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행복의 보금자리.
심리학자인 <소퍼> 박사는,
형무소에 있는 죄수와 수도원에 사는 수도사의 차이란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불평과 요구만을 말하고,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는 하루 종일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환경에 상관없이 감옥에 갇혀 사는 죄수 같이 살 수도있고,
자유인으로 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 여하에 따라, 가정도 감옥이 될 수가 있는가 하면
행복의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칼럼니스트가 현 세태를 꼬집으면서 말하기를,
결혼한 두쌍 가운데 한 쌍 꼴로 이혼하고,
다시 그 이혼한 두 쌍 가운데 한 쌍 꼴로 재혼하며,
다시 그 재혼한 두 쌍 가운데 한 쌍 꼴로 이혼하는 사회를
<이분해체사회>라 했습니다.
바로 미국 사회가 그 이분해체사회라는 것입니다.
한데 우리 한국이, 결혼한 세 쌍 가운데 한 쌍 꼴로 이혼하고
재혼하고 다시 이혼하는 삼분해체사회로 돌입했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우리나라 민요가 있습니다.
“신랑 신부열 살 줄은 뭣 모르고 살고 /
스무 살 줄은 서로 좋아서 살고 /
서른 살 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고 /
마흔 살 줄에는 서로 버리지 못해 살고 /
쉰 살 줄에는 서로 가엾어 살고 /
예순 살 줄에는 살아준 것이 고마워서 살고 /
일흔 살 줄에는등 긁어줄 사람 없어 산다”라는 노래입니다.
한 부부가 이혼법정에 섰습니다.
판사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쳐다보는 남편과 아내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판사가 물었습니다.
“서로 사랑하였기에 결혼한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남편이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내와 전 사소한 일로도 자주 티격태격 싸웁니다.
아내도 많이 참았다지만 저 역시 많이 참고 노력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가망이 없어요!”
아내의 의견도 역시 같았습니다.
결국 이혼성립을 허락한 판사가 돌아서는 부부에게 소리쳤다.
“정말 끝까지 참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법정을 나선 부부는 그 길로 각자가 갈 방향으로 헤어졌습니다.
얼마 뒤 남자가 결혼상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 상담소는 가장알맞은 배우자를 정확하게 소개해 주는 것으로
널리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성격을 비롯, 모든 환경을 설명해주고
원하는 배우자상을 꼼꼼하게 일러주었습니다.
상담소에서는3만 명이 넘는 여자 중에서
그가 원하는 여성상에 꼭 맞는 4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얼마 뒤 상담소에서 첫 번째 여인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사무실 문을 열었습니다.
상담소 직원의 얼굴과 한 여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문소리에 놀란 여인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하지 못했다.
그 여인은 바로 얼마 전 이혼한 아내였던 것입니다.
옮긴 글
|
첫댓글 맞아요. 자기가 자기 행복을 개척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단해도 하는 일이 즐거우면 행복하단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일이 너무 많으시죠.. 그런 가운데도 보람을 아니 행복을 느끼며 사신다니 부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