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건
김상규
새해 해맞이를 갔다 온 지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다 싶은데 벌써 5월의 하순에 접어들고 있다. 세월이 나이 숫자만큼이나 빠르게 간다더니만 실감이 난다. 앞뒤 가릴 겨를 없이 내달은 삶이 어느새 고희를 넘어섰다. 어찌 보면 많이 살았다는 기분이 들다가도 한 편으론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지금이야말로 삶의 참맛을 알아차리며 본성을 찾을 나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세시대를 맞아 태어나서부터 서른 살까지는 성장하며 배우고 익혀 삶의 기초 지식을 쌓고 다지는 시기라면, 서른 살에서 예순 살까지는 가정을 이루며 부와 명예를 좇아 삶을 꽃피우는 기간이고, 예순 살에서 백 세까지는 살면서 잘못한 일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고 빈약한 부분을 보완하는 등 인생을 마무리하는 기간이 아닐까 한다.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거나 원망하고 미워한 일이 많았으리라.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떠넘기며 책임을 뒤집어씌운 일은 없었는지, 남의 공적을 시기하며 방해하거나 가로챈 일은 없었는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며 살피고 잘못이 있었다면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여 정리해야 할 나이가 예순에서 백 세라 생각된다.
무슨 일이든 그때그때 바로 마무리 짓는 것이 최선이지만 사소한 잘못이 바쁜 생업에 묻혀 지나쳐버리면 업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한 생각으로 즉시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가벼운 일을 순간의 방심으로 업장이 되어 삶의 무게를 짓누른다면 얼마나 고단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삶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는 영혼을 닦아 청결하게 밝히고 작은 업장 하나까지 소멸시켜 인생을 온전하게 마무리하는 기간이 아닐까 한다.
가끔 ‘칠순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잘했다고 생각되는 가장 값진 일이 무엇일까? 지금부터 가장 소중하게 가꾸어 가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잡다한 생각들이 어지럽게 나타났다가 사라지지만 이거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가족을 건사한 일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곁가지를 뻗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 삶이 내 인생이었던 것 같다. 가족 건사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의무적으로 주어지는 공통적인 숙명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육십 살까지는 나이를 나 스스로 먹은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먹히고 있었다는 표현이 솔직할 것 같다. 그 말을 뒤집으면 내 인생을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세월에 끌리어 살아왔다는 꼴이 된다. 나이 칠순이 넘어서 바라본 내 모습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내 삶을 내가 가꾸어 가야 하겠다며 가장 소중하게 가꾸어 가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은 변한다더니 삶의 가치관과 행복의 기준도 나이를 먹을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젊었을 때는 육체적인 힘에 기대어 동적인 삶을 살았으나 예순을 지나 칠순이 넘어서고부터는 모두가 정신 위주의 정적인 면으로 삶의 무게가 옮겨갔다. 나이를 먹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은 나이를 먹을수록 생각이 깊어지고 지식보다는 지혜가 밝아진다는 뜻일 거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사안을 명백하게 분간할 줄 아는 안목도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생각과 습관도 수많은 수련을 통해야만 자기 것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이지만 영혼을 맑게 밝히는 것이 내 생의 마지막 과제처럼 여겨진다.
백세시대의 마지막 관문에 들어선 지도 십 년이 넘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제일 권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답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종교”를 가지라고 권하는 일이다. 무슨 종교라도 좋으니 자기 적성에 맞는 한 가지를 꼭 가지도록 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절실해지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 젊었을 때는 그 가치를 알 수 없었으나 늙을수록 마음의 위안처가 되는 것이 종교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노후의 삶을 여유롭고 윤택하게 하는 데는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으리라.
무슨 일이든 즉시 마음에 흡족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더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을 것 같아 뛰어들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느끼고 뛰쳐나오는 일이 허다하다. 꾸준히 노력하며 기다릴 줄 모르는 것이 젊음인지도 모른다. 종교라고 다를 리 없다. 처음 아내를 따라 심인당에 갔을 땐 지겹고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반가부좌 자세로 금강지권을 하고 육자진언을 염송하기란 중노동보다도 더 힘겨웠다. 일요일마다 심공하느라 친구들이랑 즐기지도 못하고 한나절 동안 붙잡혀있는 것이 그렇게 고역스러울 수가 없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잠재우느라 긴 세월 동안 갈등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오랜 시간을 견뎌낸 것이 나이를 더할수록 굳은 신념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보람으로 돌아왔다. 기복 신앙으로 출발한 마음을 자성 찾는 방향으로 돌리는데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내가 나를 관망하고 내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기까지 투자한 세월이 20년도 넘었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행복의 전부라고 믿었는데 일흔이 가까워져서야 아니란 걸 깨달았다.
살아오면서 진 빚을 다 갚고 가야 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욕심으로 더럽혀진 영혼을 힘이 남아있을 때 닦아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