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상회 김씨
노승은
햇빛을 피해 쪽파를 까고 있는
대명상회 김씨는 까막눈이다
열두 번 째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또 떨어진 그는
지금 한두 알의 진통제로는 성이 차지 않는
치통을 앓고 있다
부은 어금니를 지그시 문 채
쪽파의 단을 묶고 있는 김씨,
슬리퍼 밖으로 염치없이 삐져나온 발뒤꿈치에는
오월 가뭄에 속 터지는 논바닥처럼
깊고 마른 고랑이 자리 잡혀 있다
― 미련한 양반,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처녀적 사진은 이뻤다는 김씨의 아내,
입을 한 자나 내밀고 투덜거리지만
까막눈 김씨는
흰 버짐이 파꽃처럼 피어있는
입을 열고 목젖이 울리도록 소리친다
― 이번에 꼭 붙어서 당신 운전 안 시킬게
햇빛을 피해 쪽파를 까고 있는
대명상회 김씨는
안경을 쓰고도 새까만 개미처럼
살아 움직이는 글자를 잡느라
치통이 더 심해지고
진통제를 건네는 그의 아내는
쑥부쟁이처럼 입을 가린 채 눈을 흘긴다
첫댓글 잘 읽었심니데이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시 읽어주어서 고마워욧!
대명상회 김씨는 안경을 쓰고도 새까만 개미처럼 살아 움직이는 글자를 잡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