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가는 길
이희숙
박경리 문학관에 왔다. 문 앞에서 빨간 고추가 담긴 소쿠리와 함께 환한 미소가 담긴 사진으로 우리를 반기신다. 문학관은 서너번 왔었다. 세월이 흘러도 감동은 여전히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문학관을 찬찬히 둘러 보고는 뒷길에 산소 가는 길 팻말을 보고 계단을 올라섰다. 사람의 인적이 없었다. 문학관은 몇 번 왔지만 산소를 올라가지 않았다. 산길로 가는 길을 보면서 얼마나 걸릴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시간의 촉박함도 있지만 산길을 혼자 올라가려니 갈등이 왔다. 뒤에 오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는 이 곳에 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발길은 이미 산으로 향해 있었다. 산이 주는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다가왔다. 나무의 정겨운 냄새가 먼저 반겼다. 뱃속까지 깊이 들어가는 호흡을 하면서 올라갔다. 그 분을 만난다는 호기심으로 설레였다.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하릴없는 사람처럼 느릿거리며 올라갔다.
조금 올라가니 위에서 아는 지인이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얼마나 걸리는 지 물어보았다.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늘 하는 멘트 ‘얼마 안 남았어요’ 하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시더니 갑자기 온 길을 같이 올라가 주겠다고 한다. 순간 놀라움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깊고 마음이 맑은 분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구부러진 길을 돌아서니 길옆으로 수천의 백일홍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반겼다. 산소 가는 호젓한 길에 이런 아름다운 광경을 만나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어지는 노란 금계국이며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모델이 된 양 포즈를 잡아보기도 했다. 구름까지 멋짐을 자랑하는 가을은 사색과 풍성한 계절임이 틀림없다.
꽃무리들로 반기는 것을 보니 그 분은 외롭지 않으실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 구부러진 산길을 지나니 단아한 산소가 보였다. 아! 이렇게 홀로 계셨네. 산소 앞에 흩트러져 있는 솔방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마음들이 뒹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인사를 하였다. 외로우신가요? 행복하신가요? 자유로우신가요? 물어 보았다. 대답은 없지만 그 분은 아마도 자유로우실 것 같았다.
한국문학사에 장엄한 산맥을 이룬 대하 장편 토지는 정말 표현할 수 없을 만치 훌륭한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일 것이다. 하동의 대지주 최 참판네 가족을 중심으로 한말에서 부터 조국 광복에 이르는 민족사를 반영하고 작품에서 보여지는 광대한 스케일 개인 개인의 인물에 대한 구성 등이 훌륭한 책이었다. 책은 몇 번이나 읽었고 드라마도 다시 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을 흔드는 것을 보면 명작이 아닐 수가 없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동굴 속과도 같이 차단된 세계 속에서
책은 유일한 벗이었다 (토지 5부 1권중에서)
책을 벗삼아 글 쓰는 것에 영혼을 불태우는 작가들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존경심이 저절로 올라 왔다. 돌아가셨어도 모두들 추억하며 기억하려 한다. 그러나 죽음이란 어차피 혼자가는 길이다. 이름있는 사람이거나 평범한 사람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에 따라 죽음의 이후가 다르다. 산속에 누워 있는 것이 좋을 것인가. 화장하여 바람처럼 날려가는 것이 좋은가. 납골당에라도 있어 주어야 할까. 개인의 삶에 대한 가치가 다르므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요즘은 땅이 부족하여 매장보다는 화장으로 가고 있는 분위기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화장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 또한 우리들에게 짐이 된다며 바쁜 세상에 누가 찾아오겠냐고 하시며 자신도 자유롭게 화장해 줄 것을 당부하셨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화장하고 바다에 뿌리고는 한동안 힘들었다. 어디서 어머니를 만날 것인가. 힘든 삶 속에서 하소연할 때가 없었다. 만날 수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늘 어린아이처럼 울먹거리며 살았다. 납골당에라도 모셨으면 한번씩 찾아가서 볼텐데...라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선택이다. 시대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제는 마음의 정리도 하고 자녀들에게도 자신의 의사를 잘 전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분의 산소에서 내려오면서 지인과 작가의 진솔한 생애와 죽음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글쓰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글쓰기에는 프로가 있고 아마추어가 있다. 그것은 스스로가 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른 선택이기도 하다. 자신의 영혼을 다하여 고통과 고독 속에서도 글이 아니면 안된다는 명제를 가지고 쓰는 사람과 글을 좋아해서 쓰는 사람은 다르다고 한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기고 작가들이 쓴 것에 애정을 가지고 읽어 보는 아마추어일 것이다. 프로가 될 만큼의 열정을 가진 것도 아닌 자신을 직면하게 되었다. 그분의 산소를 다녀오면서 나는 마음이 편해지고 자유스러워졌다.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던 경계에 서서 갈등하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다. 자신의 방식대로 글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첫댓글 문학관은 저도 다녀왔는데 참으로 그 원고지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면서 역시 어려운 글쓰기.
토지를 읽으면서도 글을 쓰시던 그 분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분의 문학관에는 가봤어도 산소는 생각조차도 못했네요
내 사후의 처리 문제는 자식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그에게 구원이었고
숨 쉴 통로였으며 외롭지 않았다"
어디 책 뿐일까요.
아침바다님의 글! 도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