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을 떠난다.
한동안 짓누르던 방랑벽이 근질거려 한자리에 가만있지를 못하고
조금은 불편해진 무릎의 통사정을 억지로 모른 채 하고는
들썩이던 엉덩이가 기어이 일을 내고 만다.
슬그머니 제쳐두던 경계선을 찾아 새벽길을 다시 나선 것이다.
들판엔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린다. 아마 18호 태풍 차바의 영향이리라.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듯 4년 내내 태풍이 한반도를 상륙하지 않아
녹조가 더 기승을 부리고 다가올 봄 가뭄이 더 걱정이라고 지레 입방정을 떨더니
대한해협으로 조용히 빠져 나갈 것 같던 차바가 기어이 일을 내고 만다.
지진으로 기진맥진한 땅덩이를 다부지게 스쳐지나가며 강풍과 함께 물세례를 안기고 만 것이다.
아무리 뻔한 길이라도 자칫 한눈을 팔다보며 엉뚱한 길에서 헤매기 마련이라
연무 안심시장을 지나며 혹시나 하여 요깃거리로 가래떡을 챙긴다.
아무리 평지를 걷는 손쉬운(?) 길이라도 도시락 준비 없이 나선 길이 아니던가?
얼굴 보기 힘든 한적한 길에서
입맛을 다시는 맛집을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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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따라오며 바로 삼남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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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왕릉을 바라보며 왕릉로 48번길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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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왕릉>
2년 반 전 봄에 백제의 얼을 찾는다고 신작로를 따라 혼자서 견훤묘(?)를 둘러본 길을
이번에는 동행이 있어 샛길로 꼬불꼬불 삼남길을 따라 견훤왕릉(?)을 둘러보니
가을은 저만큼에서 저절로 익어가면서 자꾸만 엉뚱한 길로 헛걸음질 하며 진을 빠지게 한다.
아무리 좋은 길안내로 GPS에게 길을 물어도 지도를 제대로 읽어야 하는 것을 ~~~
구름 끼고 안개 자욱한 바다 한가운데서도 해도를 펼치고 어림잡아 잘도 길을 찾더니만
벌써 가는 세월 따라 녹슬고 말았는가?
하루해가 가을인데도 자꾸만 길어지고 있다.
배꼽시계가 울다 지친지도 오래인데 어디에도 밥집 그림자는 얼씬도 않고
평소에는 어림도 없을 우사 곁을 무심히 지나 적당히 쉴 곳을 찾아보지만
가을 뙤약볕만 요란스레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을 뿐 어디 뙤약볕을 피할 곳이 보이지 않는데
발바닥은 빨리 찾으라고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하여, 지친 다리를 억지로 그늘진 득안대로 아래로 내던지고 가래떡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래도 좋지 않은가? 누구의 눈치를 살필 것도 없으니~~~
그렇게 크지도 않는 저수지(금옥제)에 젊은 낚시꾼 한사람이 세월을 낚으려 차비를 한다.
무슨 사연이야 분명 있겠지~~~
못둑을 지나 샛길을 찾는데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아선지 잡풀로 가득하다.
그 덕분에 떨어진 밤송이를 주머니 가득 채울 수 있는 작은 행복감에
10여분의 시간을 머뭇거림 없이 투자를 해버린다.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세월을 낚는 낚시꾼마냥~~~
전주를 기점으로 하는 아름다운순례길은
구간간의 거리가 당일치기로는 다소 벅찬 듯 하여 1코스를 돌다가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삼남길 22코스와 여산숲정이 순례성지에서 잠시 겹치고 있다.
아무리 평지라지만 기웃기웃 들리다보며 20Km나 25Km나 벅차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멀리서 왔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정말 낭패 보기 딱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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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숲정이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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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file/cafe/23425B3E57F6CAEE17)
<자 다 왔으니 쉬었다가세나 - 여산성당을 바라보며>
하필이면 고집불통 영감이 마침 그때 나타나 빗장을 아주 단단히 걸어 잠근다고
척화비를 세우고 서원을 철폐하며 천주교를 박해하면서 구박받은 폐단을 바꾸자고 했으나
지금에 와서 돌아보며 역시 10년 앞을 내다보지 못한 노망난 늙은이의 투정으로 들리니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인가보다.
죽은 이에게 고개 숙이지 말고 산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인간이 되기가 그렇게도 힘이 드는가?
툭하면 현충원을 찾아 딴에는 꼴값(?) 떤다고
죽은 이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너스레를 치지 말고
진정으로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며 좋으련만~~~
바로 거기에 답이 나와 있는데 白衣從軍 이란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