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체스터 챠핀 밀 명상수련원 집중수행(Sesshin) 체험기
글 | 홍성미
새벽 4시. 기상을 알리는 종소리가 칠흑같은 어둠의 벽을 뚫고 챠핀 밀(Chapin Mill) 명상 센터의 아침을 파고 든다. 조용히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발자국소리가 밤새 무겁게 내려앉은 새벽 공기를 휘젓고, 어느 새 수련원 안뜰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직 어둠의 옷을 입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실루엣처럼 어둠 속에 또 다른 어둠의 패턴을 만들며, 어느 것이 사람인지 또 어느 것이 어둠인지 그저 한 덩어리의 큰 어둠처럼 느껴진다. 제법 쌀쌀한 새벽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마룻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머리까지 도달할 때면,챠핀 밀(Chapin Mill) 명상 수련원의 수행자들은 무념무상의 마음이 되어 걷기 명상 삼매에 빠져든다. 수행과 일상을 둘로 보지 않는 일본 선불교의 전통에 따라 걷기 명상의 속도는 일상에서의 걸음걸이 속도를 지향한다. 하지만 실재로는 보통걸음보다 조금 빠른 듯 느껴졌다. 15분정도의 아침 걷기 명상이 끝나면 수행자들은 곧바로 선방으로 향하고, 45분간의 아침 좌선으로 하루의 수행을 시작한다. 좌선을 할 때도 수행자들은 눈을 감지 않고, 약45도 아래의 바닥을 조용히 응시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눈을 감고 생활하지 않기 때문에,좌선 수행 중에도 눈을 감지 않는 것이다.
로체스터 젠 센터 산하 챠핀 밀(Chapin Mill) 명상 수련원
챠핀 밀 명상 수련원(Chapin Mill Retreat Center)은 로체스터 젠 센터(Rochester Zen Center) 산하의 명상 수련원이다. 로체스터 젠 센터(Rochester Zen Center)에서 차로 약30분 거리에 위치한 챠핀 밀 명상 수련원은 로체스터 젠 센터(Rochester Zen Center)의 창립 회원 중 한 명이었던 랄프 챠핀(Ralph Chapin)이 자신의 소유지였던 약135 에이커의 땅을 센터에 기증하며 본격적인 건립 사업이 시작되었다. 랄프 챠핀(Ralph Chapin)은 뉴욕 바타비아 (Batavia)에 있는 재조회사Chapin Manufacturing의 회장이었고, Chapin Manufacturing은 1884년 그의 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였다.
신자들의 작은 도움이 모여 센터 설립을 위한 기금이 마련되었고, 지금의 챠핀 밀 명상 수련원(Chapin Mill Retreat Center)은 수 많은 회원들의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완성되었다. 챠핀 밀 명상 수련원(Chapin Mill Retreat Center)은 처음부터 선 수행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고, 미국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지만, 구조나 색감면에서 일본의 전통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수십 개의 창문이 있는 선방(Zendo)은 약 50명 정도의 수행자들이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채광과 환기를 통해 이상적인 수행 환경을 제공하고 있었다. 랄프 챠핀(Ralph Chapin)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의 딸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챠핀 밀 명상 수련원의 후원자로서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선 수행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엄격함이다
티벳불교나 위빠사나, 서양 명상 수련센터 등에 비해 일본 선 센터는 규율이 엄격한 수행법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챠핀 밀 명상 수련원(Chapin Mill Retreat Center)에 도착하자 필자는 게시판을 찬찬히 살피며 많은 것을 숙지해야 했다. 게시판에는 아침 4시부터 시작해 보통 9시가 넘어서 끝나는 하루의 시간대별 수행 스케줄과 더불어 수련기간 동안 자신이 사용할 방 번호, 선방에서 명상할 때 앉는 자리 번호, 컵 사용 등에 필요한 개인 번호, 인터뷰를 위한 그룹 번호, 심지어 몇 시에 몇 번 샤워실에서 몇 분 동안 샤워을 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이러한 엄격한 규율은 식사시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좌선을 마치고 수행 참가자들은 한 줄로 서서 함께 식당으로 이동을 한다. 모두가 자리에 앉고, 각자의 음식을 가져오고, 공양 기도를 다 함께 합송하고, 배고픈 영혼과 목마른 영혼에게 작은 음식과 물을 공양으로 올리고, 그 후 식사를 마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모두 합해서 약 15분이었다.
