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활자 중독자였다. 나는 활자(活字)라는 단어를 참 좋아하지만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이 活이라는 글자에 더 끌림이 간다.
지금도 활자를 통해 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일자무식인 엄니는 새끼들 먹여 살리느라 새벽부터 밤중까지 논으로 밭으로 남의집 품을 팔러 다녔다.
그런 일이 없을 때는 물때에 맞춰 바닷가에 나가 조개나 파래 같은 해산물을 수확해서 푼돈을 마련했다.
당연히 나는 어머니한테 공부해라 책 읽어라 이런 말을 들어보지를 못했다.
엄니는 자식 공부에 앞서 우선 굶지 않게 하려는 것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런 중에 어떻게 나는 활자 중독자가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어릴 때 우리집 벽지는 신문이었다. 가난해서 꽃무늬 벽지든 사방연속무늬 벽지든 그런 벽지로 도배할 형편이 안 되었을 것이다.
신문으로 사방 벽을 도배하고 서까래가 보이는 천장까지 도배를 했다. 엄니는 한참 나중인 이듬해엔가 꽃무늬 벽지를 사서 그 위에 도배를 하긴 했다.
여름 한철만 지나면 천장 벽지는 까만 파리똥이 잔뜩 끼어 글자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소 억지소리 같지만 신문 벽지가 유일하게 좋은 점은 독서 함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횃대가 걸려 있는 아랫목 벽 일부만 두꺼운 기름종이였고 3면의 벽은 신문지였다. 신문지 글씨는 크기가 작고 한문이 절반이라 제대로 읽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더듬더듬 아는 글자만 찾아 읽는 것이 내 최초의 독서였을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영희야 철수야 바둑아 놀자 등을 배우면서 글자를 깨우쳤기에 가능했다.
받아쓰기도 곧잘 해서 선생님이 색연필로 그려주는 참 잘했어요 동그라미를 자주 받는 아이였다. 어쩌면 집안 신문지 벽지에서 읽은 독서의 힘이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활자라면 무조건 읽고 보는 탓에 신문 벽지에 기사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자가 절반 이상인 신문기사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니고 그냥 뜻도 모르고 읽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네 컷짜리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이 기억에 남는다.
고바우 영감이 나오는 4컷 만화를 찾아 열심히 읽었다. 3면 벽에 있는 고바우 만화를 다 읽자 천장에 있는 만화를 보고 싶었다.
문제는 집에 의자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플라스틱 의자도 흔하지만 당시 우리집에는 나무 의자마저 없었다.
의자라곤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앉는 동그란 짚방석이 유일했다.
오두막집 천장에 있는 고마우 만화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꾀를 냈다.
장독대에 엎어져 있는 항아리를 딛고 올라가는 것이다. 작은 항아리는 높이가 낮아 큰 것을 골랐다.
무거운 장독을 방에 들여와 그 위에 도마를 얹고 올라가서 기어이 고바우 만화를 읽을 수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엄니가 이것을 보고는 장독 깨지면 어쩔 뻔했느냐며 지청구를 했다. 나의 독서 이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밤이면 호롱불을 켰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쯤엔가 전기가 들어왔는데 그전까지는 호롱불이었다.
잘 사는 집에서는 호롱불보다 훨씬 밝은 남포등을 켰지만 우리집은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책을 읽느라고 호롱불을 늦게까지 켜고 있으면 엄니는 지름(석유) 닳아진다면서 얼른 자라고 했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학교가 없어서 건너 마을로 학교를 다녔다.
동네 모퉁이 산길을 돌아 저수지 부근을 지나고 한참을 더 가야만 학교가 있었는데 그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
학교가 있는 마을은 우리 동네보다 컸고 버스도 들어왔다. 5학년 때쯤인가. 그 마을에 사는 친구네 집은 책이 많았다.
세계문학전집, 위인전 등이 꽂혀있는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 로빈슨 크루소, 걸리버 여행기, 프란다스의 개 등을 빌려 읽었다.
다행히 친구는 내가 빌려달라고 하면 곧잘 빌려주었고 나는 책을 읽고 돌려주면서 다른 책을 빌려왔다.
친구 어머니가 책 빌려가는 내가 기특하게 보였는지 칭찬을 해줬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친구와 함께 공부하며 더 놀다가라고 간식을 주기도 했다. 이렇듯 나의 국민학교 독서는 빌린 책이었다.
중학교 1학년을 끝으로 밥벌이에 나섰다.
당시 나의 취업 제1의 조건은 숙식이 제공되는 거였다. 공장 기숙사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으나 내겐 잠을 잘 곳이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기숙사에서도 활자 중독을 벗어나지 못했다.
