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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1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란 프로그램에서 장애학 강의를 할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교수가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모습. ⓒEBS 동영상 캡처
EBS1 프로그램인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에서 장애학에 관해 강의한다고 하길래 필자는 그 강의를 지난주 월요일부터 쭉 들었다. 에머리 대학에서 생명윤리학을 가르치는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교수는 '무엇이 장애인가?', '장애 운동의 역사', '비판 장애학의 등장', '프릭쇼는 왜 인기를 잃었나?', '우생학은 장애를 어떻게 다루나?', '장애인의 예술',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등 7개의 주제를 갖고 우리에게 장애학을 강의했다.
들으면서 '무엇이 장애인가?'에선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대해 다시 복습할 기회가 생겨 좋았다. '장애 운동의 역사'에선 정의와 차별 철폐, 평등을 위한 운동들이 장애인, 흑인, 성 소수자 등 모든 집단을 아우르며 함께 했다는 말을 들으며, 권리 운동이란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판 장애학의 등장'에선 마지막에 우리 모두 인간으로 살아가다 언젠간 장애를 얻어 남은 평생을 보낼 테니 우리는 힘을 합쳐 누구나 접근하기 쉽고, 더 포용적인 다양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새삼스러우면서도 중요한 사회통합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런데 4, 5강을 들으면서 조금은 생각에 잠기게 됐는데, 먼저 4, 5강의 내용을 얘기한 다음 왜 그랬는지 생각을 밝히겠다. 4강 주제는 '프릭쇼는 왜 인기를 잃었나?'이다. 팔, 다리가 없는 독일의 명필가인 마티아스 부힝거(1674~1740)처럼 흥미롭고도 독특한 장애가 있으면 박물관에 전시됐거나 생물학적으로 희소한 사람들을 모아 전시하는 “프릭쇼(Freakshow)”에 나설 수 있었단다.
프릭쇼는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얻고 공공 영역 진입이 가능케 되는 중요한 기회였으며, 장애인이 존재를 드러내고 이름을 얄릴 수 있었단다. 지금은 이 쇼를 장애인 착취의 일종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이 쇼를 통해 장애인들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나 세간 인식을 통제할 수 있었고, 적어도 일자리를 가질 기회는 있었다고 로즈메리 교수는 말한다.
그런데 1920년대를 전후로 프릭쇼는 막을 내렸고,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대두되었단다. “프릭(Freak)”을 의학 연구나 치료 대상인 환자로 만들었다는 가설, 관객이 장애인을 볼 때 감정을 자극받아 연민을 느꼈다는 설 등이 있는데 로즈메리 교수는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어떤 설보다 유력한 게 있다고 말하는데, 그건 바로 우생학의 부상이라는 거다.
1932년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 프릭쇼의 한 장면(좌측), 프릭쇼에 대해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 교수가 설명하는 모습(우측). ⓒEBS 동영상 캡처
우생학이란 우수한 유전자를 보전하고 열등한 유전자는 제거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원래의 뜻은 ‘좋은 태생’(Eu(좋은)+genics(태생))이다. 우생학은 이념이자 정책으로 특정 공동체 형성 시 그 가치를 지키고자 출산의 주체, 방식, 대상을 통제하며 과학과 의학으로 수행된다. 인간의 삶을 과학으로 이해하면서 장애라는 ‘인간의 다름’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졌으며 진화와 현대 과학 같은 새로운 이야기도 등장했단다.
하지만 과학은 장애에 관해 ‘정상’이란 기준에 따라 인간이 형성·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했다. 이런 생각은 오래됐다며, 그 예로 장애가 없는 걸로 보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예로 제시한다. 이런 생각이 가장 강력한 모습으로 나타난 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몇십 년 동안으로 우생학으로 발전한 과학으로 인종 개량을 꾀한 시절이었단다.
그 당시 우생학은 북미에서 긍정적, 진보적인 것으로 여겼고, 과학, 지식, 산업, 기술 개발을 이끄는 방법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 종류의 인간을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표준의 완벽한 예로 제시하며, 그 표준과 이상적 형태를 따르지 못하면 평가 절하하고, 폄하했기에 우생학은 인간성을 훼손하기도 했다.
북미에선 실제로 남녀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무시하고 깎아내렸는데, 여기서 서양 남녀의 표준이란 백인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 비장애인 남성과 여성 등이었다. 정상은 좋은 것, 건강한 것, 선택받은 우리의 운명을 나타낸다는 철학자 이언 해킹의 말을 언급하며, 로즈메리 교수는 ‘정상’이란 단어는 20세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됐다고 말한다.
이즈음 가장 완벽한 아기 대회 등이 개최됐는데, 거기에 나온 아기들은 비장애인에 우량한 백인 남자 아기였으며, 그런 표준과 정상에 이른 인간은 우생학이 달성하라고 종용한 목표였다. 의학은 이렇게 대체로 장애와 장애인의 제거를 목표로 삼았다.
