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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돈의 자백으로 범죄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형식은 또 한 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고 믿음직스럽게 생각하던 산림계의 직원이고 혈육처럼 생각하던 영돈이 범인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범행동기를 듣고는 그런 영돈을 집으로 데리고 다니며 순영을 만나게 하고 영애가 삼촌처럼 따르게 만든 자기의 멍청이 같은 행동에 자신에 대한 분노와 함께 깊은 자괴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한심한 생각이 든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당하고 처자를 잃고 홀아비가 된 자기의 신세에
그러다 내가 저를 그렇게 정으로 믿음으로 대해 주었는데 제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내 처자를 죽여 내 신세를 이렇게 만들어 놓을 수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분노가 일며 영돈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경찰서로 달려가 영돈을 내놓으라고 내 처자를 죽인 놈이니 자기가 죽여 버리겠다고 소동을 피웠다.
경찰이 형식의 말을 들어 줄 리 있겠는가, 그러면 술을 먹고 잔뜩 취해서 경찰서를 찾아가 영돈을 내주지 않는 경찰도 같은 놈들이라며 행패를 부렸다.
처음 몇 번은 형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경찰들이 경찰서에서 그의 행패를 참아 주었지만, 횟수가 거듭되자 자꾸 그러면 업무방해죄로 잡아넣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자기가 원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게 되니 형식은 술을 먹고는 동네 사람들을 잡고 시비를 건다.
특히 어쩌다 영돈의 부모를 만나면 그 행패는 더 심해진다.
아버지 벌 되는 영돈의 아버지에게 못된 욕지거리를 하고 내 아내를 살려내라, 내 딸을 살려내라며 달려들어 멱살을 붙잡고 흔든다.
그래서 영돈의 부모는 형식이 무서워 피해 다닌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부하직원을 잘 못 거느려 처자를 잃은 바보라고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비웃는다고 시비를 건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가 그럴 리가 있냐고 변명도 소용이 없다.
이제 형식은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형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혼자 되신지, 오래된 아버지나 하나뿐인 동생이 술만 먹으면, 아무나 잡고 시비를 거는 형식을 보다 못해 정신을 차리라고 붙잡고 울며 야단을 친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형식은 마을이 싫어졌다.
사람들도, 산천도, 심지어는 부모 형제까지도 싫어졌다.
무작정 마을을 떠날 마음을 먹고 서울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남 터미널에서 내렸다.
갈 곳이 없다.
형식은 고향이 영월인데다 대학도 강릉에서 나왔기 때문에 서울에는 그 흔한 지인이나 당분간이라도 자기를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갑작스레 고향을 떠나와 지참금도 얼마 되지 않아 아껴야 한다는 생각에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이 있어도 어려운데 아는 사람이 전연 없는 서울에서 일자리가 쉬게 잡히는 것도 아니지만 순영의 사건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마음에 만사가 귀찮은 생각이 들어 일할 생각은 전연 없어 서울역 근처, 파고다 공원, 남산 등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며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무작정 시간을 때우는 그런 생활이었다.
그러나 무위도식하는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두어 달여가 지나며 가지고 있는 돈이 떨어졌다.
영월에 가면 또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올 수 있겠지만 영월만 떠오르면 순영의 생각, 영애 생각에 애가 끊어지는 것 같고 영돈이 생각나면 그놈으로 해서 내가 이런 꼴이 되었다는 생각에 피가 끓어 할 수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그놈을 요절내고 싶다는 욕망으로 몸이 떨려오고 사람을 볼 줄 몰라 그런 놈을 동생처럼 대해 주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바보라고 비웃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영월은 가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될 수 있으면 영월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영월에 있는 동생에게 편지하면 형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는 동생이 쓸 만큼의 돈을 보내 주겠지만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철없는 형, 생각 없는 형이라고 생각할 것 같고 더욱이 서울로 쫓아 올라와 집으로 가자고 조르면 성가실 것 같아 그럴 수도 없다.
돈이 떨어지니 자연히 숙식이 문제다.
