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이른 새벽, 4시 반에 [까망 가방]을 둘러 메고 집을 나섰다.
가방 속엔 여행가서 읽을 책[모비 딕]도 집어 넣었다.
일행은 평소에 마음 맞았던 산악회 회원들, 총인원 11명이 오붓하게 떠난 것이었다.
가는 도중에 차 안에서 먹으라고 간식을 준비해 갔는데 아가씨들은 [팅클]과자를
제일 좋아했다. 게다가 내가 준비해 간 씨디로 김영동의 먼길과, 러시아 음악인
백만 송이 장미, 그리고 when i dream,들을 들으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너무
좋았다. 날이 차차 밝아 오면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고 하늘이 주황색으로 변하더니 해가 솟아 올랐다.
그리고 이내 [파아란]하늘이 보였다.
길 가엔 사과 과수원이 자주 보였다.
봄에 이곳을 달리노라면 [하양 사과꽃]을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세 시간을 달려서 경북 봉화에 도착했다.
이른 시각이어서 식당 문을 연 곳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 저기 다녀 보니 청국장 집이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리들
들어갔다. 메뉴판을 보나마나 다 같이 청국장을 시켰는데 사실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나온 청국장을 먹어 보니 맛이 좋았다.
더구나 밥에 앉힌 [파란콩]이 밥맛을 더해 줬다. ^^
아침을 먹고 나서 차에 올라 우리는 청량산으로 향했다.
차를 주차장에 대 놓고나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초반부터 숨찬
언덕길이었다. [가을 바람]에 떨러진 낙엽 밟는 소리가 좋았다.
드디어 저만치 청량사가 보였다.
절은 크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절이었다.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절은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마당의 빗질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발자국을 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절을 둘러 보고 난 다음에 '산꾼의 집"에 들렸는데 산을 오르는 이들을 위해서
아홉가지의 약초로 달였다는 차를 무료로 마실 수가 있었는데 차향이 너무 좋았다.
산을 오르는데 오랫동안 달콤하고 개운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산군의 집안에는 주인이 직접 구웠다는 [도자기]와 목각 작품들이 있었는데
목각으로 만든 목걸이가 예뻐서 후배들에게 한 개씩 사 줬다.
방명록에 글을 쓰라고 해서 악필인 내가 이렇게 썼다.
"늙은 몸이 이 곳에 들리니 신선이 된 듯하다" ^^
드디어 산행에 나섰다.
너무 앞서지도 않고 너무 뒤쳐지는 사람 없이 나란히 산을 올랐다.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 쉬며 오르다 보니 길고 긴 철계단이 나왔다.
그 철계단을 한 개 한 개 힘겹게 올라 가니 자소봉(840m)이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산세가 아주 아름다웠다.
청량산은 산행의 절반이 계단이다.
자소봉에서 동쪽으로는 일월산이 아스라히 보이고, 서남쪽으로는 낙동강과
안동호가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소백산의 연봉이 가물가물
보였다.
내려 오는 길에 보니 바위에 [바위솔]줄기가 붙어 있었다.
흰꽃을 피울때는 아름다웠으리라.
잘 생긴 [청송] 밑에 용케도 서리를 피한 [용담]이 늦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벌래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귓가에서 [붕붕]댔다.
날씨가 추운데도 양지 바른 곳엔 아직도 떠나지 못한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잠시 쉬며 [쪽물]을 들인듯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니 [하늘 바람]이라도
부는 걸까 [높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바라보니 [산토끼] 한 마리가
저만치 달아 난다. 배들이 고팠으므로 서둘러 산을 내려 와서 냇가에 있는
쉼터에서 점심을 해 먹었다. 한 회원이 갖고 온 수제비 반죽을 해 와서 라면
수제비를 해서 먹었는데 너무 맛이 있었다.
그 곳이 고향인 회원이 여름이면 그 냇가에서 [버들치]도 잡는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이 도산 서원이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나서 5분정도 걸으면 길 오른쪽으로는 낙동강 물줄기가
눈부시고, 솨아 솨아 불어 오는 솔바람 소리가 옛선비의 넋인듯했다.
멀리 [섬하나]가 떠 있는데 그 옛날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던 곳이라고 했다.
이름하여 시서대. 저녁 햇살을 안고 그림인듯 떠 있었다.
안동댐으로 인해서 그 곳은 섬이 되어 있었다.
서원안에는 공부방, 기숙사, 강의실등이 있었고, 유물 전시관 안에는 퇴계
선생의 베개, 지팡이, 문방구류등의 유품이 전시 되어있었다.
잠시 생각을 했다. 오늘날엔 퇴계선생같은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왜 드문 걸까!
햇살이 밝은 툇마루에 앉아보니 어디선가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낭하게
들리는 듯하였다.
