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스데반을 끌고 가 공회에 세웁니다. 공회란 직결 처분이 가능한 권력입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가로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행6:13-14) 제사장 그룹이 성전과 율법의 가치를 붙들었던 것은 그것을 통해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기 기득권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거짓 증언을 반박하며 성전은 하나님을 만남이 본질이고 율법은 하나님의 사람 됨이 본질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건물이나 조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전 이전의 제단도 하나님과 만남이 목적입니다. 제사장 무리는 성전을 건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고 대단하게 지어졌으니 하나님께서 크게 역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46년 지어진 헤롯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만남의 기능을 회복하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3:16)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성전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2). 그들이 건물에 묶여 있는 개념을 깨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 주시는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고 성전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구원과 생명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실 때 아브라함이 한 일은 순종입니다(창12:1). 순종의 삶이 만남의 삶입니다. 순종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을 만나는 성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3~4).
가나안에서 하나님을 만난 백성으로 심어지기를 원하신 것이지 땅이 소망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왔지만 발붙일 땅도 얻지 못했고 다만 자손들을 위한 약속을 받았다고 말합니다(5). 약속을 붙들어야 하나님 만나는 것이지 땅이 있다고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병상이나 고난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면 성공한 인생입니다.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하나님을 만남이 없으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성전의 개념은 만남에 있습니다(6).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생명인데 이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목말라 하고 괴로워합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전임을 역사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자기가 인생을 계획하고 꾸려가니 자기하고 맞지 않는 인생을 계획하고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원하기에 결국 헛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걸 사명이라고 합니다. 그 일을 해야 열매를 거두고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내용이 생기지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내용 없는 인생입니다. 헛된 일만 하다 끝이 납니다.
모세는 꽃다운 전성기를 처가살이하면서 헛되게 보냅니다. 그러다 늦은 80세 나이에 하나님을 만나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쓰임 받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내용을 채워주시고 힘도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가치 있게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내용을 하나님만 채울 수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셨는데 계명을 돌판에 새기지 말고 마음 판에 새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은 사람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19:5-6)
두 번째 모델이 요셉인데, 우리는 채색 옷을 입었고 구덩이에 빠졌고 노예가 되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총리가 되었다는 포지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관심이고 하나님의 관심은 요셉의 모든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만드는 것에 있었습니다. 만남을 위해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진 것이고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9-10). 총리가 된 목적은 하나님의 뜻대로 가족을 구원하여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흉년이 온 이유는 그래야 애굽으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11).
요셉은 노예의 위치나 감옥에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자리가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힘을 주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는 것들은 대부분 다 소모품입니다. 돈, 시간, 심지어 고난도 소모품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돼야 합니다.
과정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과정에서 인내와 연단을 배우고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죽음도 끝이 아니고 연속입니다(15-16).
과정에서는 인간이 자기 수준밖에 못 못 보지만 하나님 수준에서 보고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이 기다림입니다. 성경에서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약속과 성취입니다. 약속한 것이 그대로 될 줄로 믿어라. 약속은 곧 현실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말씀이 곧 현실이 됩니다. 믿음(에무나)은 ‘버티다, 견딘다’라는 뜻으로 기다림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우리 삶에 변화의 능력이 됩니다.
스데반이 지금 역사를 몰라서 장황하게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에 대한 오해와 율법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을 통해서 생명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과정과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거룩한 종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