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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예썰의 전당> [3회] 예술을 품은 도시, 피렌체(Florence)
‘예썰의 전당’이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로 떠난다. 피렌체 곳곳에 있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관광객의 가슴을 뛰게 하는 도시, 피렌체는 어떻게 예술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KBS1 <예썰의 전당> [3회] 예술을 품은 도시, 피렌체(Florence)(2022년 05월 22일 방송) 다시보기
✵ 예썰 하나. 2억 원에 아이디어를 삽니다, 두오모 돔(Duomo) 설계 공모전!
15세기 피렌체(Florence), 상금 2억 원이 걸린 아이디어 공모전이 열렸다. 과제는 두오모의 돔을 올리는 것이었다. 현재 두오모는 피렌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지만, 건설 당시에는 규모가 너무 커 100년이 넘도록 돔을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설계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많은 상금에도 지원자는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이다. 그런데 그는 건축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건축 초보 브루넬레스키는 어떻게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했을까?
목재틀의 공중부목을 설치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을 건설한 브루넬레스키는 천재라는 칭송과 함께 과거의 방식과 개념들을 깨고 르네상스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위대한 거장이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의 고딕스타일의 광대하고 비어있는 듯한 실내건축과 감성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르네상스 최초의 돔이 된 피렌체 대성당은 이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등에 영향을 끼쳤다. 시계공이자 금세공인이었던 브루넬레스키의 고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방식을 세우는 반석과 기초가 되었고, 피렌체의 돔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인내했던 피렌체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도전정신으로 15세기 르네상스 황금기를 연 위대한 건축가 브루렐레스키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두모오(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 붉은 꽃으로 뒤덮힌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색 기와 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에 얽힌 이야기
오늘날에도 피렌체의 하늘을 가르며 가장 높고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은 1420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1435년에야 완공되었다. 당시로서는 건축학적인 수수께끼였으며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자, 석조 돔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규모와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엄청난 규모의 돔은 보는 사람들의 숨을 멈추게 할 만큼 압도적이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돔은 가분수 같아 보이지만 놀라운 공학적 기술과 예술적 디자인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고향이며 시작으로 만들어준 위대한 건축물이다.
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한 예술가는 중년의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였다.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산 로렌초 성당의 네이브, 1421-1440.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
엄밀하게 말하면, 르네상스는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15세기, 콰트로첸토에 본격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중심에 두오모 대성당의 건축이 있다.
물론 피렌체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세워 고대와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이다. 이미 중세부터 대성당과 베키오 궁전이 지어졌고, 성 요한 세례당의 경우는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었지만, 금융과 상권으로 막대한 부를 얻은 피렌체인들은 중세 말에 시도 되었던 고딕식 건축에 만족할 수 없어서, 과거엔 불가능한 기술로 포기했던 돔을 새로운 르네상스식으로 건축하기에 이른 것이다.
새로운 대성당 건축은 피사 출신의 건축가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로 1296년부터 시작되었다. 캄비오는 고딕식 건축물 구조에 작은 돔을 얹어 첨탑을 대신할 계획이었지만 기공 후 공사 중이던 1302년에 캄비오는 세상을 떠나고, 대성당 건축은 중단이 된다. 이 후 1349년까지 대성당 공사는 여러 문제에 부딪히면서 중단과 설계 변경이 반복 되었다. 마침내 1349년 공사가 재개되어 73년 만에 돔을 제외한 모든 건축구조물이 완성되었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입구와 조토의 종탑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외관
긴 공사기간 동안 피렌체는 르네상스 인문학과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의 몸과 자연과 우주를 재발견하는 도시로 재탄생하게 된다. 가장 높고 큰 돔을 지어야 한다는 소원은 기술적인 한계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피렌체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돔의 수수께끼를 풀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다렸다.
피렌체인들에게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돔의 건설은 15세기가 시작 되던 해에 실마리가 풀리게 되는데. 성 요한 세례당의 청동문 제작공모에 응모했던 금세공사 출신 브루넬레스키는 라이벌 기베르티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고대건축물을 연구하러 로마로 갔다. 그는 고대로마의 건축물들을 면밀히 살피는 가운데 특히 판테온을 보면서 돔의 건축방식을 연구하며 공학적인 기술을 터득하고 돌아온다.