선배들은 일이 끝나면 당구장이다 술집이다 외출해서 놀기 바빴지만 나는 어리다고 끼워주지를 않아 혼자 기숙사에서 책을 읽었다.
마음만 먹으면 읽을 책은 많았다. 기숙사 구석에 돌아다니는 선데이서울부터 각종 무협지, 명랑만화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교양서라 할 만한 것은 없었는데 어느 날 겉장 떨어진 잡지 샘터를 만났다. 아마도 선배 중 한 사람이 사서 읽었을 것이다.
작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글들이 많았다. 활자의 매력을 알게 하는 신세계였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글과 법정 스님 글도 거기서 많이 읽었다. 아마도 박완서 선생의 글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근본 없이 막 자랐지만 훗날 박완서 선생의 문장을 좋아했다. 며칠 전 헌책방에 들렀다가 <모래알 만한 진실이라도>란 책을 만났다.
읽고 싶은 책이었는데 시기를 놓쳐 여태 못 읽은 책이라 바로 구입을 했다.
박완서 작가의 산문 중에서 엄선된 것만을 골라 실은 책이다. 어린이날인 오늘 이 책을 완독했다. 이제서야 박완서 선생을 온전히 만난 느낌이다.
열여섯 살쯤에 선생의 글을 처음 읽은 지 거의 50년 만에야 그를 온전히 가슴에 담은 셈이다. 인상에 남는 구절이 있어 발췌해서 옮긴다.
<작가의 눈엔 완전한 악인도 완전한 성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한테 미움받은 악인한테서도 연민할 만한 인간성을 발굴해낼 수 있고, 만인이 추앙하여 마지않는 성인한테서도 인간적인 약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게 작가의 눈이다.
그리하여 악인과 성인, 빈자와 부자를 층하하지 않고 동시에 얼싸안을 수 있는 게 문학의 특권이자 자부심이다>.
스마트폰과 AI 시대임에도 내겐 활자처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오늘 활자의 의미를 깨우쳐준 박완서 선생이 고맙다.
네 컷 만화로 코흘리개 소년에게 꿈을 품게 한 고바우 영감이 또한 그립다.
첫댓글 문학의 특권과 자부심은 우리네 인생이 녹아 있고
박와서작가는 서울말씨인지 나름 호감이 갔었고
최인호 소설도 유행이였던 시절이 있었지요
우왓~ 인애님께서 박완서 선생 문장을 좋아하시는군요.
말씀대로 표준어를 구사하는 문장에다 자신의 삶이 녹아난 글들이라 누구나 공감하는 모양입니다.
당시 읽은 샘터 잡지가 제겐 세상의 눈을 뜨게 한 샘물이기도 했네요. 편안한 저녁 되세요.
빈자와 부자뿐 아니라
학력의 높낮이 없이 얼싸안는 작가님이네요
제법 긴 자유가 주어져
여수를 헤집듯 다니면서
하멜 기념관이 있어 관람했습니다
기억은 가물하지만
글 썼던적 있었죠?
찾으니 없네요ㅠ
정아님 잘 지내시지요?
여수를 가셨다니 저도 갑자기 여수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조만간 여수에 관한 글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멜에 대한 글은 홍어장수 문순득과 함께 표류에 관해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돌발상황이 생겨 리셋을 하는 바람에 읽을 수가 없을 겁니다.ㅠㅠ
암튼 정아님의 기억력은 대단합니다.ㅎ
현덕님의 독서 입문 저와 닮은 점이 조금 있습니다 책 빌리러 십리 길을 오간적도 있었지요 어릴 때 꿈이 어른 되어 돈 벌면 책 실컷 읽을 것이며 책 읽으면서 맛있는 군것질 먹는 거였지요 꼭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지요 ㅎㅎ 이제 다 이뤘는데 웬지 만족감은 없습니다 결핍감은 여전히 남아 있고 제대로 못 살은 것만 같습니다 현덕님
활자 사랑의 길 잘읽었습니다.
운선님의 그 활자 순례기를 알 만합니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끌림이었을 겁니다.
저는 십리 길 운선님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네요. 학교 길 오며 가며 친구집에 들렀던 것이라 저의 책 빌리기는 순탄한 편이었답니다.
결핍이 뭔가를 추구하거나 방향 설정하는데 필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2백 살까지 살 생각입니다.ㅎ
잘 살아오신 문학소녀 운선님을 응원합니다.
