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연애와 결혼은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 위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파트너를
선택하고, 언제든 관계를 끝낼 자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인간은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상대에게 귀속되기를 갈망한다. 이는 곧 '자발적인
예속'이다.
연애는 자유의 일부를 기꺼이 반납하는 과정이다. 내 시간을 상대의 스케줄에 맞추고, 내 취향을
상대의 기호와 타협하며, 나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타인의 침범을 허용한다.
혼자일 때 누리던 무한한 선택권은 사라지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고립의 해소'라는 보상을 얻는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 마음"이라는 자유보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구속이 인간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결혼은 이 예속의 완성체이자 제도화된 틀이다. 결혼이라는 서약은 이제 '나'라는 개별적 단위를
'우리'라는 공동체에 편입시킨다.
법적, 경제적, 사회적 굴레가 씌워지는 이 상태는 분명 자유의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예속을 선택하는 이유는 자유가 주는 '피로감' 때문이다.
끝없는 탐색과 만남, 헤어짐의 반복이라는 '자유 연애 시장'에서 겪는 피로를 뒤로하고, 나를 온전히
수용해 줄 단 한 사람에게 정착하여 심리적 안정이라는 안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예속이 안식만을 주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예속의 온기가 구속의 답답함으로 변할 때,
인간의 양면성은 다시 고개를 든다.
나를 증명해주던 배우자의 기대가 나를 옥죄는 사슬로 느껴지고, 안온했던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탈출하고 싶은 감옥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결혼의 비극과 희극이 교차한다. 우리는 다시 자유를 꿈꾸며 홀로 서기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 자유를 얻었을 때 마주할 지독한 외로움을 알기에 다시금 예속의 끈을 고쳐 매곤 한다.
결국, 남녀 관계에서의 행복은 '완전한 자유'나 '일방적인 예속' 중 어느 하나에 있지 않다. 그것은
자유와 예속의 절묘한 균형에 달려 있다.
사랑은 우리를 고립에서 해방시켜 주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다시 숨 쉴 자유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예속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릴 것인가. 그것이 남녀가 관계를
통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다.
첫댓글 <오늘의 팝송>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 Dusty Springfield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는 영국 여가수 Dusty Springfield가 1966년 발표한 그녀의
대표곡이다.
이탈리아 곡 Io che non vivo (senza te)가 원곡이다. 사랑의 불안과 자유를 감성적으로 노래했다.
Dusty Springfield(1939~1999)는 런던 출신의 팝·소울 보컬리스트로, 블루아이드 소울의 대표주자다.
https://youtu.be/bRKMwMHZq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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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도 여자 필요합니다.
오늘 한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이다2님.
평안한 밤 되세요...
그러므로 인간은 평생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소속되면 벗어나고 싶어 하고 벗어나면 다시 소속 되려하는 이율배반적인 심리 탓에
맞습니다.인간은 낯선 것에는 본능적으로 저항하면서도,
익숙해지면 곧 지루함을 느끼는 모순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변화와 안정 사이를 오가며 균형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인간 삶의 본질적 리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운선님.
자유와 예속 사이에서 살아간다면 그보다 좋은 인생이 또 있을까요 ㅎㅎ공감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존이님.
평안한 밤 되세요...
요즘 황혼이혼
졸혼이 많이있는데 안타깝네요
서로 이해와 배려가 더 필요한 시기인데
안타깝습니다.
오래 살다보니 쌓인게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이정7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들어 별다른 속박이 없이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