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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쪽 좌에서 우로 야트막하게 펼쳐진 능선이 백마고지. 백마고지 우측 뒷편에 뾰족하게 솟은 산이 고암산, 일명 김일성 고지)
(멀리 김일성 고지가 보인다)
( 김일성 고지)
(흰색 건물 뒷쪽이 궁예 도성이다)
(김일성 고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진행요원이자 동네 주민)
단기필마로 DMZ으로 뛰어드는 나를 위해 클럽에서 성대한 출정식을 베풀었다.
나는 큰 대회든 작은 대회든 가리지 않고 크든 조촐하든 전날 밤 출정식을 갖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고 있다.
DMZ에서 반드시 살아 돌아오라는 회원들의 시끌벅적한 격려를 받고 수원행 열차를 타기 위해 식당을 빠져 나왔다.
마침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마음은 심란하기 그지 없다.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술김에 가수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을 흥얼거리며 논산역으로 갔다.
대회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새벽 5시에 수원역에서 타야 하므로 전날 밤에 이렇게 올라가는 것이다.
모처럼 나 홀로 떠나는 호젓한 여행이지만 비 때문에 짜증스럽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진짜 ‘나 홀로 여행’의 대가는 내가 몇 달 전에도 언급한 ’바람의 딸 한비야‘일 것이다.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대단한 분이시다.
58개띠이신 한비야 선생은 여자 홀몸으로 7년간 세계 오지만 골라 댕기며 지구를 무려 세 바퀴 반을 돌았다는 거다.
무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나는 세계여행을 맘껏 하고 다녔다.
한비야 선생의 책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최근 몇 달 동안 한비야 누님이 쓴 책을 죄다 읽어버렸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1~4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그건 사랑이었네’ 등이다.
박봉에 시달리면서 책값도 설찮이 들었다.
내가 젊은 나이에 비야 누님의 책을 접했더라면 나는 지금과는 매우 달라진 인생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책을 통하여 그녀의 도전 정신, 진취적 기상, 불굴의 용기를 배울 수 있다.
지금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한비야 누님의 책이 필독서라고 들었다.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라면 필히 자녀들에게 권해 보라고 내가 일전에도 강조했건만 누구 하나 내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는 거 같아 속상하다.
그렇다고 내가 비야 누님이랑 전화 한 통 주고받은 적 없고 그분한테 커피 한 잔 얻어 마신 적 없다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힌다.
그런데 나는 두 눈 부릅뜨고 그녀가 늦은 나이라도 언제 괜찮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지 지켜보는 중이다.
수원에 밤늦게 도착했지만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몸은 벌써 비에 젖었다.
겨우 수원역 근처 찜질방에 여장을 풀고 새벽 한 시쯤 잠을 청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04시에 기상하여 서둘러 수원역으로 달려 갔다.
비는 미친 듯이 퍼붓고 있다.
그런데 나는 셔틀버스를 타기 전부터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정확한 버스 탑승지점을 인지하지 않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대략 ‘수원역 근처 버스승강장에 있겠지’하고 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셔틀버스가 보이지 않는다.
3~40분간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다급하게 뛰어다니며 애타게 버스를 찾았다.
그래도 이놈의 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 복장을 유심히 살펴보아도 달림이 복장을 한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분명 이곳이 아니다.
이제 시간도 15분밖에 여유가 없다.
결단을 내릴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결국 버스를 못 타면 택시로라도 철원까지 가느냐,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고 처량하게 발길을 돌릴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이제 5시 10분 전이다.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 봤다.
이 근처는 분명 위치가 아니라고 결론 짓고 도로 외곽 쪽으로 나가 보니 멀리서 버스로 보이는 차량 두 대가 비상깜빡이를 켜놓고 있는 게 보인다.
뒤돌아 볼 것도 없이 정신 없이 달려가 확인해 보니 정말 셔틀버스였다.
물에 빠진 새앙쥐 같은 몰골로 천신만고 끝에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출발했지만 퍼붓는 비는 그칠 줄 모른다.
