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9:8-15 에스라의 회개기도
8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9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10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이 금지한 통혼의 죄를 범한 것을 알고서 하나님 앞에 자기 백성들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8-10) 에스라는 방백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들과 통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에스라를 더욱더 부끄럽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하여 모두 멸망당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얼마쯤 남겨 두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땅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아 고국으로 돌아와서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처럼 정착하게 해 주심도 은혜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눈을 밝혀 주셔서 포로였던 중에도 페르시아 왕에게 은총을 입어 잠시나마 소생하게 하신 것도 은혜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고국에 돌아와 성전을 세우고, 무너졌던 성벽을 쌓아 올려 울타리를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하였습니다.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11-15) 에스라는 여러 선지자를 통하여 가증한 일을 행하는 가나안 땅은 더러운 땅이므로 그곳에 사는 자들과 혼인하지 말고, 그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구하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왕성하고, 아름다운 것을 먹고 영원히 그곳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은혜를 저버리고 그들과 통혼하였으니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고 주께 반문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지금까지 남은 자들이 받은 큰 은혜를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습니다. 에스라는 자기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한 사실이 결코 변명할 수 없는 중대한 죄악이라고 자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방인과의 통혼이 가져올 영적인 폐해를 구체적으로 이미 말씀해 주셨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습니다(신 7:3-4).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변명하지 않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인정하며 실토하였습니다. 이러한 자세는 죄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입니다.
적용: 당신은 에스라처럼 죄에 대한 부끄러움과 애통의 마음이 있습니까? 또한 죄를 범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한 적이 있거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사람이 말하는 것은 2∼3년이면 배우지만 듣는 것을 배우기까지는 8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청은 평생의 학습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듣는 방식에는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판단하며 듣는 것, 질문하며 듣는 것, 조언하며 듣는 것, 감정 이입하며 듣는 것입니다. 한자 '들을 청(聽)'은 여러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풀이해 보면 '듣는 것이 왕처럼 중요하고 열 개의 눈으로 보듯 상대방에게 집중해 상대와 마음이 하나 되는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들어 달라고 떼쓰는 삶'보다 '들어주기를 힘쓰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