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광신도
프랑스 혁명의 불씨를 지핀 지성사적 거목을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두 이름이 있다. 바로
장 자크 루소와 볼테르다.
두 사람 모두 구체제(Ancien Régime)의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절대왕정과 종교적 권위를
흔들었으며, 인간의 자유를 노래했다.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 둘을 '계몽주의 철학자'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곤 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서로를 향해 증오에 가까운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
볼테르는 루소를 '위험한 광신도'라 여겼고, 루소는 볼테르를 '타락한 위선자'라 경멸했다.
문명의 진보인가, 인간의 타락인가
두 사람이 처음부터 척을 진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루소는 이미 유럽 최고의 지식인 반열에
올랐던 볼테르를 깊이 존경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뼛속 깊은 관점 차이가 결국 파국을 불렀다.
볼테르는 문명의 진보를 굳게 믿었다. 이성과 과학, 교육과 관용이 인간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킨다고 확신했다.
그는 화려한 도시와 세련된 문화, 지적인 살롱 문화를 사랑한 엘리트였다. 반면 루소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본 것이다. 루소는 자신의 저서 <학문예술론>에서 유럽 지식인
사회를 뒤흔든 충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과학과 예술, 그리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더욱 가식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한다.”
모두가 '이성의 진보'를 외치던 계몽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문명 자체의 가치를 의심한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볼테르는 특유의 날카로운 비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루소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당신의 책을 읽고 있자니, 당장이라도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싶어지는군요.” 문명이 그토록 싫다면 당장 원시인으로 돌아가라는 신랄한 조롱이었다.
상반된 철학이 낳은 거대한 균열
루소 역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볼테르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냉소주의자로
보았다.
귀족들의 화려한 살롱에 앉아 우아한 말잔치나 벌이는 차가운 엘리트라는 생각에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인간 본성을 다루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갈렸다.
볼테르는 인간을 기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다. 그렇기에 사회를 지탱할 법과 제도, 교육과
합리적 이성이 필수적이라고 믿었다.
반면 루소는 인간은 본래 선하게 태어났으나, 사유재산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인간에게 사슬을
채우고 억압한다고 확신했다.
이 철학적 균열은 단순한 학술 논쟁으로 끝나지 않았다. 볼테르의 눈에 루소는 대중의 감정을 자극해
사회를 무정부적 혼란으로 몰고 갈 위험천만한 선동가였다.
반대로 루소의 눈에 볼테르는 영혼을 잃어버린 채 껍데기뿐인 문명만 찬양하는 기득권의 대변자였다.
두 개의 자유, 하나의 혁명
두 사람 모두 평생 동안 '자유'를 부르짖었지만, 그들이 꿈꾼 자유의 모양도 전혀 달랐다. 볼테르는
국가와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표현의 자유'를 무엇보다 신성시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
그러나 루소는 개인의 파편화된 자유보다 '공동체의 의지(일반의지)'를 우선시했다. 전체의 선을
위해서라면 때로 개인의 사사로운 자유는 유보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훗날 역사가들은 볼테르의 사상이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졌고,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의
'급진성과 집단주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비극적 아이러니
갈수록 두 사람의 갈등은 개인적인 파멸과 피해망상으로 얼룩졌다. 권력의 박해를 받던 루소는
볼테르를 포함한 문인들이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볼테르는 그런 루소를 보며 혀를 찼다. 조롱과 독설의 천재였기에, 루소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중 앞에서 철저히 웃음거리로 만들며 상처를 주었다.
평생 서로를 괴물과 광신도로 여기며 증오했던 두 사람은 결국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역사의 장난은 그들이 죽은 뒤에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을
때, 혁명가들은 볼테르의 이성과 루소의 열정을 동시에 빌려와 구체제를 무너뜨렸다.
두 사람의 유해는 결국 프랑스의 위인들이 묻히는 '판테온(Panthéon)' 국립묘지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평생을 증오했던 숙적이 죽어서는 영원히 마주 보게 된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경쟁자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있다. 하지만 천재는 직감적으로 안다. 눈앞의 저 숙적
역시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들의 싸움은 파멸적일 만큼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대를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세계가 통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던 두 천재는, 끝내 서로만큼은 품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류 지성사가 남긴 가장 깊고도 비극적인 아이러니였다.
<오늘의 팝송> Palace of versailles / Al Stewart
Palace of versailles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싱어송라이터 Al Stewart의 1978년 곡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혼란과 귀족 사회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노래했다. 그의 8번째 앨범 'Time Passages'에 들어있다. 1945년 생이다.
전인권이 '사랑한 후에'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https://youtu.be/8ug-n8NtIVM
첫댓글 볼테르와 루소 궁극적 목표 '자유' 를 부르짖지만
그들이 꿈꾸는 자유의 모양이 전혀달라
서로를 괴물과 광신도로 증오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후대의 혁명가들은 볼테르의 이성과 루소의 열정을 빌려
구체재를 무너뜨리는데에 사용 되었으니 아이러니라 할까요?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은 숙적이었지만
현세는 그 두사람의 사상이 공존하며
혼란과 발전되어간다고 봐야겠지요
프랑스혁명하면 나오는 그림과
오랫만에 들어보는 노래~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캔디님 감사요.
어제 손가락도 좀 다쳐서 타자가 어려웠고
늦게 들어왔습니다.
답글이 늦었습니다.
같은 자유라도 색갈이 틀렸던 것 같습니다.
이 노래들 들으면 젊을때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앙숙이 있다는 것
즉 적이 있다는 것은
서로 미워하면서 힘을 키우죠.
그래서 발전이 오게 되지요.
그들이 사후 프랑스 혁명은
두사람의 이론을 합친 것을 근거로
폭팔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지요.
너무 편안하면 발전이 적지요.
적이 생기면 열심히 움직여서 발전이 옵니다.
영웅은 언제나 전쟁에서 나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극이 있어야 분발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대단한 지성인 선각자
볼테르와 루소에 대해
잘 경청했습니다
조선도 김옥균의 사회개혁 과
부국강병 혁명이 성공했으면
일본에게 먹히지 않고
중국 청나라의 내정간섭을
받지 않았을텐데ㅡ
수백년간 호의호식 잘먹고 잘살은
기득권 양반 사대부들은
양반 상놈 신분 없었지고
평등세상과 차별없는
평등교육등
서양의 문물 평등 개화
개혁세상을
결사 반대하고
우물안의 개구리로 살았다
일본에게 망하고
강제 합병 되어도
왕실과 조정대신들 고관대작과
친일파들은
일제의 비호 아래 잘먹고
잘살고 지금까지도 대대로
많은 땅과 재산을 가지고
잘먹고 잘 살고있다
백성들은
노예 머슴 종 신세로
비참하게 살았다
수백년 지배계급층
기득권 세력들은
권력과 부로
돈없고 빽없는 백성들을
피 지배자로 만든다
그래서
불평등 불공정 불공평 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꾸고
개혁 혁명 하려고 한다
공감합니다.
당시 말씀대로 개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면 일본에 나라를 뺏기는
수모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고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만 용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