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8 ,날씨 -푹푹찜...
제1차 성주역사문화기행답사 번개를 가면서 임진란 북천전적지를 방문했다.
점촌버스터미널에서 만나서 동행한 분은 (사)예성문화연구회 회장이며 충주와 충북향토사연구회에서 대단한 활동을 하고계시는 이상기님이시다.상주임란북천전적지는 역사를 조금 아시는 분은 간판만 봐도 방문하고픈 곳 중의 하나인 곳이리라...이배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회원들은 더욱 그렇다.
앗~!침천정을 제일 먼저 관정官亭으로 건립한 분이 '정곤수'님이닷~
'백곡 정곤수'님은 성주출신으로서 한강 정구 선생의 형인데(양자를 갔고 경기도 일산에서 세거하셨다. 항렬이 안 맞아서 종손분께 확인한 결과를 최근에 까페등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답사는 어딜가서 아는 분을 만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고 힘이난다.ㅎ
백곡 정곤수는 임란때 선조를 호종하여 평양으로 피난하였고,청병진주사(請兵陳奏使)로 중국에 파견되었다. 1593년 원병을 얻어온 공로로 숭정대부에 오르고 판돈녕부사가 되었다.이즈음 영위사(迎慰使)·접반사(接伴使)를 맡아 명나라 장수와의 교섭을 담당하였다
침천정은 임진왜란때 소실 된 것을 1614년 상주목사 한술이 중건하였고 그 뒤 몇번의 중수가 이루어 졌다.
충주와 충북의 향토사학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인 이상기님께 충주에 임란탄금대전적기념관을 건립해야 되는데 여기를 참고 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침천정 상량문
상주 시내를 굽어보면 바로앞에 북천이 있다.임진년에 이일과 상주의 의병과 관군들이 북천에 진을 쳤을 때 저쪽에서 쳐들어오는 왜적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드라마 징비록과 자료에서도 보여주었듯이 순변사 이일은 ...그리고 관군과 의병들은 보초를 제대로 활용하질 못했다.그리고 기습에 휘말려서 화살도 제대로 못쏘고 칼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질 못했으리니..
아~! 가슴이 아프다~!
아~!눈물과 피로써 맹세하노니..나라의 치욕을 씻어 버리자~!유비무환하자~!
아~!민족이여...겨례여...일치단결하여 전란에 대비하자~!
이 비각에는 임진왜란 때 이 곳 북천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3충신 (종사관 윤섬,박호,이경류)과 2의사 (의병장 김준신,김일)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충신의사단비' 복재본과 상주목판관으로 봉직중 순국한 '권길'의 충절을 새겨 둔 '판관권길사의비'가 보호되고 있다.
충신의사단비
검간 조정의 임진왜란 관련기록
조정(趙精,1555~1636)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풍양,자는 안중,호는 검간(黔澗)이다.학봉 김성일의 문이니었고,한강 정구(鄭逑)와 교류하였으며,경술과 문장에 뛰어낫다.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상주의 속수서원에 봉향되었다.
임진왜란때에는 의병을 일으켜 국토수호에 앞장섰고 이후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의 의병활동과 왜군들의 갖가지 만행을 구체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기록한 '검간문집'과 '진사록','임란일기','남행록'등의 여러 저작물을 남겼고 임진왜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김준신의사 제단비'와 '충신 의사단 비'
계촌 김일 의병장과 당시 상주목 호장이로 순국한 박걸
임진왜란때의 상주전투 진행상황과 임진왜란 무기
첫댓글 덕분에 좋은 구경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