나도 학창 시절부터 글 읽기를 좋아햇습니다
어릴때 만화 보기 동화 보기 어린이 신문 보기 학원 잡지 보기 위인전 보기
등을 했지요
그러다가 소설 보기 수필 보기 로 발전을 했구요
게다가 그게 영화 보기로 까지 발전을 합디다
그런데? 취미도 변하나 봅니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영화 보기는 내나이 40 살쯤 되어서 흥미가 줄어들고
책 보기도 내나이 50 살쯤 되어서 눈이 나빠지니까 흥미가 줄어듭디다
지금은 인터넷 보기 유튜브 보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좌우간 독서는 아주 좋은 취미입니당
마음의 양식을 살찌우게 됩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ㅎ 태평성대님의 유쾌한 댓글을 읽으면서 공감과 함께 저절로 미소를 짓게 합니다. 활자 입문이 저와 비슷해서 동질감도 생기네요.
독서도 취미도 하다보면 연관 분야가 꼬리를 물면서 확장이 되는데 태평성대님도 그랬나 봅니다.
저도 나이 들면서 취미가 변하더군요. 심지어 입맛도 변해서 옛날엔 거의 안먹던 음식을 지금은 자주 먹게 되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책 읽기가 가능한 것이 시력이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영국 사는 딸아이가 보내준 안경 덕에 눈의 피로도가 덜하니 오래 읽기도 가능하네요.
요즘은 유튜브가 대세이니 그곳에서 세상 돌아감을 챙기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인생네컷의원조 시사네컷의 대명사 고바우영감
어릴적부터 지적 호기심이 대단하셨군요
그러고 보니 다독이 아닌 소독(少读)하는
저같은 경우 여인의 영향을 받는군요.
어릴땐 샘터 등을 구독하던 누나덕에
최인호 한수산 선생님을 만났고
지금은 매일미사책을 구독하는 아내덕에
노아 모세 요셉 선생님을 만나고 있습니다ㅎㅎ
뱃등님도 고바우 영감을 기억하시는군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올 때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안다는 각인처럼 저는 고바우영감을 만화의 원조라고 여긴답니다.
여인의 영향을 받는 것과 샘터 독자셨다니 동지처럼 여겨지기도 하구요. 지금은 샘터가 판형도 바뀌었던데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풍토를 따라가나 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잡지가 생존하기도 쉽지 않은데 샘터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네요.
뱃등님, 공감주셔서 감사합니다.ㅎ
활자 중독증, 어쩌면 제 어릴 적과 이리 닮으셨는지.. ㅎㅎ
저는 무남독녀라서 외로웠기에, 그리고 유달리 무딘 운동 신경으로 인해 바깥놀이에 흥미가 적었기에,
집에 틀어박혀 책이든 신문이든 닥치는대로 읽어대며 자랐습니다.
당시 한자 투성이였던 신문은 아버지께 읽어달라 졸랐기에,
어서 스스로 읽게 하시려고 일곱 살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제게 한자를 가르치셨어요.
그렇게 일찍 배운 한자로 인해 제 어휘력이 풍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고바우영감은 집에서 받는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기에 늘 봤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없네요.
저희 집은 가난했지만 제게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으셨던 부모님께서 소년중앙 새소년을 비롯한 각종 책을 많이 사주셨으나,
당시 빨간 표지가 예쁘고 값이 많이 비싸던 계몽사판 소년 소녀 세계문학전집은 못 사주셔서 늘 그 전집에 목이 말랐었지요.
오늘도 현덕님 좋은 글에 공감 백배입니다. ^^
와우~ 달항아리님의 공감 가는 댓글 읽으면서 저도 지남철처럼 저절로 끌림이 생깁니다.
한자를 일찍 가르치셨다는 아버님의 혜안도 높이 사고 싶네요. 한문은 들여다볼수록 참으로 오묘한 문자거든요.
어쩌면 달님이 교육자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아버님의 이런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소년중앙이나 새소년을 친구집에서 읽은 적이 있긴 하네요. 그 친구네가 소년동아일보도 구독을 해서 빌려 읽는 호강을 누리기도 했답니다.
달님이 일찍부터 책읽기를 좋아하셨으니 이리 정서가 풍부하고 모진 병고도 긍정적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네요.
진정성 가득한 댓글 고맙습니다.ㅎ
지난날을 생각하니
어린 날
무의식의 행동들이
평생에 많은 습관을
만들어주었던것 같네요..
아버지를 따라 읽던
신문지 속에서 배운
한자들을 지금껏
써먹는 나도 그렇고..ㅎ
현덕아우의 유년시절 활자에 대한 애정이
지금도 읽고 쓰는 것이 업처럼 이어오는 것도 그러한 듯 하고..
