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시간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라』
사무엘하 4:8-9, 305장
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9 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아브넬이 죽은 마당에 이스보셋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그릇된 공명심에 이스보셋의 머리를 들고 다윗에게 투항합니다. 이들은 큰 상급을 바라고 한 일이지만 웬일인지 다윗은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처벌하여 본보기로 삼습니다.
사무엘하 4장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다윗은 사울과 달랐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넘어지길 바랬고 부하들에게도 다윗을 잡을 수 있도록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셨다는 이유로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두 번째 다윗은 세상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아브넬이 죽었으니 이스라엘은 풍전등화입니다. 이스보셋 또한 허수아비입니다. 그렇다면 공명심과 상급 때문에 주군을 배신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처세의 성공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두 장군 레갑과 바아나가 한 일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사울은 다윗에게 그저 원수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울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연단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지금 나에게 사울과 같은 자가 있다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길 소망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다윗은 적군과 아군의 구별이 확실하였습니다.
다윗은 적군이었던 골리앗에게는 물매를 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웃던 형들에게는 물매를 돌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이나 아멜렉에게는 사자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에게는 달려들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다윗은 자신이 쓰러트려야 하는 적군과 자신이 보듬어야 할 아군이 확실하였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도 아군에게 돌 팔매질을 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다보면 나에게 아군인 사람들에게 돌 팔매질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윗은 그럴 때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쏟아냈습니다. 시편을 보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저주와 비난을 다윗이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것들을 사람에게 쏟아내었다면 저주가 되고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 분노를 하나님께 쏟아낼 때 그것은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화가 날 때가 왜 없습니까? 그것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처럼 아군과 적군을 구별할 줄 아는 믿음의 눈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쏟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시편에 왜 그리 솔직한 표현들이 많은지 이해가 가십니까?
마무리기도
사람에게 쏟으면 저주요 죄악이지만 하나님께 고백하면 기도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