그동안 서울 생활에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몇 군데 기웃거렸다.
그러나 면사무소 산림계에만 있던 터라 경력이 부족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이가 많아 취직이 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막노동판에 뛰어 들었다.
막노동도 늘 할 수만 있으면 좋았다.
막노동하는 시간에는 신체적인 피로로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아서, 하지만 막노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사장에는 철근 팀, 콘크리트 팀, 목공 팀으로 조를 짜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일을 맡아 가지고 들어가고 일상적인 막노동 자리도 아는 사람을 통해 미리 손을 써 놓은 사람들이 있어서 빈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손쉬운 방법은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나가는 것인데 인력시장도 연줄로 연결되어 우선 그 사람들이 일자리를 잡고 난 다음 빈자리가 생겨야 하고 그것도 지원자가 많아서 좀처럼 차례 오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면사무소에서 사무만 보아온 형식이 무슨 특별한 기술을 가져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힘을 써서 하는 노동을 하는 것이니 처음 보아도 막일해본 경험이 없어 보이는 형식의 모습에 인력시장에 사람들이 좀처럼 형식에게 일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다 일자리가 걸러 노동판에 나가도 40을 넘긴 나이에 젊어서는 집안일을 돕는다고 짬짬이 농사일을 하였으나 결혼 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농토도 면사무소에 다닌다는 구실로 다른 사람에게 소작을 주어 10년 넘게 농사일도 안 하다가 사십 대 넘긴 지금 하는 삽질이나 등짐 질 같은 노동을 힘들어하는 형식을 보고는
“전연 노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하며
다음부터는 일을 주려고 하지 않고 또 노동이 서툰 형식과 같이 일하려는 사람도 없어 몇 번 노동판에 나가고 나서 그 일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자연 여인숙 생활도 어렵게 되고 거리로 내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흔히 말하는 노숙자가 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런 거지 같은 모골로 고향으로 내려가면 참으로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고향으로 내려가기가 싫었다.
노숙자건 거지건 사람이 사는 사회는 계급이 있다.
특히 힘의 논리가 판치는 곳에는 더욱 심하다.
그래서 노숙자도 노숙을 자기가 마음대로 골라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숙이 가능한 기차역이나 전철역 등에 노숙하기 좋은 곳은 이미 다른 노숙자들이 다 차지하고 형식처럼 신참들에게는 바람 맞이나 면할 수 있는 곳을 얻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서울역에서 노숙하기에 그래도 괜찮은 곳을 차지하고 누었다가 그곳을 이미 차지하고 사용하고 있던 노숙자가 욕지거리를 하며 비키라는 하는 것에 밸이 꼴려 대항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 쫓겨났다.
일 대 일이라면 그렇게 심하게 맞지는 않았겠지만, 그곳을 먼저 차지한 노숙자들이 결속하여 떼로 덤벼들어 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맞으며 노숙자에 세계로 들어섰지만 신참인 형식은 외톨이가 될 수뿐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에서 따돌림을 받았다.
같이 어려운 형편인 서로 도와주어야 할 처지이지만 노숙자들도 끼리끼리이다.
형식이 노숙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라서인지 노숙자들이 자기들 영역에 한 사람이라도 노숙자가 늘면 자기들의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때문인지 모른다.
돈이 떨어지고 배가 고프니 자연 점심때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급식소를 찾게 됐다.
전에는 면사무소 일로 바쁘기도 했지만 T.V에 별로 관심이 없어 안 보던 T.V를 서울에 와서 하는 일이 없어 무료함을 달래려고 여인숙에 설치된 T.V을 볼 때 방영한 노숙자에 대한 특별기획에서 급식소에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보고 그 모습이 처량하다고 생각했는데 자기가 그 행렬에 끼게 된 것이다.
줄을 서서 주는 급식을 받아 먹는 간단해 보이는 이 일,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부터 급식을 받으러 다니던 사람들이 패를 져 와서 처음 보는 형식이 앞에서 새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는 그들에게 왜 새치기를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다.
