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릭스란 영화를 다시보다 알게 된 책인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세계를 오온/12처/18계로 보기도 하는 불교적 시각과도 일면 통하는 바도 있어 보여서 소개해 봅니다.
[제목]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저 |하태환 역 |민음사 |2012.02.0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현실세계인지 아님 누군가의 창조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세계인지 구분할 수 없어서 끔찍했던 영화 [메트릭스]. 영화 속 주인공 네오는 자신이 해킹한 데이터를 넣어둔 디스크를 책 속에 숨겨두게 되는데, 그 책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다.
이 책으로부터 영화의 모티프를 얻은 [메트릭스]의 제작자는 영화 제작에 앞서 주인공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는 물론이고 모든 스태프에게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할 정도였다고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대중매체와 사회현상을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했던 보드리야르는 그의 대표 학설인 '시뮬라시옹' 이론을 만들어 냈다. 이 이론은 현대사회에서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고 그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나중에는 가상 이미지가 현실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내용이다.
이 이론의 핵심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인공물을 지칭하며, '시뮬라시옹'은 시뮬라크르의 동사적 의미인 '시뮬라크르 하기'이다. 이 '시뮬라크르'는 재현과는 차이가 있다. '재현'은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했던 것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시뮬라크르'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원본이 없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시뮬라시옹'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여줬던 가상현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대중문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지만, 마치 그럴 법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광고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상품에 대한 광고를 하면서 우리에게 그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심어 놓는다.
마치 하나의 세계처럼 꾸며놓고 여러 캐릭터와 이야기까지 만들어 놓은 디즈니랜드는 시뮬라크르의 완벽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시나리오를 짜고 그것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한 다음 실제로 적을 보고 싸우는 게 아니라 모니터 상의 좌표를 보며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점점 시뮬라크르가 완벽해지고 많아질수록 우리들은 실재와 실재하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처럼 믿고 살아갈 수도 있다. 아니 이런 일들은 이미 일어나고 있다. 보드리야르가 우려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책소개 및 출처 링크: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4811
원래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 하지만 어떤 계기에서든, 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형시킴으로써 실재에 대한 재해석이 된다. 인상주의 회화들이 그렇다. 그리고 어느새 이미지는 상상만으로 대체되면서 사실성은 사라지는데, 그 때 사실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사라진다. 결국 실재와는 완전히 무관한, 순수한 '시뮬라르크'가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디즈니의 미키마우스를 한 마리의 쥐가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중에 자신이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은 거의 0.0001%도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미디어를 통해 알 뿐이지요. 티비, 신문, 라디오,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세상을 알게 되고, 그것이 실체와 같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은 시뮬라크르입니다. 사실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만을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구조화된 기호들만을 접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기호들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이라크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실제 사실이나 실체는 전혀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란 그저 CNN이 보여준 모습이나 미국이 주장하는 주장들입니다. 그것들은 기호화한 것이고 실체를 재현한 것들인데 그러한 기호화와 재현에서 어떤 왜곡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러한 재현된 것들입니다. 실제 이라크 전쟁에서 10만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1만명만 죽었다고 보도되고, 기록된다면 결국 이라크 전쟁에서는 1만명만 죽은 것입니다. 1만명이 죽은 사실만이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게 됩니다. 실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1만명이 죽었다는 기호만이 세계 곳곳으로 복제되겠지요. 1만명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복제인데, 그것이 계속 복제되면서 원본(10만명이 죽었다는 실체)는 사라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사람들은 TV 드라마를 본다. 신데렐라 신드롬이라고도 부를 정도로 여성들을 달콤한 환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파리의 연인', 마볼로 블라닉처럼 섹시한 뉴욕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낭만을 느끼게 만드는 'Sex and the city'등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하지만 두 드라마가 보여주는 삶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근거없는 마음 속 욕망들을 극적으로 투영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이미지가 실재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 것의 영향력으로부터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강남의 한 카페에 친구들과 둘러앉아 베이글과 커피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혹은 뉴욕에서 'Sex and the city' 촬영장을 순회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
오늘날 이렇듯 기만적인 이미지의 배경에는 미디어가 존재한다. 보드리야르도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세지다.'라는 발언이 시뮬라시옹 이론의 모체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미디어 그 자체가 전달되는 내용의 성격을 규정한다는 의미다.
또한 사람들의 대화는 문자메세지라는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여기엔 휴대폰이란 미디어가 있다. '인터넷' 뱅킹에서 실제의 돈을 대체한 디지털 숫자 기호도 하나의 이미지이다. 이런 사실에서는 미디어가 단순히 이미지의 기만성을 창조해낸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전통적 가치를 급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문화적인 위기를 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난무하는 가상의 이미지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혼란과 허무를 경험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 빗대자면 사람들은 문자메세지로 인해 대화의 아날로그적 정감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하게 난무하는 숫자 기호들로 인해 금전 감각에서 인간적인 가치들을 배제시켜 버렸다.