서원을 둘러 보고 나서 철을 잊은 목련이 꽃망울을 틔우는 앞에서 단체 사진들을
찍었다.
그런 다음 그 곳을 나와서 간 곳은 도산 온천.
도산 온천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수질은 좋았다.
아가씨 회원하나가 등을 밀어 주는데 때가 많이 밀릴 것 같아서 사양했지만
한사코 등을 밀어 주겠다고해서 하는 수 없이 돌아 앉아 등을 내 맡겼다.
등을 밀리키면서 참으로 마음씨 고운 아가씨란 생각을 했다.
날이 저물기 전에 현동리에 사는 우리 인솔자의 후배가 된다는 집에 가야했으므로
서둘러서 그 곳을 떠났다. 길가엔 장사꾼들이 나와 앉아서 말린 밤이며 [뻔데기]를
팔고 있었다. 나는 반쯤 말린 밤을 샀다.
먹어보니까 [소들]소들한게 맛있었다.
한참을 달려서 현동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묵을 그 후배란 분의 집은 거기서도 한참을 더 간곳인 산 위에 있었는데
날이 저물어서 냇물을 징검다리로 건너는데 한참 더듬거렸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서둘러서 저녁을 지었는데 일행중의 한 사람이 녹두를
갈아 왔다. 내 참, 그렇게 다녔어도 녹두 갈아 갖고 다니는 사람 첨 봤다.
부침개는 내 몫이었다. 버너에 불을 당긴 후에 후라이팬을 가져다가 녹두 부침개를
부치는데 음력 초엿새 달이 떠 있었다.
주인댁에서 주신 무공해로 담근 김장 김치를 녹두전과 같이 먹으니 그 맛이 일미
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 본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방 두칸짜리 집으로 갔다.
거기서 아궁이에다가 장작불을 지펴 넣고 시레기가 널려 있는 부엌에 모여 앉아서
어렸을 적에 불렀던 동요란 동요는 다 불렀다.
어느새 주인 아저씨까지 합석을 해서 솔잎 주를 마셔 가면서 자정이 넘도록 놀았다.
잠을 자려고 방으로 들어 가니까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궁둥이를 댈 수가 없었다.
이불도 없이 침낭들을 덮고 자려고 했는데 침낭을 깔고 잘 수 밖에 없었다.
비좁은 방이었지만 서로 이리 저리 얽혀서 자니까 불편하긴했지만 너무 재밌었다.
한 밤중에 너무 더워서 밖으로 나오니 별들이 바로 머리 위로 쏟아 질 듯했다.
오랫만에 북두칠성도 보고 오리온 좌도 보고 카시오페아좌도 찾아 봤다.
계곡물 소리만 크게 들리는데 별똥별이 흘렀다.
산속에서의 밤이 깊어 갔다.
첫댓글 안나님~~~ 너무 재미 있었어요. 11명이 아니고요 들꽃 풍경의 여러 님들과 동행을 하셨네요. ㅎㅎㅎ
안나님께서 까만가방을 둘러메고.. 오잉 이게 뭔소리지 하고 찬찬히 읽어가니 세상에나 우리식구들 이름이 줄줄이 사탕입니다. ^^* 다음다음 기대기대.. 내이름도 나올까 나온다면 몇편에서 지금 두근두근 심장 박동소리 들리시나요?
ㅎㅎ 목 빼고 기다렸더니.........기다린 보람 있습니다.
신선은 원래 수염길게 늘어뜨린 늙은이(?)들이쟎아요..ㅎㅎㅎㅎㅎㅎ
안나님 재치 기가 막힙니다. 근데 [소래]옆으로 지나가셨을텐데 왜 소래가 빠졌나요?
근데요 어찌 우리 회원들의 닉을 그렇게 다 외셨어요? 불가사의네요..... 함께 한번 떠나야할것 같네요.
히히~ 동네 사람들! 바~~~~~위~~~~~솔~~~~~도 이따아~~~~~~
저녁 햇살을 안고 그림인 듯 떠있는 섬하나....와~~~ 이모님! 제 맘대로 지은 닉이면서도 얼마나 멋있는 이름이냐며 이렇게 으쓱~해 한답니다..
까망가방을 둘러멨다고 하셔서 을매나 놀랐는지 몰라요... ㅎㅎㅎ 안나님의 재치가 수준급이시네요...^^*
안나님 양평에 크게벌어져 닫히지않는 흰고래입 보이시나요? 너무 재밌구 재치가 놀라와 입이 안 닫히네요 책임지셔유 ㅎㅎㅎ 앞으로도 재밌는 글 마니 마~니 부탁드려요 감사 감사!!!! 안나님 넘넘 부러버요!!!
음....젊은 이놈도 [안나]오는 아이디어를 가지신 [안나]님의 기발한 발상에 경의를 표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