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풍경
文 熙 鳳
새벽 보문산을 오른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는 다섯 시다. 만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경쾌하다. 이른 시각인데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걷는 사람, 다정스레 걷는 부부, 연인, 혼자서 걷는 사람 등 많은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발밑에 스프링을 단 듯하다. 걷는 사람들뿐이 아니다.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옆에는 하나같이 물병을 매달았다.
오늘이 중복이다. 이상 기후 탓인가. 연일 불가마 솥처럼 달구어 놓는다. 장마 지나간 뒤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될 것이라는 보도에 걸맞게 달구고 있다. 오늘도 쨍쨍한 햇살이 세상을 고구마처럼 구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 한낮의 운동이 어려우니 새벽에 하는 것일 거다. 상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다. 건강하게 살기 위한 나름대로의 도전이겠지. 열대야로 지친 육신이다. 산에 오르니 모조지같이 두터운 바람이 나를 반긴다. 바람을 안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권태로움에게 썩 물러가라 호령해본다.
반 바지를 입은 그들의 장딴지를 보면 완전 근육질이다. 매일 단련한 결과겠다. 저런 몸이니 평행봉, 링, 철봉운동도 거뜬히 해낼 것이다. 부러운 사람들이다.
경사가 약간 있는 길이다. 경사를 오르자마자 등에서는 땀이 신호를 보낸다.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방 손수건을 얼굴에 댄다. 오르는 사람, 내리는 사람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는 방년이요 약관의 푸르름이다. 아주 편한 얼굴이다. 환한 얼굴이다. 이 세상의 꽃들 중 이들의 얼굴보다 더 예쁜 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산에 올라 시기와 갈등을 씻는 법을 배우고 갈 것이다.
좌우의 수목들이 내뿜는 자연의 향이 얼마나 신선한지 모른다. 공기가 청아하다. 짙푸르게 우거진 산이 보약을 달여 공짜로 내준다. 맘껏 심호흡하는 내 이웃들의 폐부가 신형 자동차의 엔진과 같을 것이다. 팔을 힘차게 흔들며 입을 벌려 시원한 바람을 맘껏 들이마신다.
정상에서부터 아름다운 향을 지닌 채 곤두박질치는 계수들의 음향은 또 얼마나 맑고 청량한가? 향과 음과 동작이 함께 어우러지는 보문은 그 자체가 천연 보물이다.
한참을 올라가는데 까치들이 나를 에워싸고 환영한다. 청설모가 아닌 다람쥐들도 여러 가지 재주를 선보이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오늘 하루도 아주 좋은 시간 만들어 가시라고 노래하며 인사한다.
등에서는 연방 땀이 흐른다. 오르고 내리는 산행객을 위해 바쁜 시간 내어주며 보시하는 보문산이다. 무디어진 감각에 신선한 자극을 보내주는 보문과 함께 할 수 있음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연초록의 보문이 날 유혹하는 것 같다. 주위의 수목들의 잎이 윤기로 도배된 것 같다. 번들거리다 못해 기름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초록 숲에 몸을 맡기고 마음을 열어놓으니 어느새 새로운 내가 거기 서 있음을 발견하곤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가을을 사는 지혜를 터득하면서 오늘을 이길 것이다.
샤워를 하고 올랐던 산을 바라보니 성하의 여름이 좋아라 통곡하듯 매미들이 음악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