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장의 달력을 넘긴다. 무언가 서운한 듯한 2월 달력을 들여다본다. 3일 정도 없는데 훌쩍 넘어가는 기분이 든다. 눈을 기다리다가 매화를 기다리다가 겨울과 봄을 동시에 생각하며 조금은 혼란스럽게 산 것 같다. 춥다가 따스했다가 눈이 올듯하다가도 내가 사는 경산에는 매번 섭섭하게 비가 내렸다. 눈 구경 한 번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든 곳에 살면서 눈을 기다리는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겨울이면 눈을 기다리며 산다. 어디에 눈이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내 가슴에도 하얗게 눈이 내렸다. 휴대전화 속에서도 새하얀 눈송이가 펄펄 내려왔다. 하루 손안에 눈을 쥐고 살 수 있었다.
오늘은 삼일절이다. 태극기를 베란다에 내 걸었다. 옆집 어르신이 언제나 먼저 태극기를 걸었는데 오늘은 태극기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가신 걸까? 요즘은 태극기를 다는 하는 집이 드물다. 앞 동만 보아도 태극기를 6가구에서 내다 걸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면 새삼 가슴이 찡해온다. 내 나라가 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가. 나라가 없는 설움을 실제로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면서 얼마나 참혹한지 나라 잃은 설움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애쓴 순국선열에 대한 깊은 애도와 감사함을 생각해 본다.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나는 참으로 행복하다. 당신을 만나 참으로 행복하다. 영원히 내 가슴에 살아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태극기 그리는 숙제가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태극기를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냥 그림 그리듯이 그리는 것이 아니어서 골머리를 써가며 그린 기억이 난다. 연필로 그리고 지우개로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그렸던 태극기다. 나는 태극기를 유달리 좋아한다. 손수건 모양의 태극기를 30년 넘게 갖고 다녔다. 이제는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다. 거창한 애국심도 아니고 특별한 이념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직업군이셨던 아버지 영향이다. 자라온 환경이 언제나 그랬다. 아버지는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이셨다. 얼마나 부하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위해서 사셨는지 어려서부터 보며 자랐다. 그때는 그 모든 일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기도할 때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모두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 나라를 지켜달라고 기도한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강원도 산골에 송동분교가 있었다. 나와 여동생이 한 반에서 공부했다. 교실에 꿩이 놀러 와서 함께 구구단을 외우고 점심시간에는 냇물 가에 앉아서 도시락을 까먹고 도시락 뚜껑으로 냇물을 건져서 먹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떨어진다고 했다. 고무신으로 배를 만들어 미꾸라지를 고무신 배에 태우고 달나라도 가고 북두칠성 별나라에도 다녀왔다. 할아버지 선생님 풍금 소리에 맞춰서 노래도 부르고 ‘혼식 분식에 약한 몸 없다.’라고 운동장에 모여서 노래 부르던 그 아이들이 오늘 문득 그립다.- 202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