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재를 얹는 예식으로 시작, 40일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회개와 보속의 시기 ‘사순시기’가 시작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번 사순기간을 맞아 발표한 담화에서 특별히 단식의 가치와 의미에 관해 역설했다. 사순시기를 맞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한 참회 행위인 ‘단식’에 대해 알아본다.
단식(斷食)은 동서양의 종교 속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수행방법으로, 일정 기간 동안 모든 음식섭취를 끊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교적인 관점에서도 단식의 근본적인 정신은 다른 종교와 크게 다를 바 없으나, 특별히 가톨릭교회에서의 단식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참회 행위로 여겨진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단식에 대해 “음식과 음료를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절제하는 행위”인 동시에 “은총의 순간이고 덕을 강화시키며 기도하는 삶과 평온의 원천”이라고 정의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전례헌장 110항’을 통해 단식 실천을 권위 있게 요구한다. 즉 파스카적 단식 계명을 공포하면서 사순절의 시작과 성금요일, 그리고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성토요일에 실행하도록 선포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규정에 따르면, 만 18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신자들은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는 최소한의 의무만을 명시하고 있다. 단식의 방법도 과거에는 단식일에 두 끼는 금식하고 한 끼만 가벼운 식사를 허용했으나, 오늘날에는 통상 한 끼만 금식하고 두 끼의 가벼운 식사를 할 수 있다. 이는 신자들 각자가 나름대로 자신의 죄를 보속하는 정신으로 절제와 희생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또한 과거에는 단식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통에의 동참을 지향했으나, 오늘날에는 이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나눈다는 점에서 단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식의 의무에서 제외되는 이들은 노약자나 임산부, 환자나 중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특별히 허락받은 사람 등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단식은 건강을 위해 행하는 일반 단식이나 체중 감량(다이어트)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단식은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거나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닌, 죄와 악행을 끊어버리고 하느님께 향할 수 있게 하는 극기와 참회의 행위로 거듭나야 한다. 이와 함께 기도와 뉘우침, 그리고 사랑을 동반하는 ‘영적 단식’이 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식은 그 고유한 의미와 동기 때문에 기도나 선행과 대체될 수는 없다. 아울러 단식은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음식에 대한 탐도로부터 생명력을 해방시키며, 육체 안에서 생명을 유지시키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나타내고, 사랑의 정의의 실천을 위한 연대의 표지이다.
한편에서는 물질적인 풍요 속에 낭비를 일삼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아와 빈곤 속에 허덕이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란 맥락에서도 또 다른 ‘단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단지 교회가 정한 규정을 준수하는 차원을 넘어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도 단식의 행위는 영신적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8일, 곽승한 기자 ]
신·구약성경은 단식의 의미와 그 실행 방법에 대해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단식을 하는 이유는 ‘속죄와 간구’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에게 단식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행위이며(1사무 7,6), 하느님의 진노를 피하는 첩경이고(요엘 2,12), 죄의 위험에 다시는 빠지지 않게 도와달라는 기도였다(에스 4,16 1마카 3,47).
특히 구약성경 안에서의 단식은 수덕 실천의 기능보다는 대부분 고통의 표시였다. 애환과 슬픔의 예식으로서 재와 거적을 뒤집어쓰고 실천했고(1사무 31,13 2사무 1,12), 참회의 표시였으며(1사무 7,6 느혜 9,1-3 예레 14,12 요엘 1,14 요나 3,8), 필요한 경우에는 기도와 병행되기도 했다.
가끔 단식이 공적 기도의 한 부분으로 선포됐으며(판관 20,26 1사무 14,24 1열왕 21,9 에즈 8,21~23 예레 14,12 요나 3,5~10), 모세와 다니엘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기 위한 준비로 단식을 실천했다(출애 34,28 신명 9,9 다니 9,3).
이스라엘 율법에서는 ‘속죄의 날’에는 어떤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단식했고(레위 16,29~31 민수 29,7),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년) 이후 기록에 보면 매년 4, 5, 7, 10월에 단식했다(즈가 8,19).