의학적 접근에 관해선 로즈메리 교수는 장애를 지지한다 해서, 유전성 질환 등이 있는 사람에게 의학적 개입을 배제하는 건 아니라며, 고통을 덜고 인간으로서 번영하도록 과학이 인류의 우생학적 개선에 기여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개선 방법이 때로는 인간에게 유익하게, 때론 파괴적으로 이루어졌다고 교수는 말하며 5강에서 우생학에 관해 더 자세히 말한다.
장애인들이 살해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의 가스실. ⓒ이원무
다음 5강인 '우생학은 장애를 어떻게 다루나?'에서 로즈메리 교수는 1930~1940년 대의 독일 나치의 우생학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참상을 딛고, 더 강한 국가 건설과 민족 형성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독일의 나치 정권은 여러 방법으로 우생학을 채택하며 유전적으로 열등한 자손을 남길 가능성 큰 사람에게 불임 수술 시행한다는 유전적 질환의 자손 예방법(1933)을 제정하는 등 고통, 질병과 장애인까지 뿌리 뽑는 걸 목표로 삼았단다.
나치 정권하의 건강한 아리아 시민이란 개념에 어긋나는 유태인, 신티족, 유전적으로 열등하고 간주되는 장애인 등을 체포했다. 체포된 장애인은 요양시설로 보내졌고, 정신질환자 등 소위 부적격자에 대한 집단 살인 명령인 T4 작전에 따라, 나중에는 장애인 수용을 위한 작은 의료시설에서 시작한 가스실에서 살해당하고, 더 큰 수용소에서 학살당하는 등 몰살당했다.
우생학이 삶이 나아지는 걸 목표로 했지만, 결국 실제 수행 과정에선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파괴했기에 역설이 아닐 수 없다며 로즈메리 교수는 성토한다. 우생학이 인류 개선 임무를 수행하다 무슨 일을 했는지(필자 느낌엔 ‘무슨 일’이라는 것이 인권유린을 가리킨다는 느낌) 인식하는 데서 UN의 세계 인권 선언 탄생의 흐름으로 갔다고 교수는 설명한다.
강제 수용소와 의료시설에서 장애인들이 체포, 실험, 살해당했음이 밝혀지면서 이에 책임 있는 의료계 종사자 등이 뉘른베르크 의사 재판(1946~1947)에 회부됐다. 유죄판결을 받은 의사들 가운데 몇 명은 실제로 처형됐단다. 하지만 이 재판을 계기로 장애인들의 인권유린 증거가 제시됐고, 의료진의 관련 의료행위가 밝혀지며 생명윤리학이 탄생하게 됐다.
생명윤리학이란 학문은 의학과 과학의 방침과 관행을 분석, 숙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게 오히려 인류에게 해롭게 되는 걸 막는 학문이다. 이 학문은 우리 모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학문이기도 한데, 왜냐면 나이 들면 모두는 언젠가 장애인이 될 것이니까.
이 학문은 정의, 자율성,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의무, 의학과 과학의 관행 등 생명 의료 윤리의 논제와 같은 연구 의제와 공공 정책 논의를 이끌어낸다. 이와 관련해 오늘날 생명 윤리학자들은 유전자 편집, 산전 태아 검사, 산과 의료에서 선택적 낙태, 연명 치료 중단, 경제 및 의료 자원 분배의 공정성 등의 의학, 과학의 관행을 고민한단다. 복잡하고 논란이 많지만 전 세계의 의료 기관·체계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들이다.
14년 전 2009년 11월 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안락사문제 한·일 국제세미나'에서 한 청중이 질의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DB
민권. 인권운동이 있었기에 의료윤리는 가능했으며 이를 통해 장애인이 보호받을 필요가 있는 특정 집단으로 인식됐다. 우생학 이름으로 과학, 의학이 인간에게 저지른 일들을 반성하며, 인권과 평등에 관한 생각이 대두됐고, 이런 생각은 모두를 차별적 치료와 제거로부터 지켜주고, 장애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다고 하며 로즈메리 교수는 말을 맺었다. 물론 태아의 장애 여부를 검사해 만약 있으면 낙태하는 등 장애인 제거 관행이 아직도 여전하지만 말이다.
강의를 들으며, 유전성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 고통 경감의 치료 목적으로 우생학적 관점이 활용된다면, 고민은 필요하겠단 생각이 살짝 든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수행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경우 인간 유전자지도를 마무리했고, 이를 기반으로 각 유전자 기능 규명에 들어갔단다.
여기서 쏟아질 정보를 통해 다수 유전자의 복합적 작용으로 일어나는 걸로 믿어지는 여러 종류의 암, 동맥경화 등의 심각한 질환의 발병 원인 규명과 치료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긴 암을 발생시키는 다양한 암 유전자가 있음이 알려졌으니, 암 유전자검사를 통해 그와 관련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유전자검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고 검사는 상업화될 것 같다.
