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19) - 책임은 내가, 상은 아래로
오늘(7월 27일)부터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저녁때의 개회식에 앞서 오전에 여자마라톤선수들의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아프리카의 케냐 선수들이 1, 2, 3위를 휩쓸었다. 1위를 한 선수는 달리기 막판에 동료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으나 선두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질주하여 결승 테이프를 끊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 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47개의 금메달이 나온다. 입상하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미국 하버드대학의 인류학 연구진은 2004년 네이처 잡지에 '오래달리기가 인간을 진화시켰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의 건각들이 최선을 다해 달리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부족한 부분들이 더 좋은 방향으로 진화되는 교훈을 얻으면 좋으리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확대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 시장 직을 걸었다가 투표율이 낮아 개표가 무산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공직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책임과 의무의 막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그가 서울시 본연의 임무가 아닌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문제에 사활을 건 것 자체가 책임과 의무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한 사려의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의 사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음이 안타깝다.
나는 학생들에게 강의 중 상을 받을 사람과 책임질 사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여러 사람을 다루다보면 상을 줄 사람, 책임 질 사람, 공을 돌릴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 이를 주는 것이 적절할까,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상은 부하에게 주고 공은 상사에게 돌리며 책임은 내가 진다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이 말은 내가 공직에 있을 때 직업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고위직에 오른 어느 장관이 월례조회 시간에 자신의 공직생활에서 체득한 경험과 사례를 토대로 피력한 것을 마음에 새겨 둔 것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공을 가로채고 상을 탐내며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동상이나 송덕비를 교묘하게 세우는가 하면 스스로 상을 받겠다고 자천해 나서기도 하고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풍조가 만연한 것이 안타깝다.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의 상훈을 2-3대 후손들이 받는 모습을 보며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잊히지 않는 공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난 일요일은 천혜경로원의 원장이었던 장신애 여사의 16주기 기일이었다. 이날 추모의 시간에 우리 교회 목사님은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할 일을 다 했다.'고 술회한 말을 소개하며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는 성경말씀으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성취를 이룬 그분의 올곧은 삶을 치하하였다. 그분의 마지막 생을 가까이 지켜보며 하늘의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이번 달 샘터(9월호)에 '상을 주다, 상을 받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홀로 두 딸을 키웠습니다. 분명 힘이 들었을 텐데 그 누구에게도 힘든 내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시아버님이 살아 계실 때는 여름휴가를 늘 시댁으로 갔고, 시누이가 환갑을 맞았을 때는 시누이 부부와 여행을 갔습니다. 참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얼마 전 그녀의 둘째딸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의 MBA 과정에 합격했습니다. 내친 김에 그녀는 가보고 싶었던 뉴욕여행을 결심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는 아주 좋은 호텔에서 묵으며 보고 싶었던 뮤지컬을 보고,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에 가는 럭셔리한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적금을 깨야 하는 일이었지만 이제 자신에게 그만한 상을 주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그녀. 우리는 밥을 먹다 말고 기립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나 스스로에게 상을 주었다'는 글 쓴 이의 표현이 마음에 든다. 내 주변에는 이와 같이 스스로에게 상을 주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며칠 전에 사촌여동생이 멸치 한 상자를 선물로 가져왔다. 그녀의 아들이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로 출항하는 상선회사에 취업하여 첫 봉급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지난 3월에 우리 집안에서는 여동생이 일찍 남편을 여인 후 온갖 어려움을 딛고 두 남매를 잘 키워 어엿한 사회인으로 배출한 공을 기려 가문의 이름으로 공로패를 수여하였다. 그녀도 스스로에게 상 주어 마땅한 자랑스런 어머니다.
공직에 있을 때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라'는 자세로 임하였다. 어떤 때는 수백 명의 직원들에게 장관상을 수여하는 일을 다루었는데 정작 나 자신은 승진하는데 필요한 큰 상을 받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누구나 정년이면 받게 되는 훈장을 놓치기도 하였다. 수십 년 전에 다른 학교의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법인소유 땅을 임차한 이의 건축 관련 규정위반을 이유로 땅 소유주인 법인이사장에게 부과한 벌금형이 훈장수상의 제척사유가 된 것이다.(관계기관에 규정의 부당함을 호소하니 이를 시인하며 행정심판을 청구하라고 권유하였으나 상을 받겠다고 소청을 제기하는 것이 마음에 꺼려 포기하였다.) 천주교에서는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고 자기책임을 강조하거니와 훈장을 못 받은 것도 내 큰 탓이렸다.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사연으로 책임을 지고 상을 받으며 공도 얻는다. 나도 수십 년의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책임을 느껴 물러나기도 했으며 여러 형태의 상을 받고 공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공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경험을 통하여 '어떤 작고 인구가 많지 않은 성읍에 큰 임금이 와서 에워싸고 큰 흉벽을 쌓고 치고자 할 때 그 성읍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는 성경의 교훈을 새겼다. 세상이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이가 무릇 기하이며 상장과 공로패가 많으면 무엇하고 없으면 또 어떠한가,
세상이 힘들어도 자신의 삶에 충실한 이들이여, 아무쪼록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복을 얻고 자신에게 떳떳한 상을 받을지어다.
추신,
사람들은 책임을 다른 이에게 미루는 경향이 있다. 책임전가(責任轉嫁, 남에게 책임을 떠넘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번 서울시의 무상급식확대에 따른 주민투표와 시장직의 사퇴를 놓고 여당대표는 크게 분통을 터트리며 모든 책임을 시장에게 돌렸다. 문제해결의 책임을 맡은 서울시는 의회와의 대결로 세월을 보내다가 '시민들이 직접 판단해 달라'며 자기들의 무책임과 무능을 시민의 부담으로 떠 넘겼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이와 같은 책임전가에 대하여 적절한 예화를 들려주었다.
누구의 책임인가?
어느 날 수달이 와서 말했다.
“왕이시여, 저는 새끼들을 족제비에게 맡기고 먹이를 구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족제비들이 내 새끼를 다 잡아먹었나이다.”
왕은 족제비를 불러 정말 그랬는지 물었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그런데 고의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딱따구리가 부리로 전쟁을 선포하는 북소리를 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려고 서두르다가 그랬습니다.
왕은 딱따구리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딱따구리가 대답했습니다.
“네, 제가 전쟁이 일어났다는 북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전갈이 칼을 갈고 있어서 그랬습니다.”
왕은 또 전갈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전갈이 말했습니다.
“네, 그랬습니다. 그런데 거북이가 무기를 닦고 있는 것을 보았기에 칼을 갈았습니다.”
왕은 거북이를 불러 물었더니 거북이가 대답하였습니다.
“게가 예리한 칼을 다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게는 바다가재가 창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바다가재를 불러 사실을 물었습니다. 바다가재가 말했습니다.
“수달이 제 자식을 잡아먹으려고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 듣고 난 솔로몬이 말했습니다.
“저 족제비는 죄가 없다. 네 자식들의 피는 네게 책임이 있다. 죽음을 뿌리는 자는 죽음을 거두는 법이다.”
- 탈무드의 고급 유머(강문호 엮음, 서로사랑 출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