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나들이 길
수요 차량 운행 마치고 오는 길에 카톡을 열었다.
‘목사님, 잘 계시지요.
선물 사야겠다는 맘만 먹고 어찌하다 준비 못 했네요.
추석 연휴 때 사모님과 맛난 차라도 한잔하셔요.
보내 주신 사과 너무 잘 먹었네요.
감사드려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윗날만 같아라.
속담처럼 가족과 함께 뜻깊은 명절 보내세요.’
예측 못한 카카오 페이에 그 고마움이 밤새 자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답을 썼다.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침묵으로 깊어진 바다,
비움으로 그윽한 산야..
추억의 열차에 몸을 싣고 아무 데라도 떠나고픈 날,
하루 지나면 추석, 추억과 그리움 많은 자,
분명 따뜻한 사람인 권사님!
너무 과한 용돈을 받아 부담이 크네요.
형편 다 어려운 시절 뇌물에 가까운 밥값 어찌할 바 모르겠네요.
권사님, 섬기는 마음 새기고 값지게 사용할게요.
추석 명절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익어 가는 가을을 창가로 나른 시간에 어머니를 모셨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고향 가는 기회로 삼았다.
3주 후 페트 시티 촬영하면 어떤 결과와 치료가 진행될지 모른다.
쉽지 않은 일이라 요새 전화만 안 받아도 심쿵 할 정도다.
처남 댁이 햇살 담아 보낸 광양 알밤을 간식으로 삶아 챙겼다.
마음도 따뜻하게 데웠다.
아내와 막내가 따라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차가 막혔다.
‘백억 모싯잎 송편’ 가게 앞에 줄 선 운전자들 때문이었다.
교통경찰의 움직임에도 힘겨운 나들이였다.
어머니가 뒷좌석에서 밤 껍질을 벗겨 넘겼다.
밤 맛 사랑이었다.
막내가 번영 신학,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공의.. 물었다.
적절한 예를 들어 답하고 개혁주의 신학 사상을 인지 시켰다.
보성 녹차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여유를 부렸다.
고향 산천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할 이야기가 많았다.
‘내가 송산 학교 4회 졸업 탔어.
큰 외삼촌 때는 저 학교가 없어 산을 넘어 별량으로 다녔지.
송기 형수는 비까리 논을 묵혔데,
힘에 부치고 동네에서 지을 사람이 없데..’
구룡, 용두, 덕산, 칠동 마을 지날 때 추억을 꺼내셨다.
결국 척동에서 옛날 살던 이웃집 대문을 열었다.
인선이 할머니가 몰라봤다.
약간의 치매로 55년 전 삶을 잊었다.
마음 착한 대동 떡도 떠났다.
큰 누님에게 에이, 비, 시디 가르쳐 준 택문이 형도 죽었다.
유복자로 낳은 그 집 아들이라 세월 지난 휑한 자리였다.
한식이 형을 양자 삼은 집,
후처인 생선 장수 아줌마가 사나운 자식 낳고 산 골목도 봤다.
주막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저 미나리 잘 된 것 좀 봐’
겨울에 얼면 스케이트 타던 미나리 깡이었다.
한 겨울에 빨래하던 냇물은 잡풀이 무성했다.
어린 시절 염소가 받을까?
무서워 맘대로 다니지 못한 둑길을 탔다.
서당골! 하늘 아래 첫 동네,
언제 봐도 정겨운 고향이요 기다려 준 품이었다.
휠체어로 어머니를 사촌 형님 집 마당으로 모셨다.
가을처럼 곱게 다가섰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반겼다.
그리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형님 곁에 머물렀다.
궁금함을 풀게 하고 우리는 아버지 산소로 갔다.
감나무 밭을 지났더니 실개천 소리가 맑게 들렸다.
가재를 잡아 고무신에 담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왕거미가 친 거미줄을 막대기로 저었다.
말벌이 보여 몸을 웅크리는데 나비가 날갯짓으로 앞섰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옛길이 정겨웠다.
길섶의 산딸기 넝쿨을 헤치며 묘소 앞에 섰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찬송하고 자녀 손들.. 서당골 복음화 위해 기도드렸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가장 먼저 예수 믿었던 고모 이야기를 막내에게 심었다.
열 살 때 교회 가까운 마을로 이사 간 일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렸다.
예수 믿고 사모님 소개로 아내를 만났다.
‘오빠 전도사님 둘째 딸 출산할 때 산후조리 하러 갔어요.
미역만 있지, 아무것도 없어 황당했네요.’
당시 시골 교회 형편이 그만큼 어려웠다.
힘겹게 성장한 세 딸이 그 부모 섬긴 것 보면 하나님의 은혜였다.
아내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경험담을 게워냈다.
아침마다 떨어진 떫은 감을 항아리 물에 담가 두고 먹은 일 말이다.
배고프면 도랑에 떨어진 감도 건져 먹었다.
실지렁이가 우글거려도 위생은 둘째 문제였다.
어머니 얼굴이 천사 같았다.
꼬맹이들 수대로 용돈을 주셨다.
계민 형이 산에서 주운 밤 한 봉지를 내밀었다.
‘작은 어머니! 올해 연세 몇이요?’
‘많이 묵어 제’ ‘아흔한 살 이구만’
‘자네가 나이를 다 아네..’ 두고두고 그 말을 되새겼다.
두루 다니며 인사치레하고 내려왔다.
면 소재지 논에 허수아비 축제가 열렸다.
한복 차림의 허수아비가 손에 손을 잡고 벼 이삭을 지켰다.
형형색색의 다양한 얼굴로 고향 찾는 객지 손님을 웃게 만들었다.
동생이 추천한 식당을 찾았다.
불이 꺼져 ‘하늘 천 숯불갈비’로 갔다.
늦은 점심이 별미였다.
진짜 갈비탕 맛에 어머니가 놀랐다.
밥값도 쌌다.
식후에 구례 국도로 들어섰다.
가을꽃이 수놓기 바빴다.
산맥이 힘줄을 세웠다.
섬진강에 잠긴 파란 하늘이 새털구름과 같이 흘렀다.
황홀한 풍광을 펼쳐 놓은 산수와 벗하기 좋았다.
수변 길 공가가 맑았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남원을 거쳐 담양으로 돌았다.
도중에 순천 이모 전화 목소리를 들었다.
‘언니는 자식 잘 두어 호강 받고 다니네!’
어느덧 하루해가 찼다.
둥근 보름달이 어둠을 밀어내고 밝게 비출 추석 명절,
가족과 한시름 놓고 옹기종기 모여
믿음의 삶 나누며 담쟁이넝쿨처럼 함께 오르고 싶었다.
2023. 9. 30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