일반적으로 구약성경에서의 단식은 해 뜰 무렵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 동안 실시됐다. 그러나 사흘(72시간 동안) 내내 단식하는 경우도 있었고(에스 4,16), 단식이 자주 권장되고 높이 평가되기도 했다(유딧 8,6 요엘 2,12~17 2마카 13,12 판관 20,26).
예언자들은 진정한 마음과 행위가 따르지 않는 단식 행위를 질타했다. 특히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단식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한 참회가 선행되어야 하며, 또한 정의와 사랑이 실천이 수반되어야 함을 강조했다(이사 58,4~5 6~7).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단식은 슬픔의 표현이었지 수덕 실천의 방법은 아니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단식이 기쁨의 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마르 2,18)고 답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을 빼앗긴 후에는 제자들이 단식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단식에 관한 결정을 교회에 위임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리사이파적인 단식 태도를 비판하면서(루가 18,12) 단식을 할 때는 남이 모르게 하라고 명했고(마태 6,16), 당신 자신도 공생활 시작 전 40일 동안 단식했다. 이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40일 동안 단식한 것(출애 34,28)과 같은 그리스도교적 전통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후 사도들의 저술에서의 단식은 예배의 실천이 아니고, 다만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전 기도와 함께 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파견할 때(사도 13,2~3) 또는 아시아의 새로운 교회들을 위해 원로들을 임명할 때(사도 14,23) 등이다.
이밖에도 사도 바오로는 육체적 측면을 초월하는 더 깊은 의미의 단식을 강조, 하느님과 더욱 밀접한 친교를 맺고 자신을 완전히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필립 4,12 로마 14,6 1코린 10,31 1디모 4).
결국 성경은 단식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관련되었을 때만 가치가 있다(마태 9,13 6,16~18)고 가르친다. 즉 단식은 자기 수련과 영적이며 물적인 사랑의 실천이 수반될 때(토비 4,8)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15일, 곽승한 기자 ]
‘단식’. 이 말이 주는 무게는 묵직하다. 단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그 효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 30년 동안 꾸준히 단식을 실천해 온 사람이 있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달인’의 기준을 16년으로 삼으니, 30년 단식 경력이면 ‘단식의 달인’이라 부를 만하다. 단식으로 행복한 사람, 고영희(실비아·66)씨다.
“단식은 나를 낮추고 비우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3월 13일 경기도 가평 ‘작은예수회 피정의 집’에서 만난 고영희씨의 얼굴은 밝고 고왔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어보였고, 꼿꼿하고 단정한 모습에서는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작은예수회(회장 박성구 신부) 성령봉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고씨는 1년에 수차례 단식 또는 금식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달에 3일간의 단식을 가졌고, 다음달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아 1주일간의 단식을 앞두고 있다.
“단식을 통해 나를 완전히 비워내야 하느님께 온전한 나를 바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응답하는 모습이죠. 게다가 단식을 통해 절제와 인내심까지 배울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 아닐까요.”
고씨가 단식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삼십대 중반의 어느 날, 신앙 생활의 활력을 찾기 위해 찾아간 성령세미나에서 처음 단식을 권유 받았다. 그 자리에서 최소한 분기별로 3일씩, 1년에 12일을 평생 단식하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했다. 이후 본당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암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게 됐고, 환우들의 고통에 동참하겠다는 취지로 본격적인 단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도 먹지 않고 오기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1주일도 채우지 못하겠더라고요. 배고픔은 참을 수 있는데 신경이 예민해져 잠을 이루기도 힘들 정도였죠.”
고씨는 당시 사순시기를 맞아 처음 3일 단식을 성공한 뒤, 5일과 1주일, 열흘, 보름, 한 달, 사십일 순으로 기간을 점차 늘려나갔다.