1418년 두오모 길드위원회는 돔 건축을 위한 현상설계공모를 내걸었다. 브루넬레스키와 각국의 건축가들이 대거 참가한 공모의 기준은 마지막 변경된 설계를 기반으로 하되 값비싼 목재사용을 줄이고, 그 당시 가장 큰 돔을 건축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지어본 적이 없는 거대한 돔을 세우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난제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이전 고딕양식인 나무구조물을 쌓아 올리는 부벽을 만들지 않고 돔을 건축할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아이디어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대리석판 위에 계란을 똑바로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돔의 공사권을 갖기로 하고 결국 브루넬레스키가 최종 당선되었다.
공사기간 동안(1296-1369) 피렌체는 르네상스 인문학과 과학이 발전하고 인간과 자연과 우주를 재발견하는 도시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는 공사가 멈췄던 지점에서 돔을 위한 공사를 새로 시작했다. 팔각형 드럼에서 시작해 원뿔형으로 올라가는 돔 양식 이었다. 돔을 쌓아올리는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외부에서 지지해 주는 버팀 벽이 없는 채로 이중으로 쏟아지는 무게 하중을 견디며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의 판테온이 6미터나 두꺼운 이중-쉘 구조로 건설된 것에 착안해 두오모의 무게중심을 이중-쉘로 분산할 공학적인 방법을 마련했다. 돔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압축력과 사방의 빗면으로 퍼져 내려가는 인장력의 무게중심을 받혀주기 위해 돔의 모양을 완전한 반구형태가 아닌 위로 올린 우산대모양과 원형에 가까운 팔각 돔으로 설계하여 힘을 분산시켰다. 돔을 하나는 내부에, 다른 하나는 바깥으로 올린 이중-쉘 구조 사이에는 계단을 배치하고 돔의 안전을 위해 내부를 수직-수평의 체인과 고리로 짜임새 있게 연결했다.
그에 더해 돔의 성공적인 축성의 비밀은 해링본 벽돌 건축에 있었다. 돔의 내부바닥모양이 위로 올라가며 꽃모양을 이루고 벽돌들을 엇갈리게 쌓아 일련의 아치가 만들어져 균형을 잡아주었다. 이 방법은 원래 그의 설계에는 없었던 것이었으나 천재가 만들어낸 우연으로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두오모의 이름과 같은 모양이 나타난 것이다.
브루넬레스키는 16년이라는 긴 공사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은 메디치가에서 해결해 주었지만 공사를 둘러싸고 생겨나는 다른 건축가들의 악담과 비판에 일일이 대처해야만 했다.
마침내 대망의 1436년이 되었다. 처음 공사가 시작된 지 140년 만에 부르넬레스키는 디자인과 공학의 절묘한 조화가 만들어낸 르네상스의 최고 걸작 두오모 대성당의 돔을 완성한다. 돔이 완성된 지 10년 후 그리고 돔 내부의 자연조명과 환기를 위한 루프랜턴 공사를 시작한 지 한 달 여 만에 브루넬레스키는 세상을 떠났고 그가 지은 돔 아래서 처음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피렌체의 위대한 천재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여기 잠들다.” 중단된 랜턴공사는 후에 브루넬레스키의 친구인 미켈로초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두모오 외벽은 흰색, 초록색, 적색의 대리석을 교차되도록 설계되었다. 외벽 완성에만 400년이 걸렸는데 이는 색이 있는 대리석을 토스카나 각지에서 조달해 왔다./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토(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설계한 대성당에 딸린 종루
목재틀의 공중부목을 설치하지 않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을 건설한 브루넬레스키는 천재라는 칭송과 함께 과거의 방식과 개념들을 깨고 르네상스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위대한 거장이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의 고딕스타일의 광대하고 비어있는 듯한 실내건축과 감성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르네상스 최초의 돔이 된 피렌체 대성당은 이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등에 영향을 끼쳤다.
시계공이자 금세공인이었던 브루넬레스키의 고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방식을 세우는 반석과 기초가 되었고, 피렌체의 돔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 기꺼이 인내했던 피렌체인들의 자부심이 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맞은편에 위치한 산 조반니 세례당
베끼오 궁전
✵ 예썰 둘. 피렌체 최대 스폰서,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의 비밀?
르네상스 대스타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공통점은 바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술에 대한 뛰어난 안목을 가진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 1449-1499)는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알아보고 캐스팅(?)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막대한 부와 예술적 안목으로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메디치가. 그런데 사실 이들은 귀족 출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피렌체 최대 스폰서 메디치가의 비밀을 파헤쳐 본다.