오늘 아침 만난 글들은
어린시절 청계천
헌 책방을 들락이던
기억을 마구마구
깨워 줍니다..ㅎㅎ
앗! 반가운 요석 누이,,^^
잘 지내시지요? 요석님 댓글 읽으면서 동질감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 습득한 지식은 평생 무의식의 습관처럼 남는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어릴 적 요석님이 아버님한테 배운 한자들이 마치 세포처럼 아직도 마음에 박혀있는 것처럼요.
당시 청계천 헌책방을 드나들며 가슴에 담았던 문자향이 지금의 반듯한 요석님의 정서를 가꾸게 했을 겁니다.
항상 건강한 날들이기를 빕니다.
현덕씨 어릴적 하고 너무 비슷한환경에서 살아온 구때가 떠오르네요
온통 신문지 도배
천정도 신문지
그리고 석유호롱
지존이 선배님도 그러셨구나.
석유 호롱불이야 전기 들어오기 전까지는 집집마다 그랬을 테지만 신문지 벽지는 우리집만 그런 줄 알았답니다.
결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추억이란 이리도 질긴 것이라서,,ㅎ
종이가 귀해서 구하지 못하면 땅과 나뭇잎에
써가며 위대한 서예가가 되었고, 가난한 소년은
헌책방 뒤지며 빗물에 젖어 버리는 책들을
아궁이 잔불에 말려가며 읽고서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으리라...
소년들이여 꿈을 가지고
어른들이여 겸허할지어다.
화이팅 ~!!
적토마 선배님 잘 지내지요?
요즘이야 물자가 풍부하니 땅바닥에다 글씨 쓰면서 활자 익히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서도 그런 옛 정신은 배워야 할 점입니다.
빗물에 젖은 책을 아궁이 잔불에 말린다는 대목에서 그 어떤 비유보다 가슴이 뭉클하네요.
적토마 형이야 매사에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반듯한 사람이니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에 당당해도 될 테구요.
비록 소박한 꿈일망정 잘 가꾸면서 언제나 화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유현덕
오케이~
배움도 적금도 막걸리도 모두 아프면
개털이 되니 늘 건강하자고라...앗싸~!!
어릴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언니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해주셨어요
여원.샘터 등등. 그걸 닳도록 읽고 또 읽고 아버지 책상위에 많은 신문이 배달되었기에 네컷의 만화도 즐겨 읽으면서 나도 나중에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했는데
지금은 나도.바로 밑에 동생도 글쓰는 사람이 되어 함께 이름이 오르기도하지만 아버지처럼 책상 위에 신문도 쌓이는걸 보며 아버님께 참 감사를 느낀답니다.
우정이님 반갑습니다.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겠지만 독서의 영향 만큼이나 큰 것이 있을까요.
아버님이 언니한테 책 선물을 하셨다니 일찍부터 활자와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다 그럴 것 같지만 자식 책 사줄 돈으로 당신 술 사먹을 생각부터 하는 아버지도 있으니까요.
신문만큼 활자와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매체도 드물 겁니다. 우정이님 아버님이 구독하셨던 신문 또한 자식들한테 영향을 미쳤을 테구요.
나중에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이 대목에서 잠시 제 눈길이 멈췄습니다. 우정이님의 아버지 사랑에 박수를 보냅니다.
현덕님의 꿈인 200살까지
건강하게 삶을 영위하시길 응원합니다
현덕님의 글을 어디서나 즐길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저도 지금 읽어야 할 책들 메모지에 적어 놓고,,,
가끔은 서점에 들러 한 두권 사오기도 하는데 못 읽고 있어요
죽고 싶어도 읽어야 할 책이 많아 하늘이 날 데리러 와도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아직은 못 간다고 전해라!,,, 입니다.
ㅎ 반가운 김지원님시네요.
어쩌면 책 읽는 꿈이 저와 꼭 같은지 놀랍습니다. 저도 지원님처럼 책방에 들르면 일단 몇 권 구입하고 본답니다.
마음은 곧 읽어야지인데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쌓여 있는 책이 아직도 많네요.
김지원님은 읽어야 할 도서목록이 조금씩 줄어들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하늘이 데리러와도 못 간다고 전하라는 말씀에 공감하면서 응원 보냅니다.
책도 건강해야 읽을 수 있는 것이니 우리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건강하자구요.
유현덕님과 비슷하게 저도 어려서부터 활자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
제 글 찐팬이신 수피님 오셨군요.
저의 부족한 글에 늘 관심주시는 수피님이 어릴 때부터 활자와 친숙했다니 더 반갑습니다.
답글 달고 저는 이제 점심 먹으러 갑니다.
절반 남은 하루도 좋은 시간 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