제발 철원 도착하면 비가 그치기만을 바랄 뿐이고.
철원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대회장 근처 식당에서 짬뽕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오늘도 토끼 여럿을 만났다.
산속사랑. 바우덕이, 또....
사진을 찍으면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사진 올리면 맞아 죽는다”라고 한다.
또 어떤 토끼는 끝내 사진촬영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같은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덕유산 행사를 다분히 의식한 것이다.
(그날 그시간 덕유산에서 전국63토끼 단합대회 있었음)
그렇다. 난 맞아 죽을 각오로 사진을 올리고 글도 올리고 있다.
‘맞아 죽으나 굶어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란 말도 있지 않은가.
이번 철원 대회는 국내 마스터스 대회 중에서 상금이 가장 크다.
풀코스 1위 상금 액수가 무려 $ 1500이니 우리 돈으로 약 180만 원이다.
그러니 무림의 고수들이 총 출동하다시피 한 것이다.
가히 별들의 전쟁이라 할 만하다.
나에게는 꿈이라기보다는 소망하는 것이 있다.
모두 달리기에 관한 소망이다.
첫째 소망은 달리기 잘 하는 며느리 얻는 것이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면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짜고짜 달리기 잘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외모. 학벌. 가정사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달리기만 잘한다면 그 자리서 도장 꾹 찍어줄 참이다.
반대로 달리기는 쑥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절대로 도장 찍어주지 않을 작정이다.
잘달리는 며느리가 대회 나가서 입상하여 시아버지인 나에게 와서 “아버님, 막걸리 사 드세요”라고 하면서 용돈을 준다면 그 돈으로 사 먹는 막걸리 맛은 참으로 세상 그 어떤 막걸리보다 맛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 아닌가.
둘째 소망은 전 세계 마라토너들에게 꿈의 대회인 보스턴 대회를 비롯하여 해외 마라톤대회를 나가는 것이다.
마라톤에 입문하여 세계에 무수한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두 달에 한 번씩만 해외 마라톤 나가면 평생 다녀도 다 못 다닐 판이다.
그래서 요즘 열심히 로또를 구입하는 중이다.
만약 내가 갑자기 뻔질나게 해외를 들락거리며 마라톤 투어에 나선다면 분명 나에게 돈벼락이 떨어진 걸로 보면 된다.
마지막 셋째 소망은,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 생의 최후도 달리다가 맞았으면 좋겠다.
물론 한국 남자 평균 수명까지는 살다가.......
내가 좋아하는 달리기 하다가 쓰러져 간단명료하게 생을 마치는 것도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9988234’ 아니 한술 더 떠서 ‘9988복상사’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달리다 삶을 끝내고 싶다.
엉뚱한 얘기를 너무 많이 늘어놓은 것 같다.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강원도는 대부분이 산간지역인데, 유독 철원은 평야지대가 많고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곳이여서 궁예가 이곳 철원에서 후고구려를 일으켰다.
그러니까 궁예와 철원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14km를 달리니 유명한 철원 노동당사가 나타난다.
내가 한 번쯤 구경하고 싶었고 가끔 TV에서나 보던 철원 노동당사인 것이다.
철원은 해방 이후 6.25 이전까지는 북측 관할이었다.
이곳 철원 노동당사에서 공산당들이 철원.평강.김화.포천 일대를 관장하며 양민수탈과 애국인사들을 체포.고문.학살했다고 한다.
철원처럼 6.25 이전까지 북측 관할이었다가 휴전 이후 남측에 속한 지역은 복 받은 것이다.
반면 개성처럼 6.25 이전에는 남측 지역이었다가 6.25가 터지면서 북한 수중으로 떨어진 지역의 북조선 인민들은 지금 저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노동당사 앞에서 잠시 레이스를 멈추고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MBC 카메라 기자하고 젊고 예쁜 여자 리포터가 나한테 달려든다.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팔자에도 없는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다.
정규 방송은 아니고 인터넷에 ‘강원365’를 치면 나온다고 한다.
