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白基玩 (1932 ~ 2021)】 "불쌈꾼 장산곶매 노나메기 새뚝이 "
어린 백기완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것은 이야기였다. 삯바느질을 했던 어머니, 독립운동을 했던 큰아버지와 집안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어린 백기완을 키웠다.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장산곶매', '이심이', '꼴굿떼' 이야기 속에는 양반 계급의 핍박에 저항해 온 민중혁명의 뜨거운 정서가 넘쳐흘렀다. 훗날 백기완은 이런 이야기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민중미학, 민중사상이 오롯이 담긴 글과 말을 남겼다.
"나는 아주 몰락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어. 할머니와 어머니가 배고프다고 칭칭대는 나를 달래는 방법이 있었어. 삼태기에 배추꼬리를 담아 와 깎아줬지. 그런데 배추꼬리가 모자랄 만큼 겨울밤이 계속되는 거야. 눈은 내리고 배는 고픈데 밤은 깊어가지. 그럴때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한테 옛날이야기를 해줬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지만 입으로 눈으로 서로 주고받았던 이야기 말이야.
"문을 차고 집에 들어와 '엄마 밥 줘' 하면 고개만 끄덕였어. 솥을 열면 콩국 한 그릇과 강냉이 한 자루뿐이었지. 그걸 홀랑 먹고 배고프다고 어머니를 졸랐어. 그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어. '야 기완아! 이웃들이 다 어렵게 사는데 네 배지(배)만 부르고 네 등만 따시고자 하면 너 인마, 키가 안 커!' 그 말이 내 일생을 길라잡는 새김말(좌우명)이 돼버렸어. 몸뚱어리 키도 안 크지만 마음의 키도 안 큰다는 말이야. 이 말보다 더 위대한 말이 어디 있어!"
그래서 퉁차기 뽀덜은 못되었지만서도 하지만 어머니, 저는 돈이 없으면 타고난 슬멋(재주)도 살릴 수가 없는 이 잘못된 벗나래(세상)를 발로 차고 또 차느라 이렇게 늙었지만 어머니, 저는 그때 어머니와 매긴 말매(약속)를 지켰습니다.
‘모래를 씹는 한이 있어도 굶주림 따위엔 마땅쇠(결코) 꿇지 말라’ 시던 어머니 말씀대로 이 주먹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머니,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저를 한 번도 안아주시지도 않고 그냥 가시기에 그냥 따라가며 어머니, 어머니 …” 그러다가 깨어보니 꿈.
그 꿈에서 깨어나서도 한참을 울면서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처럼 못난 놈은 없다, 나 같은 것이 어찌 사람이드냐’ 하고 집사람이 옆에 있거나 말거나 눌데(방) 바닥을 치며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