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독자입니까?"
-어안 최상호
대개의 사람들은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발끈하거나,
말하는 이에게 사나운 눈길을 보낼 것이다.
'중독'이라는 단어가 주는 섬뜩한 느낌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살이가 복잡해지면서 중독의 종류도 굉장히 다양해진게 사실이기는 하다.
예전에는 주로 독성물질을 섭취함으로써 나타나는 병적 증상을 일컫는 말로 쓰였는데
마약과 같은 약물중독이 이에 속했다.
여기에 어떤 것을 섭취하지 않으면 정신적·신체적으로 정상적인 상태를 갖지 못하는 경우(알코올이나 니코틴)도 중독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더 위험한 중독도 있다.
어떤 습관이나 사물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정상적 판단이나 생활이 방해를 받는 경우다.
컴퓨터,·쇼핑,·도박(게임) 중독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어디 그 뿐이랴. 그 외에도 숱하게 많은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중독은 가끔 실수를 유발한다.
현충일에 골프 라운딩을 하다가 봉변을 당한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이야기는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폭탄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안타까움을 준다. 재산 증식을 위해 위장전입을 일삼다가 청문회에서 망신살이 뻗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어느 여인이 자기 남편과 함께 대학 동창 부부 모임에 참석했단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골프를 화제로 삼더란다. 처음에는 '좀 하다가 말겠지' 생각했단다.
그런데 웬걸, 모임의 알파도 골프요, 오메가도 골프였더란다.
이 모임이 골프 동호회인지, 대학 동창회인지 분간할 수 없더란다.
그중 한 여인은 거의 매일 남편과 자녀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 필드에 나온다고 자랑하더란다.
식탁 위에 '까불지 마라'는 메모를 남겨놓고….
"그게 무슨 뜻인가요?" 순진한 후배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까스(가스) 밸브를 잘 잠가라. 불을 조심하라. 지갑을 잘 간수해라. 마누라한테 휴대전화 자주 하지 마라. 라면은 식탁 위에 있으니 배고프면 아이들이랑 끓여먹어라. 이 메시지의 첫 글자잖아요."
참으로 황당한 생각이 들더란다.
건강과 친교를 위한 운동과 모임은 환영할 일이지 탓할 게 아니다.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므로 잘 관리해야 마땅하다. 건강을 누리고자 하는 취미생활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항상 지나침에 있다.
어느 한쪽에 몰입함으로써 다른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면, 그때는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일이 아닐까.
중독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인간의 가장 깊숙한 욕망을 자극한다.
그래서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더러는 고통의 감정을 은폐하기 위해 중독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컴퓨터에 중독된 자녀, 쇼핑에 중독된 아내, 알코올에 중독된 남편….
우리 사회나 가정의 풍경화가 이렇게 그려진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특히 도박·폭력·알코올 중독은 자녀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결국 중독은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개인을 몰락으로 이끈다.
우리나라 알코올 중독자가 221만명이라고 한다. 아마도 나같은 이(이틀만 지나면 술 생각이 나는)도 이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나 싶지만 실은 얼마나 끔찍한 통계인가.
술집 주인은 술꾼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무도 술꾼을 사위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알코올에 중독된 사람은 여섯 가지를 잃는다고 했다. 그것은 건강·재물·지혜·사랑·신용·평화다.
중독은 한 사람의 인생은 물론 한 가족을 막다른 절벽으로 몰아가서 결국은 파멸과 절망만 남긴다 했다.
그러나 내가 술을 마시는 것처럼 중독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얼마나 외로운가. 그 외로움은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게 되고, 시를 읽게 되고, 시를 쓰게 되고 친구를 찾게 되고 술을 마시게 된다. 외로운 영혼에게 잠시의 위안을 주려는 행위가 중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꿈은 아득할 때도 있다.
지금 나는 몇 가지 중독을 지니고 산다.
남들 다 자는 시각에 일어나 담배부터 찾는다.
컴퓨터를 열고 시를 읽거나 글을 쓴다.
머리가 흐릿해지면 프리셀게임을 즐긴다.
무료할 때면 도서대여점으로 가서 무협지를 빌려온다.
어둠살이 내릴 때까지 허덧한 뭔가가 남아있으면 술친구를 찾는다.
적다가 보니 건강을 위해서 반복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느낀다. 결국 내 중독의 끝은 나락인가...
가을 아침 공기가 무척 서느럽다.
혹여 당신도 중독입니까?
첫댓글 중독의 끝은 나락이 아니라 중독으로 우려낸 詩가 될 것같습니다. 선생님~건강이 화내기 전에 부디 잘챙기시길요.ㅎㅎ뭔가에 중독되고픈 가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중독의 결과로 시가 얻어질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이겠네요. 아직도 비가 내리는 봉화의 아침이네요. ㅎㅎ
안녕하신지요?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저도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느낀게 많습니다. 현실에서 생활이 빡빡하니 벅차기만 한데 컴속에다 버린 시간들, 그로인해 수면 장애에 건강에 해가됨을 인식하고 제 처지에 맞게 현실에 충실하고 나머지 남은 시간만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하나를 읽는것도 중요하지만 내 가족의 생계가 달린 건강이 더 중요하고 돈벌이가 더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