그런데 미디어가 현대에 이르면서 나타난 문명의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시뮬라시옹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다. 어쩌면 존재하는 무엇에 대한 복제 욕구와 소비 욕구(다시 말해서 존재하는 무엇을 이미지화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기 때문에 시뮬라시옹은 단지 오늘날 '극대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 당연한 흐름일 수도 있다.
그러한 흐름에 대하여, 우리는 시뮬라시옹에 전적인 지배를 당하는 극단의 미래를 맞이하지 않기 위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보드리야르는 여기에서 '저항'을 강조하며 스스로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하기까지 한다. 미디어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시스템의 모순을 그대로 따라가지 말고 더 멀리에서 시스템을 전복시키자는 것이다. 특히 인간적인 '언어'같은 것들이 그가 제시하는 저항의 수단이다.
하지만 시스템의 멀리에 존재하기에 현대인은 이미 미디어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현대인의 전복에 대한 의지는 그다지 강력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저항은 개인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로부터 떨어져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지만 집에서 TV를 없애는 가정도 있다. 혹은 오히려 철저하게 시뮬라시옹을 즐기는 방식도 있는데, 이는 그 것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의 강한 신념으로부터 비롯된다. 컴퓨터 게임을 미친듯이 즐기되 그 영향으로부터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면, 거꾸로 사람이 시뮬라시옹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하나의 기제로서 긍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보드리야르가 경계한 '대처하지 못한 시뮬라시옹 사회의 극단적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영화 제작의 모티브가 바로 그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채 계속해서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면, 머지 않아 영화 '매트릭스'는 현실이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결국 시뮬라시옹에 대해 보드리야르가 제시하는 저항의 가능성 또한 이런 결정의 의지를 뜻하는 것일테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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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시뮬라크르(프랑스어: simulacre)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니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것들을 말하며, 시뮬라시옹(프랑스어: simulation)은 시뮬라끄르가 작용하는 것을 말하는 동사이다. 이들은 장 보드리야르가 지은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프랑스어: Simulacres et Simulation)에서 나온 개념이다.
주로 대중 매체가 만들어 내어 시청자에게 각인시킴을 통해 작용한다. 책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은 영화 《매트릭스》의 강력한 모티브가 된 책이기도 하다. 특히 《매트릭스》 3부작의 첫 편에는, 주인공 네오가 속이 비어 표지만 남아 있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꺼내는 장면을 삽입하여 이를 암시하였다. 그러나 보드리야르 자신은 《매트릭스》는 자신의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 영화가 자신의 이론을 연관시키는 것은 오독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첫댓글 이책은 제가 철학을 전공 할때 읽었던 책으로 보드리야드는 서구 인간중심의 관점과 현대문명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 진것으로 불교와 연계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세상이 실체가 없는 단순한 꿈에 불과한 미망 즉 마야(maya)라는 표면적 관적은 연결 고리가 있어 보이나 철학자의 의도와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탈현대화라는 현대 제도와 기술들이 인간의 간여 없이도 너무 잘 작동하게 되면서, 인간의 노동력이나 역할이 점차 남아돌아가는 잉여(쓰고 남은것)가 되어 버리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현대의 제도와 기술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가면서 인간 해방이라는 형이상학적 사유의 회의라고 할까?
하지만 20세기 현대철학자들의 사상이 서양에 불교철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 안목을 주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겁니다.
잉여가 넘쳐나서 상징을 소비하는 시대가 될정도로 생활은풍요했졌는데 그러한 현상의 진행과정에서 자연히 나타날수 밖에 없는 여러 사회적풍조등으로 조작 내지 왜곡되는 허상적인 현상들에 맹목적으로 매몰되어 오히려 자기자신을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볼때 사물의 실체의 여여한 모습을 관찰하고자 하는 불교적인시각과 일치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법에서 나오지 않은 법일지라도 결국 불법과 일치한다면 그게 바로 불법이라는 의미에서 말이죠..
물론 저자는 사회적인 의미에서 사상을 축으로 여러 다양한 방향에서 강조 했겠지만요..
샘터님!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
주제에 대한 것은 언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구요.^^...단지 전 인연과 선택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받아들이는 대상뿐 아니라 방식역시 인연이고 개인차에 따른 선택 그리고 이어지는 인연과 선택의 반복..이과정에서 자신의 직관과 외부의지식의 도움을 받죠..대상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것도 여러 여건상 만만치 않은 만큼 인연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겠죠..불법의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과 수행을 하고자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은 그저 그러한 선택의 가능성에 대한 인연의 단초를 주는 것일뿐..직관과 지식에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