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 속에 머문 첫사랑의 고백: 윤희육 「고백」 전문
하얀 아침 등굣길에
마주치던 여자 동창
하세월 지났어도 수줍음 머금은 채
떠나갈
생각도 없이 내 가슴에 살고 있네.
윤희육 「고백」 전문, 『미사강변의 노래』(열린출판)
윤희육 시인의 시조 「고백」은 첫사랑의 설레고도 순수한 기억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놓지 못한 시인의 고백을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다. 이 시조는 짧은 순간의 만남에서 비롯된 감정이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감정이 어떻게 시인의 내면에서 자리를 잡아 삶의 일부로 남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초장은 “하얀 아침 등굣길에 / 마주치던 여자 동창”이라는 서정적이고 순수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하얀 아침’은 밝고 깨끗한 시간을 상징하며,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품은 미래를 암시한다. 이 이미지는 시인이 기억 속에서 그려내는, 청춘의 한 시기를 생생하게 불러온다. 또한, ‘여자 동창’이라는 표현은 그 시절의 순수한 첫사랑을 연상시키는데, 이 인물이 단순한 과거의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고 현재까지도 시인의 마음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장은 “하세월 지났어도 수줍음 머금은 채”로 이어지며, 그 감정이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이 수줍음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감정의 지속성, 즉 시인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감정이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감정이입은 시적 화자가 과거의 상황 속으로 자신을 투사해 그 감정을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수줍음은 단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시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고백적 정서로 작용한다.
마지막 종장에서 “떠나갈 생각도 없이 내 가슴에 살고 있네”라는 표현은, 그 감정이 시인의 마음 속에 여전히 남아 있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표현된 감정이다. 시적 화자가 과거의 감정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이 고백은 단순한 회상의 차원을 넘어선다.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이 아닌 내면의 감정을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이 시인의 감정적 세계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조는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감정이지만, 보편적인 정서로 승화된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다. 윤희육 시인의 「고백」은 이러한 감정의 보편성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시인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깊은 감정의 무게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에 머물러 있어, 보다 확장된 사회적, 역사적 맥락과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시인의 순수한 고백적 정서를 더욱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고도 볼 수 있다. (리뷰: 김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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