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사거리에선 매번, 거의,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멈춰 있을 동안 이 생각에 들렸고 저 생각에 들렸다
왼쪽으로 버드나무 하나 마음 없이 흐늘거린다
그 사이로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내려다보인다
다리 난간의 흐릿한 불빛들이 강물 위로 쏟아져
무수한 별들과 엉겨붙어 있었다 엉겨붙음을 보다가
걸어갈 수 있는 길로 급히 걸어가보기로 한다
채 다리 아래 별빛이 도달하기도 전에 출발이다
며칠 지나 다시 그 자리에 멈췄을 때 꼭 거기까지다
내가 갈 수 있는 곳 접근하려는 내 마음과
강력히 막으려는 신호등의 지시
가장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빛
도발과 금지도 포함되어 있건만 그 빛을
얼마나 좋아했던가 얼마나 손대고 싶어했던가
어느 나무에게는 다른 나무의 가지를 잘라 눈접을 붙여
하나로 엉겨붙게도 만든다 그들이 왜 그래야 되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빨간 불빛에 잡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알맞은 이 비유,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집에 들어서면 나무의 가지들이 하나로 엉겨붙어 있는,
내가 힘들게 접목한 수많은 현상들과 일일이 대구하고
흘깃거리며 소파에 앉는다 수십 가구점을 돌다 나의 눈에
엉겨붙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내 손에 엉겨붙은
리모컨을 누른다 다시 엉겨붙을 세상을 찾아 기웃거린다
이제 지친 몸을 누이면 온갖 것들이 잠들기 전까지
나와 엉겨붙으려 왔다가 가고 다시 왔다 돌아간다
그러다 깊은 어둠이 솜이불처럼 나를 덮어준다
몇 번이나 뒤척이는 나에게 걱정은 그만하라고
한번 더 달빛과 엉겨붙게 해준다 이제 무언가
못마땅함을 가진 나무에게 다른 나무의 가지를 붙여
조금 더 씩씩한 나무를 만들려는 이의 속내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문학동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