‘노동당사 처음 오셨느냐’ ‘보니까 느낌이 어떠냐’ ‘어디서 왔느냐’ 등등의 시시콜콜한 질문을 계속 해댄다.
이렇게 한 10분가량 인터뷰를 하고 나서 헤어지려는 순간 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인터뷰를 했으면 출연료를 줘야 할 것 아니냐"라고.
그랬더니 그녀가 쌀쌀맞게 ‘없다’고 말하고는 도망치듯 가버린다.
방금 전까지 온갖 아양을 떨면서 인터뷰 할 때와 태도가 전혀 다르다.
21km쯤 가니 광활한 철원평야가 펼쳐지는 분단의 상징 DMZ 지역에 들어섰다.
거기서 잠깐 레이스를 멈추고 주로 진행 요원이자 동네 주민인 아저씨와 담소를 나누었다.
그 양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먼 곳을 가리키며 “저기 제일 앞쪽 야트막하게 뻗은 능선이 백마고지입니다”
“그 백마고지 우측으로 뒤쪽에 뾰족하게 솟은 산이 고암산, 일명 김일성 고지입니다”.
백마고지는 6.25 최대의 격전지 중의 하나로 꼽힌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총 9일간 국군과 중공군이 고지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중공군 1만 명 이상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고, 국군도 3500명이 전사한 처절했던 전투였다.
김일성이 백마고지를 뺏기고 나서 고암산에서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였다고 해서 김일성 고지라고 한다.
아저씨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저기 보이는 흰색 건물 뒷쪽이 궁예 도성입니다”
이 대목에서 아저씨와 문답이 오갔다.
헐레벌떡: “그럼 궁예 도성 학술조사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저씨: “궁예 도성이 DMZ 안에 있어 남측 일방이 못합니다. 남북 양 측이 동의해야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정치적인 문제인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 잠깐 기초조사만 했다고 합니다”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북한에 쌀 주고 돈 주고 관계가 좋았던 10년 동안 도대체 당국자들은 제대로 학술조사도 안 하고 문화재 발굴도 안 하고 뭐 했단 말인가.
그 아저씨가 계속 궁예 얘기를 들려준다.
“궁예가 포천에서부터 왕건 군사에게 쫓기기 시작하여 저기 보이는 산에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궁예는 분명히 후삼국의 주인이 될 수가 있었는데 그놈의 더러운 성격 때문에 부하에게 제거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궁예의 탄식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대회를 마치고 오후 3시에 다시 셔틀버스를 타고 수원으로 향하던 중 놀라운 일이 생겼다.
수원 도착 한 시간쯤 전에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서 ‘쉬~~’를 하는데 옆사람이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다.
알고 보니 내가 전에 가끔 나가던 우리 동네 산악회원이시다.
거기서 결국 전체 산악회원들과 조우했다.
다들 너무 놀라고 반가워 뒤로 넘어지려고 한다.
춘천 검봉산 산행하고 오는 중이란다.
그래서 얼른 셔틀버스에서 그쪽 버스로 갈아타고 편안하게 논산까지 왔다.
나는 철원 갔다 온 다음날부터 감기몸살을 앓아 지금까지 몸져 누워 있다.
수면 부족에다가 비에 시달리고 달리기에 시달리고 술에 시달렸으니 몸이 망가지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일이다.
나에게는 지금 휴식이 필요하다.
당분간 절필하고 달리기도 접고 술도 쉴 작정이다.
이런 나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안 되는 것이 또한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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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벌떡아 고생많았다. 그리고 축하한다. ^^* 막걸리를 병채 벌떡 벌떡 마셔대니 벌떡인가 ? ㅋㅋㅋㅋㅋㅋ
이참에 마라톤전문기행 작가로 데뷔하시오
힘차고 막력있는글 뱃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거침없는 글 잘 잃고 갑니다
다음에는 어느곳을 구경시켜 줄라나 기대됩니다 추석 잘보네시길
올해도 난 외로워 달 보면서 한잔 아! 그리운 어머님 ! 당싱은 어스라이 저 별건너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