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담양의 주선으로 한강 둔치에서는 야간산행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전이 지나고 오후 1시가 넘도록 대회가 열릴지는 불투명했습니다. 며칠 전 담양이 대회를 열자며 올린 글이 사실은 술에 절어 있던 회원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회원들의 몸 상태에 맞지 않게 철인 3종경기를 벌이자는 제안이었으니 몰매 안 맞은 게 다행이죠.
산지기는 당일 오후 2시경에야 담양에게 전화를 걸어 개최 여부를 물었습니다. 요즘 머리 상태가 불량한 산지기는 일요일에 대회가 열린다고 알았다가 카페에 들어와서 토요일로 확인을 한 것입니다. 담양으로부터 산적과 커피향이 나올 거라는 말을 듣고, 산지기도 파랑맘과 파랑이를 설득해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중랑천으로 산책을 나갈 참이었거든요.
산적에게 전화를 하니 잠 오는 목소리로 아이들을 데리고 올 거라 했습니다. 그래도 족구팀은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부랴부랴 씻고 옷을 입고 전철을 탔습니다.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길이 헷갈린 탓에 우왕좌왕하다 동부이촌동(4번출구) 방향으로 나왔습니다. 곧바로 걸어나오니 거북선나루터로 가는 길이 보이더군요.
드디어 한강 둔치에 도착했습니다. 강가라선지 바람도 불고 다소 쌀쌀하더군요. 파랑맘은 춥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파랑이는 발발이처럼 좋아라 뛰어다녔습니다. 그곳을 다시 걷게 된 건 정말 오랜만입니다. 90년대 풍물패 강습을 하던 장소였고, 운동을 하러온 곳이었고, 연애시절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었던 강가였으니까요.
한참을 걸어 농구장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담양과 산적, 그리고 산적의 귀여운 보물 무관이와 효정이를 만났습니다. 산적 가족들은 돗자리에 인라인스케이트까지 준비해 왔더군요. 부러웠습니다. 파랑맘도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더군요. 조금 기다리니 커피향과 따또가 왔습니다. 역시 장비들을 다 갖추고 왔습니다. 정말 3종 경기 하나 싶었습니다.
여하튼 야간산행 올림픽은 열리게 되었습니다. 참가인원 총8명, 남자 5명, 여자 3명. 종목은 농구와 길거리축구, 인라인스케이팅 등 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올림픽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농구를 하면서도 농구를 하는지 몰랐고, 축구를 하면서도 축구를 하는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곁눈질로 관람을 하던 인파(?)들의 눈에는 진풍경이었을 테죠. 선수들은 몸만 스쳐도 나뒹굴었고, 노마크 찬스에서는 절대 골인하지 못하면서도 대충 던져야 들어가는 슛! 그리고 경기 규칙을 밥먹듯이 위반해도 휘슬이 울리지 않는 "절대반지경기"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구기 종목에 참가한 선수 중 산지기를 뺀 나머지 세 선수는 지난밤 새벽 4시까지 술독에서 헤맸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세기적 철인3종 올림픽을 눈앞에 두고 술타령이나 할 수 있다니. 하지만 이 또한 야간산행이 존재하는 조건이니 눈 딱 감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인라인스케이팅에 참가한 선수들은 그런대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는 평가를 할 수 있겠습니다. 잔디 구간과 시멘트 요철 구간, 그리고 지형지물이 설치된 규정 코스 구간을 통과하는 동안 선수들은 별다른 사고 없이 선전했습니다. 특히 이번 인라인스케이팅에서 돋보였던 점은 선수들 모두 안정장구를 갖춰 경기 전에 퇴장당하는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별다른 준비나 장비 없이, 그것도 깜깜한 밤에만 산에 올라가는 야간산행팀에게는 경종을 울려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체격과 체력미달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해 울음을 터뜨린 파랑이와 꽃봄 추위에 못 이겨 얼어붙어버린 파랑맘이 경기 내내 심심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진도 찍고, 쇼맨들의 화려한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더불어 부족한 경기 인원을 채워준 길거리 묻지마 농구단과 축구단에게도 감사를 드려야겠군요.
해가 지는 어스름 우리는 동작대교를 넘어 사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담양이 사는 동네라 그의 안내를 받고 갔습니다. 사당역 근처의 횟집으로 들어간 일행은 광어와 간재미 회를 맛나게 먹었습니다. 다소 비싸긴 했지만, 몇몇의 희생정신으로 회원들은 즐거운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있는 법. 횟집에 도착할 때쯤 파랑이는 모든 식욕을 떠나보내고 잠이 들고 말았답니다. 그것도 제 복이겠죠.
밤 9시 30분경에 횟집을 나와 각자 헤어졌습니다. 파랑이네는 산적의 친절로 집까지 차를 타고 왔습니다. 방학동까지 오는데 차가 좀 막혀 1시간 넘게 걸렸답니다. 또 집으로 오는 도중에 무관이와 효정이는 잠에 골아떨어졌지요. 여러 모로 산적과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불어 올림픽을 총괄한 담양과 정의의 사도 정신을 보여준 커피향과 따또 등 야간산행의 산사람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일요일) 관악산 야간산행 하긴 하는 겁니까? 하실 분들은 밤 9시까지 서울대 정문 옆 관악산 입구로 오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올라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