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학교 길잡이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지음 | 성바오로딸수도회 옮김
5. 경청의 기도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내 생명 안에, 내 깊은 친밀함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마태 7,21)
입으로만 주님, 주님 하는 기도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깊이 침잠해야 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결단을 내리고 그것을 실행할 힘을 얻기 위해서는 경청의 기도를 해야 한다. '듣다'라는 말은 성서를 알아듣는 열쇠가 되는 동사로, 구약성서에 1100번, 신약성서에 445번이나 나온다. 이스라엘인들의 신앙고백은 '나는 믿는다'가 아니라 “듣거라, 이스라엘아. 주님이신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은 기도의 핵심이다. 만약 경청하지 않는다면 그저 기도의 언저리에만 머물 뿐이다.
주변에만 머물러 있다면 참된 기도의 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기도를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비로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경청의 기도가 지니는 본질은 의식 심층 안에, 즉 우리에 대한 하느님 뜻의 깊이까지 내려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청의 기도란 '우리의 개인적 문제들 안에서, 더 시급한 문제들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겸손과 신뢰에 찬 탐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민을 안고 있다. 경청의 기도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에 대한 겸손한 탐구이다. 하느님은 오만한 마음에는 말씀하시지 않는다. '다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친교를 나눌 수 없을 것이다. 경청의 기도는 신뢰에 찬 탐구이다. 마음과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이 클수록 하느님과 맺는 친교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경청의 기도는 개인적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하느님께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겸손되이 여쭤보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그분 앞에서 가면을 벗어버리는 것, 하느님께서 우리의 힘겨운 문제에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비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의 관심사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 삶의 시급한 문제들, 곧 편히 잠들 수 없게 하는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당면한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듯이 '매일의 수고'가 있고, 우선되는 문제가 있다. 하느님의 빛 안에서 누군가에게 현명한 대답을 주어야 한다. 경청의 기도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뜻이라는 빛 안에서 관리해 나가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경청의 기도는 깊이 있는 영적 작업이다.
경청의 기도 방법
1. 무엇보다 먼저 듣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듣기를 갈망해야 한다. 이런 갈망 없이는 출발할 수 없다. 만약 할 일이 태산 같다고 하여 부산스러움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이일 저일 참견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당신은 경청의 기도를 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당신은 듣고 싶어해야 한다. 들으려고 한다는 것은 하느님께 여쭤보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의지의 장난에 주의하라. 하느님과 '~를' 하는 척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나쁜 뜻을 품더라도 결코 방해하지 않으시는 신중하고 겸손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청의 기도를 할 수 있게 해주시길 청하고 마음이 무딘 것을 고백하라.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행동 앞에서는 항상 감동하시고 응답해 주신다.
2. 경청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과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 ]
1. 성령께 겸손되이 기도하지 않고서 하느님의 말씀을 펼치지 말 것이다. 엔조 비앙키는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성서를 가린 가리개 때문에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니 가리개를 치워야 한다. 성서를 펼치지 않고, 성서를 덮고 있는 표지를 넘기지 않고 읽을 수 있는가? 그러니 겸손하게 오랫동안 성령께 간구하라. 당신의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당신 안에서 신앙의 약동을 느낄 때까지 성령께 기도하라.
2.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읽도록 힘쓰라. 하느님의 말씀을 신문 읽듯이 읽지 말라.
3. 우리가 독서할 때 빠지기 쉬운 위험은 항상 급히, 흥미 위주로, 탐욕스럽게 읽는 것이다. 당신의 욕심과 성급함, 호기심을 경계하라.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령 안에서 깊이 있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성 지롤라모는 “우리는 미사성제 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데 어찌 분심 중에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읽을 수 있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우선 한 모금만 마시고 나머지는 그냥 지나치라. 당신은 샘이 고갈될 정도로 마실 수는 없다. 갈증을 풀기 위해서는 한 모금이면 충분하다.
4. 말씀 앞에서 솔직하라. 그분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면 그렇게 하시도록 하라. 올바로 이해하겠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본문에서 해설로, 해설에서 본문으로 넘어가라. 무엇보다 성서를 읽는 동안 성령께 간구하라.
"예언자들의 영혼을 건드리셨던 성령께서 성서를 읽는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시리라.”(성 대 그레고리오)
진심으로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라는 기도를 드리라.
5.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읽고 또 읽으라. 당신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 거기 있을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 하느님께 배우고자 하는 원의가 더욱 커진다. 고요하고 잠잠히 머물라. 하느님의 빛을 받으려고 조급해하지 말라. 하느님은 말없이 말씀하신다. 적당한 순간에 빛이 올 것이다. 아토스 산의 엔조 비앙키는 “성령은 흰 비둘기처럼 가까이 다가오다가 당신이 움직이면 도망가고, 가만히 있으면 다가온다"고 했다.
6. 하느님과 함께하는 길에서 벗어나려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오만으로도 충분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이나 읽기 전, 읽은 후에도 큰 겸손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빛을 강요하지 말고 겸손하게 간구하라.
[양심의 소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자주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가끔 하느님의 말씀은 빛이 퍼지는 것처럼 당신을 일깨우고 지성을 비추고 어떤 때는 당면한 문제들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한다. 피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께 귀 기울임은 양심의 소리를 듣도록 준비시킨다. 가끔 하느님의 말씀은 당신의 고민거리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 문제에 대비해 준비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의 양심과 하느님께 여쭤보도록 하라.
'주님, 제가 해야 할 이 일 안에서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 구체적 상황 안에서 당신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 어디서부터 이 고민을 풀어야 합니까? 어디에서부터 첫 발을 내디뎌야 합니까?
주님, 제게 빛과 힘을 주십시오!'
여기서도 빛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물음이 진솔하다면 하느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내 경험으로는 질문이 진솔하면 응답은 벌써 준비되어 있고 질문과 함께 걷기 시작하는 수도 있다. 하느님은 당신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을 기꺼이 비춰주신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큰 진보를 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작은 집착(무질서·애착·잡담·친우관계)이 승리하도록 자신을 방치했기 때문에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의 것에 대한 맛을 잃고 나중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십자가의 성 요한, 「가르멜의 산길」에서
-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지음/ 성바오로딸수도회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