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시종일관 지난 구정 때 3일간 혼자 걸은 4대강 국토순례 문경새재 길을 떠 올렸다. 따지고 보면 3일간 줄곧 걸었을 뿐이다. 걸은 내용을 말로 하자면 단지 그냥 걸었다는 것 뿐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 까보냐? 단 그 황량한 비 내리는 겨울 길을 그렇게 걸으면서도 지루하단 생각을 해 본적 없다. 매번의 발걸음에 나름의 의미가 있었고 사유는 깊어만 갔다.
이 영화 <사탄탱고>가 그랬다. 7시간 넘게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겠다고 사람을 7시간 이상이나 영화관에 잡아두겠다는 건지... 어디 그 잘난 얘기 좀 들어보자고 약간의 억셈을 갖고 영화관에 들어섰다.
어프닝시퀀스 부터 사람 질리게 만든다. 남들은 초반에 관객의 시선을 잡아놓겠다 과장되게 설쳐대기 마련인데 감독 벨라타르는 뱃장이 이만저만 아니다. 깡패래도 이런 깡패가 없다. 어릴 때 동네 들어와 외쳐대던 꽈배기 장사 생각이 났다. “꽈배기 살라면 사고 말래면 말아요~” 이왕 영화관에 들어 왔으면 넌 내 의도대로 내 스타일에 맞추어 탱고 스텝을 밟아 주어야겠단 태도다.
웅덩이에서 작은 물방울이 부서지는 것을 보고 비가 오는 줄 알았다. 그냥 소부터 들이대고 녀석들이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지루하게 앵글은 쫒아 다닌다. 소 한 마리가 다른 소 한 마리에 올라탄다. 아주 자연스럽다. 일부로 그렇게 연출시킨 흔적이 없다. 도살장이다. 잠시 죽음에서 탈출한 녀석들의 짧은 휴식이요 자유다. 이젠 끝낼 만도 하건만 롱테이크는 정말이지 끈질기기도 하다. 하마터면 “악~”하고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그리곤 졸음이 밀려왔다. 아차! 오늘 하필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났을 건 뭐람! 또 남대문시장 까지 찾아가 닭곰탕을 잘 먹고 올 건 뭐란 말인가. 3박자가 맞았으니 졸린 건 당연하였다. 세상은 이렇게 무엇이든 완벽한 필연으로 움직여지게 마련이다. 초반부터 이렇게 졸려서야 어떻게 7시간을 버텨낼 것인가? 표3장을 한꺼번에 산 것을 후회했다. 돈이 아까워서 눈을 부라렸다. 난 그렇게 감독에 서서히 적응되어가기 시작했다.
또 물웅덩이를 자세하게 들여다보게 만든다. 빗물이 고인 작은 웅덩이에 을씨년스러운 세상 풍경이 아름답게 반영되어 있다. 장면은 정지된 채 아주 사소함을 통해 움직임을 나타냈고, 시간은 반복된 시계소리, 파리날개 붕붕 거리는 소리, 빗물 떨어지는 소리, 바람소리, 술잔 꺼덕이는 소리로 아주 꾸준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시 같은 대사를 철학자처럼 읊조리다가 계속 어댄가로 걸어갔다. 카메라는 또 지루하게 그들을 뒤 쫓았고 난 어느새 지루하단 생각을 날려 보내고 그들의 인생살이에 합류되어가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이상이나 계속되는 모노드라마, 술에 취한 뚱뚱이 노 의사의 힘겨운 몸동작에 함께 씩씩 거렸다. 쓸어져 죽은 줄 알았던 노인네의 배에서 미약한 호흡이 들려오고, 그 호흡소리에 박자 맞추어 옆에서 한 관객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10월. 비가 내리는 헝가리의 가을은 우리의 초겨울 같다. 어른들의 허우적거림과 무관심 속에 어린 계집아이는 당돌하게도 고양이와 함께 쥐약을 먹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돈나무를 심었고 돈나무에 사기 당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대도 가을비는 지루하게 내렸고 어른들은 비 내리는 길을 또 떠났다.
도대체 이 영화가 어찌 끝나려고 계속 이 모양인가? 남겨진 노 의사가 책상 앞 창가에 나무판자를 들이대고 대못을 박는다. 한 장, 또 한 장, 마지막 한 장을 창문에 대자 더 이상 비가 보이지 않는다. 어둠이다. 비 내리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어둠속에서 마지막 대못 치는 망치질소리가 들렸고 난 깜박 졸았다. 영화는 그 순간 끝이 났다.
지랄!
자막이 비처럼 흘러내렸다.
2014. 2.14.
첫댓글 ㅋ 이런 영화는 지루한 클래식 듣는 것 처럼 인내가 필요하지만 내내 잊쳐지지 않지요 내내 내 뇌리에 자리합니다.최근 개봉한 '인사이드 르윈 '보고 싶은데 평촌에는 안 하네요.'폼페이의 최후' 보고 낼은 '노예12년'일요 사생 없는 동안 조조 영화 실컷 보내요. 2000년도 개봉한 '러브오브 시베리아 '원 제목 시베리아의 이발사 최근에 다시 보았는데 역시 또 봐도 좋으네요.니키타 미할코프 감독 사랑은 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지키는 자의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