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동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어언 45년 전. 이젠 19살 아이의 어미가 된 딸이 중학교를 들어가더니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동물과의 인연이란 이별할 수밖에 없는 그 끄트머리가 걱정되어 어떡하든 피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막무가내로 졸라대는 딸 아이에게 처절하게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전주 남문시장 근처 애견(?) 센터에서 치와아와 비슷하게 생긴 두살 먹었다는 분견(糞犬, 우리말로 똥개, 영어로 cur dog)을 식구로 영입하고 말았습니다.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안처럼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명문가 족보있는 강아지를 사지 않았던 것은, 잠시 데리고 지내다가 분명히 금방 싫증을 낼 것이니 비싼 돈을 들여 사면 어차피 처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내외의 그 예상은 딱 들어 맞았습니다. 딸은 3개월도 못되어 '단비'(이름은 근사하게 지었음)에게 싫증을 냈으니까요.
그런데 사건은 늘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글쎄, 우리 내외가 생각지도 않게 그 녀석, 단비에게 정이 들어 버린 것입니다. 세 식구가 사는 집에, 그나마 딸 아이는 부모와는 세대차를 느끼는 나이가 되어 주말이면 함께 놀러가는 것도 슬슬 거절하기 시작하고 식구들 사이에는 여느 가정처럼 대화가 고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위기의 시기에 단비 그 녀석이 식구들 사이에 대화의 매개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분견이라서 이런저런 사고(대소변 못 가리기, 중요한 물건 이빨로 절단내기 등등)와 분견임에도 불구하고 이쁜 짓(당시 살던 아파트 층이 6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가 1층에 들어서는 것까지 인기척으로 분별하고, 분견 주제에 품 안에 들어와서 애교 떨기 등등)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그 녀석이 있게 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 녀석과의 살어온 얘기를 이 자리에서 풀어 내자면 한국의 한많은 여인네들이 흔히 하는 말, "내 살아온 것을 다 폴어내면 장편 소설이 되고 남는다"는 말처럼 거의 대하소설에 해당될 것입니다. 그러하니 <동물원 가는 날 #1-1>을 시작하는 이 글에서는 맛배기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얘기들이 남아 있고, 단비 말고도 또 하나의 요물 고양이 '또치'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첫댓글
전주동물원 이야기를 올립니다.
사진은 부재를 증명하면서
그 부재를 소환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카메라에 담긴 동물원 식구들(또한 구경 오신 분들까지...)이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을 기원하면서
화석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기분으로
동물원 이야기를 올려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