고씨는 “음식을 무작정 먹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는 단식의 참된 의미를 느낄 수 없다”며 “단식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기도와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타 공인 ‘단식의 달인’이 제시하는 그만의 단식 비법(?)이 있을까.
고씨는 “단식에 앞서 스스로의 의지와 다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단식에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정성 어린 기도로써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며 “여러 가지 이유로 개인 단식을 하기 어렵다면 공동체 차원의 ‘고리 단식’을 실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전했다.
“단식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순시기를 맞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묵상하며 단식에 도전해본다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요. 많은 신자들이 단식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22일, 곽승한 기자]
그리스도인의 단식은 일반 단식에 ‘기도’가 더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단식으로 육체와 정신을 맑게 비운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초대교회 때부터 성인과 영성가들은 “기도하려면 극기해야 하고, 극기하려면 기도해야 한다”며 극기의 한 방법으로 단식을 권고해 왔다. 단식을 통해 기도를 방해하는 욕심과 혼란함을 떨쳐 버릴 수 있고, 기도를 통해 단식으로 인한 여러 유혹을 이겨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의 단식은 욕구를 억제하고 정신을 집중해 참된 기도생활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나 임산부·어린이·노인 등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정상인들도 단식에 들어가기에 앞서 자신의 병증과 체질에 관해 전문 의료인 등의 소견을 받은 다음, 자신에게 알맞은 단식 일정을 가져야 한다.
■ 얼마나 하나
단식 기간은 개인의 신체 조건과 건강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르게 적용된다. 처음 단식을 시도하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5일 정도의 단식은 무리가 없지만, 견디기 힘들 경우 3일 정도만 해도 된다. 단식을 시작한 뒤 구토, 메스꺼움 등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바로 단식을 중단해야 한다.
3일 이상의 단식을 목표로 세웠다면 체계적인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무작정 굶는 것은 옳지 않다. 단식 전 준비기간인 ‘감식기’와 본 단식인 ‘단식기’,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회복기’ 등 철저하게 단계를 지켜야 한다.
- 감식기 : 단식 며칠 전부터 채식 위주의 소식으로 서서히 식사량을 줄여나가, 단식 전날에는 저녁을 거르거나 야채죽 또는 미음 등을 조금만 섭취해야 한다. 감식 때는 맵고 짠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 단식기 : 하루에 생수 4ℓ를 조금씩 나눠 마셔야 한다. 생수를 마실 때는 벌컥벌컥 넘기기 보다는 입술을 적시듯 조금씩 씹으면서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비타민 섭취를 위해 감잎차를 마셔도 좋다. 감잎차는 90도 온도의 물에 우려 한 번에 500cc 정도를 오전에 마신다. 가벼운 산책이나 단전호흡, 냉온욕 등은 노폐물 배출에 도움을 줘 단식을 효과를 높여준다.
회복기는 단식기 만큼이나 중요한 시기다. 회복기를 잘못 보내면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특히 커피, 술, 담배를 금하고, 인스턴트 음식이나 밀가루 음식, 소금도 피하도록 한다. 한 끼 식사시간을 20분 이상으로 늘려 천천히 식사한다. 미음과 죽, 녹즙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좋다. 뜨거운 음식은 금물이다.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나 홀로 단식’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혼자 하는 단식이 부담스러울 경우 피정의 집이나 본당 차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 단식을 병행하는 피정의 경우 비용 부담이 크지 않고, 그 효과 또한 믿을 수 있다.
작은예수회(회장 박성구 신부)가 운영하는 ‘예수사랑 단식피정의 집’(031-584-5997)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단식 피정 장소다. 이곳에서는 연중 여러 차례 단식 피정 프로그램이 열린다. 꼭 단식 피정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회 서울 명상의 집(02-990-1004),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041-863-5690), 인천 성 안드레아 피정의 집(032-465-0835), 청주 엠마우스 피정의 집(043-260-1638) 등의 기관에서 개인 피정을 가지며 단식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가톨릭신문, 2009년 3월 29일, 곽승한 기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