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 [심재휘]
경포보다 안목이 나는 좋았지
늦가을까지 걸어 안목에 마침내 안목에 가면
수전증을 오래 앓은 희망이
쏟을 듯 쏟아질 듯 자판기 커피를 빼어 들고
오래 묵은 파도 소리가 여전히 다정해서 좋았지
경포 횟집 거리를 지나
초당 순두부 집들을 지나 더 가물거리는 곳
해송 숲의 주인 없는 무덤을 지날 때처럼
늦어도 미안하지 않은 안목에서는
바다로 막 들어가는 강물이
지는 해를 돌아볼 줄 알아서 좋았지
숨겨둔 여인이 있을 것 같고
그조차 흉이 될 것 같지 않은 곳
마른바람 속에서 팔 벌리기를 하고
멀리 경포의 불빛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은
더이상 골똘히 궁근 그 안목은
이제 없는 거지
막횟집도 칼국숫집도 다 사라지고
커피 거리로 이름을 날리는 저기 저 안목은
-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문학동네, 2017
* 가끔 커피 찾아 삼만리를 행할 만큼 커피를 좋아하고
그래서 조금 유명세를 타는 곳은 직접 가본다만
강릉쪽 커피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커피맛으로 재미를 줄 수 없다면 내리는 이와 교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개 쓸데없는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내가 아직 커피맛에 대한 안목이 없어서일까.
작년에, 팔년 키운 커피나무에서 드디어 콩이 열렸을 때
아, 잘하면 콩을 볶아 커피를 내려마실 수 있겠다 싶었다.
올해 좀더 많은 콩이 열리길 바라면서
수확했던 콩은 다시 흙속에 묻어두었다.
커피나무 이세, 삼세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