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하는 조현옥 시인이 10번째 시집 『금강의 노을』을 상재했습니다. 2021년 발간된 제9시집 『통일 열차』 이후 2년만입니다. 시집은 3부 61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인의 시는 사특함이 없고 어렵지 않아 술술 잘 읽힙니다.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시인은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인 보청천(報靑川)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 금강이 시인에게 말을 걸어와서 자신의 시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자꾸 말을 걸어오는/타인의 목소리 같이/노을 지는 금강에 서면/내가 간직해야 하는/불의 해독/그 첫 줄이 사라져갔습니다”라고 말합니다.-「금강의 노을 1」부분. 몇 편의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높고 외롭고 쓸쓸한
방 하나 있었다
밤하늘의 푸른 별들만
그런 줄 알았다
사람은 누구나
높고 외롭고 쓸쓸한
방 하나 있다
그 방안에서
오래도록 슬플 것이다
그 방안에서
오래도록 고독할 것이다
-「빈방」 전문
1연 11행의 짧은 시입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을 깨우친 시인의 운명을 짧고 간결하게 노래한 비수 같은 시입니다.
강에 내리는 눈은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 세상 풍경이 아닌 듯
눈이 내립니다
다시 돌아갈 날들과
다시 돌아올 날들이
함께 뒤섞이며
강물에 눈이 내립니다
강물에 내리는
눈을 보면 숙연해집니다
세상에 죄 없이 맑고
께끗한 영혼들의 밤입니다
상처 많은 그들의 영혼을
닦아주고 싶은 밤입니다
하얀 눈처럼
맑고 깨끗한
영혼들을 위하여
죄 없이 오늘 하루가
푸르러야 겠습니다
강물에 눈이 내리면
잠들기 힘든 밤입니다
아무리 외로워도 누군가를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침묵이 지난 뒤에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하얀 눈발들 속의
이름 이거나
우리 모두는
눈 내리는
겨울 강 하나쯤은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첫눈 내리는 금강」 전문
‘첫’이란 단어가 주는 두근거림과 설렘이 있습니다. 첫사랑, 첫키스, 첫눈, 첫시집 등 수많은 ‘첫‘이 있습니다. 하물며 시인이 사랑하는 금강에 내리는 첫눈이라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갈 날들과/다시 돌아올 날들이/함께 뒤섞이며/강물에 눈이 내립니다”, 눈을 “세상에 죄 없이 맑고/깨끗한 영혼들”이라 부르고 그 눈을 보며 ‘상처 많은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닦아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시인의 모성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외로워도 누군가를/부르지는 않을 것“이고 “침묵이 지난 뒤에야/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것을 소리 없이 내리는 하얀 눈발을 보며 안으로 삭이는 중입니다. “우리 모두는/눈 내리는 겨울 강 하나쯤은/가슴에 품은/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눈 내리는 겨울 강 하나 가슴에 품고 살고 있습니까?
작은아이 손톱을
깍아주면 큰아이가
손톱을 깍아 달라고
손을 내밉니다
큰아이 귀를 후벼주면
작은아이가 귀를
후벼달라고 벌러덩
누워버립니다
작은아이를 안아주면
큰아이가 안아 달라고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옵니다
맛있는 과자를 주겠다고
부르면 두 아이가
어김없이 달려옵니다
엄마가 소파에 앉아
잠시 쉬려고 하면
엄마의 품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멀리서 달려옵니다
형제는 이렇게 서로
같이 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형이 동생의 입에
빵을 넣어주고
동생도 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남과 북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럴 날은 감감 무소식입니다
-「형제」 전문
시인도 어느덧 두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참 힘이 세지요. 손주들은 자식들과는 또 다른, 살아있음이 축복과 위로가 되는 사랑이지요.
한 놈을 업어주니 또 한 놈이
자기도 업어주라고 운다
그래, 에라 모르겠다!
두 놈을 같이 업어주니
두 놈이 같이 기분 좋아라 웃는다
남과 북도 그랬으면 좋겠다.
김준태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 전문
마지막 3행 “남과 북도/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그럴 날은 감감 무소식입니다”은 남과 북의 화합을 열망하는 김준태 시인의 절창 「쌍둥이 할아버지의 노래」를 연상하게 합니다. 두 선⸳후배 시인의 바램처럼 남과 북이 더 이상의 불화와 반목을 버리고 할아버지 등에 업힌 쌍둥이처럼, 할머니 등에 업힌 형제처럼 같은 마음으로 활짝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고 역사란 정반합의 이치가 있습니다. 오늘 현실에서 비록 역사가 퇴행하는 듯해도 사필귀정의 역사와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간직한 조현옥 시인의 10번째 시집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조현옥 시인 약력
1965년 충북 옥천군 옥천읍 소정리 출생
한국작가회의 광주전남지회 이사
제1시집 1994년 『그대를 위한 촛불이 되어』
제2시집 1996년 『무등산 가는 길』
제3시집 2014년 『4월의 비가』
제4시집 2017년 『일본군 위안부의 노래』
제5시집 2017년 『5월 어머니의 눈물』
제6시집 2018년 『행복은 내 가슴속에』
제7시집 2019년 『홍매화 피는 언덕』
제8시집 2019년 『할머니 등에 업혀』
제9시집 2021년 『통일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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