난치성 질환이나 암 등 질환 치료 목적으로만 활용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생각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의 일면엔 유전자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러니 장애를 결함으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에선, 결함 유전자를 지닌 아기의 출생을 막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는 반인권적이라, 나로선 분노가 든다.
암의 경우,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암도 많기에, 유전자검사의 상업화 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제약회사는 유전자 결정론을 강조하게 될 거고, 결국엔 공해방지법 등의 환경 개선 요구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상당한 우려도 든다. 이렇게 된다면 인류에 상당한 폐해를 끼칠 수도 있으니까.
태아의 장애 여부를 검사해 만약 있으면 낙태하는 등 장애인 제거 관행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것도 상당한 차별이다. 장애 중 하나인 자폐성 장애를 없앤다고 할 경우, 수천 년간 문화․과학․기술적 혁신을 이끌어온 특성을 제거하는 셈이고 이는 인류 미래에 위협이 된다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의 말을 생각해보면 장애인 제거 관행은 오히려 인류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인류의 다양성을 통한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건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최근엔 세계 자폐성 장애인계를 분노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스펙트럼 10k 프로젝트인데,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ARC(Autism Research Centre) 이사인 사이먼 배런-코헨이 주도하는 연구다. 이 연구는 자폐성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정보와 함께 DNA 샘플 수집이 목적이며, 이를 통해 간질 등 자폐로 인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문제 연구에 사용될 예정이었단다.
Spectrum 10K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포스터. ⓒBoycott Spectrum 10K 단체
그런데 자폐성 장애인과 자폐 연구자들과의 협의 없이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기에, 이들은 우려를 표했다. 이 연구의 장점에 대해 자폐성 장애인과 자폐 연구자 등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음은 물론 유전자 데이터가 공유될 거란 두려움과 우려가 들었기에, 이들은 분노한 것이다, 유전자 데이터는 개인정보이기에 이럴 경우 개인정보 및 사생활 침해가 우려됨은 당연한 감정이다.
더군다나 이 연구에 대해 배런-코헨은 “만약에 우리가 자폐증 환자에게서 왜 이러한 문제가 더 자주 발생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증상의 치료나 관리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단다. 이런 정황이라면 유전자 정보를 통해 자폐성 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내 자폐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자폐인을 제거하려 한다는 의심 또한, 지울 수 없는 거다.
이를 통해 우생학의 인권유린 망령이 되살아난다 생각하니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자폐성 장애인들은 2년 전, 이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고, 우리도 여기에 찬성했다. 이에 스펙트럼 10k 연구팀은 연구를 중단했고, 자폐성 장애인에게 고통을 준 점에 대해 사과했단다. 이후 작년 5월 20일 스펙트럼 10k가 연구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영국 스코틀랜드 연구윤리위원회의 기존 결정에 대해 건강연구위원회는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되면, 스펙트럼 10k 프로젝트가 앞으로 계속될 것 같다. 이러면 유전자 데이터가 자폐성 장애 치료 목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스펙트럼 10k 연구팀의 사과가 나한테는 형식적으로 들리는 느낌이고, 실제로 자폐라는 다양성 제거에 이 연구가 활용된다면 미래엔 나의 자폐 정체성을 부정하게 될까 여전히 두렵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빡친다.
자폐 특성을 숨기는 마스킹(Masking)이라는 걸 하고, 눈치껏 사는 게 소위 정상이라는 기준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고맥락 사회가 우리 사회인 점은 나로선 더는 이상한 것도 아니다. 자폐성 장애등록 여부에 상관없이 자폐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소위 정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힘겹게 적응하지만 이로 인해 돌아오는 대가는 정신건강의 악화 등이 있을 뿐이다.
한 종류의 인간을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표준의 완벽한 예로 제시하며, 그 표준과 이상적 형태를 따르지 못하면 평가 절하하고, 폄하한 우생학의 일면을 생각하면, 이런 우리 사회의 특성도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정신적, 정서적으로 우생학적 관점이 묻어난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우생학의 망령은 자폐성 장애인에게 많이 다가옴을 절실히 느낀다. 지적장애인, 정신장애인의 경우에도 이런 건 비슷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4, 5강을 들으며 조금은 생각에 잠겼던 거다.
이미 우생학은 현대 생물학계에선 폐기됐다. 하지만 자폐인을 포함해 장애인계는 우생학의 망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우생학이란 망령을 떨치는 게 꿈이 아닌 현실로 되려면 장애를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보는 사회여야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새삼스러우나 자꾸 든다. 그럴 때 자폐인에게도 우생학의 망령이 많이 다가오는 게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터이지.
그나저나 EBS1에서 하는 장애학 강의를 들으면서 장애의 문화적 관점을 새로 접하는 등 장애에 대해 배우는 것도 생겨 좋았다. 앞으로 이런 강의들이 EBS 방송만이 아닌 지상파에도 자주 방영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가 어울리는 사회 토양이 무르익게 되길, 그래서 사회통합이 현실로 다가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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