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신공53-3
제 53=3 장 : 출전전야(出戰前夜) “너와 이렇게 밤 하늘을 바라보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구나.” 이무결이 별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그는 진지밖에 있는 작은 언덕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낮에 추면제를 복용한 천운이 앉아 있었다. “후~! 제가 흑룡신공을 익힌 후에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은데요.” 천운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말했다. 생각같아선 왜 자신에게 수면신공을 전수했냐고 한바탕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애써 참았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쳇! 그러세요.” 두 부자는 대화를 중단하고 잠시 별을 올려다봤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그들의 눈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이제 너에게 우리 집안에 대한 얘기를 해야 될 것 같구나. 넌 너의 조부님에 대해 알고 있느냐?” 이무결이 뭔가를 결심한 듯한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물어볼 때 마다, 아버지가 연애사업 한다고 은근슬쩍 빠져나갔잖아요. 그러니 알 턱이 없죠.” 천운은 잠시 장가촌에서 이무결의 행동을 떠올리며 투덜거리 듯 말했다. 그 때를 생각하자 지금도 다시 웃음이 터지려했다. “그래. 그런 쓸데 없는 일들은 잘만 기억하는구나.” “당연하죠. 제가 누구 아들인데......” “헛소리 그만하고 우리 집안에 대해 말해주마.” 이무결은 여기까지 말하곤, 분위기를 잡고 뜸을 들였다. “어서 말해봐요. 기다리는 사람 답답하잖아요.” 천운이 기다리다 못해 재촉하자, 이무결이 못이기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우리 집안과 혈교는 남이 아니다.” “네?” “너의 조부님은 바로 혈교의 전대 공동 교주셨다.” “헉!” 예상치도 못한 갑작스런 고백에 천운은 놀라 헛바람만 들이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그러면 저도 혈교의 사람인가요?” 당황한 천운이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휴~! 어디서 말을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대대로 혈교의 교주는 하나였다. 검선에 의해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었어도 우린 조금씩 명맥을 유지해왔지. 그런데 네 조부님대에 이르러 문제가 생긴 거다.” “어떤 문제죠?” “조부님은 쌍둥이 동생이 하나 있었다. 두 분의 무공성취와 자질, 노력정도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비슷했다. 때문에 혈교에선 문제가 된 거지. 누구 하나를 교주로 하기엔 다른 하나가 너무도 아까웠던 것이다. 결국 장고끝에 혈교에선 두 명의 공동교주라는 특이한 기록을 세우게 된 거지.”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동생분은 살아계신가요?” 천운이 궁금함을 참지 못해 말을 끊으며 물었다. “허허. 잠시만 기다려 봐라. 곧 다 얘기해 줄 테니……. 네가 자꾸 촐싹거리니까 애써 잡은 분위기가 자꾸 깨지려 하잖아.” 이무결은 천운을 타박하곤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두 분은 각고의 노력끝에 혈교를 어느 정도 다시 부흥시키셨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긴 거지. 내 아버님은 천하들의인 피를 부르는 강호쟁패 따위는 잊어 버리고 어느 무인도로 옮겨가 조용히 살자고 주장했고, 숙부님은 이제야말로 강호를 지배할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하셨다. 두 분은 서로의 의견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당시에는 사대고수가 막 명성을 떨치고 있었지만, 두 분의 무공은 이미 사대고수를 능가하고 있었지.” “그래서요?” “결국 다툼끝에 아버님은 교를 버리고 나오셨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몇몇 동지를 모아 혈교의 강호쟁패를 방해하기 시작했지. 결국 아버님의 승리로 숙부님은 무공을 상실하셨고, 혈교의 계획은 40년정도 뒤로 후퇴했지. 하지만 워낙 은밀히 움직이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40년전에 혈교가 다시 부활하려 했었는 지도 모른다. 이건 심지어 사대고수조차도 모르는 비밀이지.” “음…….” 이무결의 말에 천운은 잠시 할 말을 잊고 침묵에 잠겼다. 평평 상상도 못했던 얘기라 천운은 혼란스러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천운이 심중을 짐작한 이무결은 잠시 천운을 바라보며 말을 멈췄다. “그 후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죠?” 잠시 후, 천운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겨우 숙부님을 이기긴 했지만 상처가 도져 곧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도 곧 병을 얻어 난 혼자서 천하를 돌아다닌 것이다. 그러다가 두 사부님을 만나고, 난 가출했다고 속이고 제자로 들어간 거지.” “그렇다면 지금 혈교의 교주는 저희와 무슨 관계죠?” “그는 네 당숙이자, 내 사촌동생이다. 병든 작은 아버지께서 말년에 낳은 자식이지. 혈교의 교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오직 교주라는 이름만 사용하기 때문에, 본명은 나도 모른다. 그리고, 네게 건넨 반지는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겠지.” “이거요? 그야 잘 갖고 있죠. 이건 무엇을 상징하는 거죠?” 천운이 손가락의 반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어두운 밤이었으나, 반지는 별빛을 받아 황홀할 정도로 맑은 빛을 내고있었다. “그건 혈교교주의 상징이다. 본래는 하나였으나, 갑자기 교주가 둘이 되자, 네 증조부께서 당시 최고의 장인을 불러 모조품을 하나 만들었지. 하지만 모조품이라해도 똑같은 재질과 제련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겉모습 만으로 구별하긴 불가능하다.” “이게 그런 깊은 뜻이 있었나?” 