그들은 막무가내고 수로서 대항을 해왔다.
그러다 어느 날 좀 늦게 간 형식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 새치기하는 사람들로 형식이 앞에서 배식이 끊기었다.
화가 난 형식이 급식소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왜 못 본체하고 그냥 두느냐고 항의를 했다.
그러나 급식소 사람들은 웃으며 형식의 항의를 못 들은 체하며 일만 한다.
그 태도에 화가 난 형식이 ‘남이 말을 해도 못 들은체 하니 무슨 이런 사람들이 있냐? 없는 사람들에게 급식 좀 한다고, 급식을 받아먹는 노숙자라고 고 깔보느냐?’ 고 투덜거리자 그중 한 사람이 자기들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수시로 일어나므로 일일이 대구 하기도 힘들고 좀 심하게 하면 당신처럼 급식 좀 주며 생색낸다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어 모른 체할 수뿐이 없다고 귀띔을 한다.
나중에 와서 자기 앞에 새치기하는 사람들로 자기 앞에서 배식이 끊기는 그런 일이 몇 번 일어나자 형식은 급식소 자체의 힘으로 질서를 못 잡는다면 경찰의 힘이라도 빌려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책임자를 만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급식소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책임자를 찾았다.
오늘은 책임자가 바빠서 안 나왔으니 책임자를 만나려면 내일 다시 오란다.
다음 날 급식이 끝나고 그만둘까 하고 망설이던 형식은 자기가 손해를 보는 것은 그렇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책임자를 찾았다.
오늘 배식하는 사람은 어제 배식한 사람들이 아니다.
급식소에서는 많은 사람에게 배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 조를 짜서 일을 담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떤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묻기에 형식은 그가 책임자인 줄 알고 급식소에서 노숙자를 위해서 무료 급식을 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급식 때 새치기 못하게 하는 등의 질서를 잡아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그것을 우리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어제와 같은 그 사람의 대답을 듣고 형식은 이런 곳일수록 질서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급식소 자체의 힘으로 안 되면 경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저쪽에서 설거지하고 있던 사람들 중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형식의 항의를 듣고는 형식을 불러서 자기가 책임자이니 자기가 하는 일이 끝나면 보자며 일이 한 시간 후면 끝나니 그때까지 기다리든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갔다 시간 맞추어 오든지 하라고 한다.
형식은 한 시간 후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한 시간 후 형식은 점심밥 한 그릇에 목을 매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또 계면쩍은 생각이 들어 만나러 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다음 날 점심때 급식소에 점심을 먹으러 간 형식을 그 사람이 알아보았다.
국을 푸고 있던 그 사람이 형식을 보더니
“어제는 많이 기다렸습니다.” 한다.
당황한 형식이
“미안합니다. 갑자기 다른 볼일이 생겨서요.”
했지만 돈이 없어 급식소에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노숙자가 무슨 다른 볼일 그것도 급하게 볼일이 있겠는가.
그런 거짓말을 하는 형식은 그 사람도 형식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생각에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그 사람이 “오늘은 꼭 좀 만나 주세요. 선생께 폐를 끼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한다
자기 보고 선생이라니 이게 얼마 만에 들어보는 경어인가 이즈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놈”자가 안 들어가면 말을 못 하는 사람들뿐인데 그리고 책임자를 찾은 것은 형식인데 상대방이 오히려 자기를 만나기 원하다니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대가 이런 식으로 말하니 피하기도 무엇하다.
그래서 배식이 끝나고 한 시간쯤 후에 형식이 찾아갔을 때 그 사람은 그때까지도 급식 후 설거지와 자재를 정리하느라 바쁘게 일하다 형식을 보곤 다른 동료들에게 손님이 있어 먼저 가니 뒷일을 부탁하다고 하고는 형식을 데리고 근처에 가까운 다방으로 들어간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읽고 갑니다~
구리천리향님!
초록켄디님!
감사합니다. 이해도 며칠 남지 않았군요
올해 잘 마무리하시고 형통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