학교 평생 교육원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위치: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
3) 북촌 생활사 박물관
북촌은 한옥 보존 마을로 지정되어 옛날 분위기를 마음껏 느낄 수 있어요. 북촌 한옥 마을에서 수집한 생활 속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 북촌 생활사 박물관이에요. 가마솥, 장독대, 호미, 옛날 옷, 시계, 재봉틀 등 볼 것들이 가득해요.
위치: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5나길 90
잠깐 퀴즈
흥선 대원군이 외국과 문물 교류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정책은 무엇일까요?
1. 친화 정책
2. 쇄국 정책
3. 사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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