천운은 새삼스럽게 반지를 살피며 중얼거렸다. 종남파에서 사건도 반지덕분에 쉽게 해결된 것이었다. “그 반지의 숨겨진 힘을 아느냐?” “숨겨진 힘이요?! 역시 보통 반지는 아니군요.” 천운이 약간의 탐욕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 그 반지는 무공을 잃고 죽은 사람도 회복시켜준다는 비법을 담고있다.” “어디에요? 어떻게 하면 그 비법을 얻을 수 있죠?” 진기한 비법에 눈이 넘 천운이 숨 넘어갈 듯 이무결을 재촉했다. “그건 나도 모른다.” “네?!” “아무도 모르니까 비법이지, 쉽게 알아챌 수 있으면 그게 비법이겠느냐?” “허허……. 참 어이가 없네. 그러면 이 안에 비법이 있긴 있 는 거에요? 혹시 그럴 듯 하게 보이려고 하는 거짓말 아니에요?” 퍼~억~! 천운의 말에 이무결은 아무 말 없이 뒤통수를 쳤다. 천운은 갑자기 밤하늘에 별이 두배로 늘었다는 생각을 하며 뒷머리를 감쌌다. “내가 아무려면 이 밤중에 아들붙잡고 쓸데 없이 농담따먹기나 하겠냐? 진짜니까 믿어봐. 어쩌면 그 반지가 아닐수도 있지만…….” “아. 다행이 사실이구나.” 그제야 천운은 반지의 효능을 믿고, 반지를 소매로 닦아 조심스럽게 손가락에 끼웠다. “엥? 그런데 이 반지가 아닐 수도 있다니요?!” 뒤늦게 이무결의 말이 묘한 뜻을 품고있다는 것을 깨달은 천운이 뭔가 원인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게 말이다. 사실 증부님께서 모조품을 만든 다음에 두 반지의 차이점을 없애고 하나씩 건네줘서 말이야…….” “네?” “그러니까 네가 갖고 있는 반지가 모조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지금의 교주가 갖고 있는 반지가 모조품일 수도 있고……. 나도 확실하게 대답을 못하겠구나.” “우이쒸~! 그러면 왜 사람 마음만 싱숭생숭하게 만들어요? 그냥 조용히 지나가면 될 것을 가지고.” 순간 황당해진 천운이 반지를 바닥에 던지며 외쳤다. “어쩌면 그게 진짜일 수도 있는데?” 이무결이 장난끼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 잘하셨어요. 그런 사실은 확률이 반반이더라도 얘기해야죠.” 천운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다시 반지를 주었다. 그리곤 다시 보물을 다루듯 소매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저런 무서운 놈. 누가 내 아들 아니랄까봐, 저런 인생에 아무 필요없는 것 까지 날 닮다니…….“ 천운의 단순한 행동에 이무결은 혀를 차며 이런 생각을 했다. 둘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데 이번 싸움에 자신은 있나요?”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천운이 침묵을 깨며 물었다. “글쎄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자신 없다. 놈들은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고, 우린 급조했으니……. 높게 봐줘도 이할이상의 승률은 없다. 이 이할의 승률도 놈들이 갑자기 미친척을 해 내분을 일으켰을 때의 승률이지. 아마 포기하는 게 편할 게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면 왜 놈들에게 도전하는 거죠? 그냥 투항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텐데……. 게다가 같은 일족이라면 오히려 출세할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되니까…….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천하의 문제야.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목숨 따위에 연연해 하지 않은 지 오래다.” “젠장. 괜히 물어봤군. 그냥 궁금한 상태로 있을걸. 그랬으면 혹시나 하는 희망도 가질 수 있었을텐데…….” 천운은 애꿎은 풀만 잡아뜯으며 화를 달랬다. “네게 정말 미안하구나. 이제까지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널 사지로 데려가야 되다니…….” 이무결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매일 티격태격하며 싸워도 아버지잖아요. 제게 미안하면 꼭 이길 방법이나 생각해 보세요. 괜히 여자 생각만 하지 말고.” “허허. 이 놈이 이제 아버지를 가르치려 드는구나. 내가 전에 말했잖느냐? 바람기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라고.” “하하하하!” 이무결의 능청맞은 대꾸에 천운이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그러나 너무 과격하게 웃는 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짜식. 속으론 겁나면서 애써 태연한 척 하기위해 필요이상의 반응을 보이다니…….’ 이무결은 과민반응의 천운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강호를 다니면서 느낀 건, ‘역시 우리 집안의 본능은 어 쩔 수 없구나.’ 하는 겁니다. 아무리 이성을 갖고 여자를 돌처럼 보려해도 그게 안되더라구요. 그럴수록 여자가 더 금덩어리로 보여요.” 천운이 다시 능청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래. 넌 역시 내 아들이 맞구나.” 이무결은 씨익 웃으며 천운을 꽉 끌어안았다. “저리 가요. 내가 무슨 변태라고……. 여자면 몰라도 남자는 싫어요.” “오랜만에 아버지가 아들좀 안겠다는데, 너무 반항하지 말아라. 이게 다 부자지간의 정이란다.” 천운은 숨을 켁켁거리며 이무결을 밀치려했다. 그러나 이무결은 그럴수록 더욱 세게 그를 껴안았다. ‘미안하구나. 잘 해준 것도 없는데…….’ 천천히 천운의 등을 쓰다듬던 이무결이 갑자기 천운의 등에 있는 천주, 영대, 명문의 세 혈도를 짚었다. 이어서 손을 천운의 머리쪽으로 가져가 수혈을 짚었다. “왜 내 혈도를…….” 천운은 눈앞이 캄캄해짐을 느끼며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 “미안하다. 너까지 그런 승률없는 싸움에 끼여들게 할 수 없구나. 며칠만 푹 자거라.” 이무결은 천운을 어깨에 짊어지고 어디론가 몸을 날렸다. 방금전 천운이 신경질적으로 잡아 뜯은 잡초만이 바람에 날렸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ㅈㄷㄱ~~~~````
잘봅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 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해요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