보티첼리, 동방박사의 경배
✵ 예썰 셋. 예술 좀 알았던 부유한 후원자 메디치가의 속내?
예술후원의 빛과 그림자 메디치가가 38년간 예술 사업에 투자한 돈은 자그마치 6,600억 원이었다. 메디치가의 예술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후원에는 다른 속내가 있었다고 한다. 메디치가가 예술에 투자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예술계의 큰손 메디치가의 양면을 알아보고,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오늘날 예술 후원 시스템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누어 본다.
코시모 데 메디치의 초상
안나 마리아 루이사는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승계자
이탈리아(Italian) 지도
✺ 이탈리아(Italian)의 정식 국호는 이탈리아공화국(Republica Italiana, Italian Republic)이며, 수도는 로마(Rome)이다. 면적 30만 1340㎢, 인구 6185만 5120명(2015년 현재)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이탈리아인이다. 언어는 이탈리아어이며, 종교는 99%가 로마 가톨릭을 신봉한다. 기후는 알프스와 접한 북부 일부 지역은 겨울에 대륙성기후를 보이나 그 밖의 대부분 지역은 전형적인 지중해성기후를 보인다.
바디칸 미술관
콜로세움
트레비분수
포로 로마노
✺ 피렌체(Firenze)는 ‘꽃’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르네상스가 활짝 꽃핀 도시이다. 로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230㎞ 떨어져 있는 이 시는 공화국, 토스카나 공작령의 수도, 이탈리아(Italia)의 수도(1865~71) 등 다양한 지위를 누리며 긴 역사를 이어왔다. BC 1세기경 로마의 군사 식민지에서 비롯된 곳으로 14~16세기에는 예술을 비롯하여 상업·금융·학문 등의 분야에서 높은 위치를 점했다. 이곳을 무대로 활발히 활동했던 천재들을 통해 이 시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및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피렌체(Firenze) 시가지
베끼오 다리
두오모(밀라노 대성당)
플로렌스(Florence)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Toscana州)의 주도(州都). 메디치가(medici家)의 지배하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Firenze)’의 영어 이름이다.
관광업이 시 경제활동의 기반을 이루고 있으며, 전통적인 수공예품인 유리제품과 도자기, 귀금속제품, 가죽제품, 예술 복제품, 연철 및 짚 제품, 고급 의류와 구두 등의 제조업도 이루어진다. 그러나 도시 자체가 제조업의 중심지는 아니며, 대부분의 공업활동은 교외에서 이루어진다. 도심은 지금도 로마 시대 자치도시의 구조에 따라 세워져 있다.
옛 상업 중심지에는 현대 시민생활의 핵심부인 레푸블리카 광장이 들어섰다. 이제는 공예품이 시 전역에서 유통되고 있으나 지금도 전통적인 장터가 남아 기능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그중 하나인 폰테 베키오('오래된 다리'라는 뜻)는 금·은 세공인, 보석상들이 모여 있는 상업 요지이다. 이 시의 역사적인 종교 중심지는 바티스테로산조반니 세례당(1000경)과 고딕 양식의 두오모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추정되는 이 세례당에는 성서의 장면들이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청동문이 있다. 프레스코로 장식된 교회들 가운데에는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훌륭한 본보기로 꼽힐 만한 것들이 많다. 조르조 바사리가 설계한 우피치 미술관은 이 시의 미술관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마니에리스모 양식으로 지어진 우아한 날개 부분에는 프랑스·네덜란드·플랑드르·독일의 유명한 대작들과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특히 르네상스 시대 그림의 수집 수준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 팔라초피티와 호화롭게 조경된 그곳의 보볼리 정원은 이 시 전체에서 볼 수 있는 궁전들과 정원들의 본보기이다. 시 안팎으로 피렌체대학교를 비롯하여 고등교육기관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해외주재 대학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와 그 주변 지역에는 버스와 노면 전차가 운행된다. 간선도로인 아우토스트라다델솔레가 시의 서쪽과 남쪽을 통과한다.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를 잇는 철로가 통과하며, 동쪽과 서쪽의 도시들과도 철도망을 통해 연결된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3회] 예술을 품은 도시, 피렌체/ 《브루넬레스키의 돔》피렌체 <산타마리아 대성당> 이야기(저자: 로스 킹, 역자: 김지윤, 출판: 도토리하우스, 2021.11.6.)/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