필자가 참가했던 명상 수련은 세신(Sesshin)이라는 일본 선 불교의 집중 수행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묵언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이 수련은 7일의 수련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말을 하면 안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정면으로 쳐다봐도 안된다. 좌선과 공안수행으로 짜여진 세신(Sesshin)은 오전과 오후 예불과 더불어 스님의 법문 등 사찰에서의 수행 일과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수행 참가자들은 하루에 약 열 두 번 정도의 좌선과 걷기 명상, 그리고 한 번 내지 두 번 스님과의 독대를 반복적으로 한다. 수행 참가자들은 자신이 속한 독대 그룹의 번호가 불려지면, 좌선을 하다 말고 일어나, 선방 마루 바닥이 진동할 정도로 스님이 계신 독대 장소까지 전력질주 해야 한다. 일본 선 수행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필자는 숨 쉴 틈도 없이 꽉 짜여진 스케줄과 규율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일본 산보교단의 수행법
로체스터 젠 센터 산하 챠핀 밀 명상 수련원 역시 일본 산보교단의 수행법을 따르고 있었다. 공안 수행(Koans)을 중시하는 임제종과 묵조선(Shikantaza, Silent Illumination) 수행을 강조하는 조동종의 수행법을 합친 일본 산보교단의 수행법은 스승과의 독대를 통한 공안 수행과 집중적인 좌선(Zazzen)수행을 통해 견성(kensho, enlightenment)에 이르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한다. 무문관(The Gateless Gate), 벽암록(The Blue Cliff Record), 종용록(The Book of Equanimity), 그리고 일본 선사들의 공안이 담겨있는 The Record of Transmitting the Light는 산보교단 공안수행의 교과서처럼 이용되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온 Sensei Amala Wrightson가 이번 Sesshin을 맡았다. Sensei 아말라(Amala)는 로체스터 선원(Rochester Zen Center)의 주지 로시 코헤데( Roshi Kjolhede)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5명의 공식적인 제자 중 한 명으로 현재 뉴질랜드Auckland Zen Center를 운영하고 있었다. 법문(teisho)을 통해 Sensei 아말라(Amala)는 일본 선승의 책보다 대만 불교의 선지식이자 법고산 재단을 설립한 성엄스님의 가르침과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가르침을 많이 인용했다. 수련기간 내내 참가자들은 독대(dokusan)를 통해Sensei 아말라(Amala)와 직접 만날 수 있었고, Sensei 아말라(Amala)는 각 개인에 맞는 공안수행을 지도했다. 독대 경험이 적었던 필자였지만 Sensei 아말라(Amala)와의 독대는 수행에 도움이 되었다. 오랜 좌선과 묵언 수행 중 유일하게 질문을 하거나 수행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독대 시간은 크던 작던 무언가를 비워냄으로서 그 다음 수행의 효율성을 높여 주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모든 수행 참가자들은 세신(Sesshin) 기간 내내 밤색 계열의 법복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아침과 오후 하루 두 번 예불을 드린다. 다양한 타악기가 등장하는 예불은 마치 하나의 작은 공연 같았다. 예불의 시작을 알리는 법고가 울리면, 숙련된 수행자가 염불에 맞춰 커다란 명상 벨과 목탁 모양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타악기를 연주했다. 그 가운데로 Sensei 아말라(Amala)는 향과 차를 부처님께 올리고, 절 삼배를 드렸다. 총 46명의 참가자 중 3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양 불자였던, 세신(Sesshin)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영어와 일본어로 된 염불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짙은 밤색의 가사를 입고, 진지한 모습으로 염불을 올리고 있는 서양 불자들의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염불 소리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같은 힘이 있었고, 홀연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필자는 마치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그들의 모습과 중세 수도사들의 모습이 닮았다는 생각과 함께 염불 소리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교차하며 필자의 귀에 울려 퍼졌다. 이들에게 불교란 무엇일까? 불교의 무엇이 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이들이 보고 있는 불교는 어떤 모습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들이 마음속을 교차했다.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이어지는 집중적인 좌선 수행은 많은 사람들을 졸음에 빠지게 했다. 원하는 사람들은 좌선 중 죽비를 맞을 수 있다. 이 때 죽비는 수행자의 정신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죽비의 위협적인 소리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좌선을 할 때 수행자는 움직여선 안된다. 입승으로 지정된 사람들은 수행자들을 관찰하며, 가끔씩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를 주기도 했다. 걷기 명상을 할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쉬는 시간 산책을 할 때도, 눈을 항상 아래로 두어야 하고, 스님이 법문을 할 때도 법문에 귀를 기울일 뿐, 아무도 스님을 바라보지 않는다. 나른한 오후 잔잔히 울려 퍼지는 스님의 법문은 많은 사람들을 졸음에 빠져 들게 했지만, 아무도 그 방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필자는 이 모든 형식과 규율들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명상 수련은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세신(Sesshin)에 참가한 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을 때, 필자는 사람들은 왜 계속해서 명상 수련에 참가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교를 하고 있는 필자 자신을 불현듯 발견했다. 필자는 과거 다른 명상 수련의 경험들과 현재의 세신(Sesshin) 수련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무언의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걷기 명상을 하면서도, 필자는 왜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걷는지 받아들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걸음 속도에 맞추는 대신 그들이 필자의 걸음 속도에 맞춰 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또한 스님이 법문을 할 때도 필자는 왜 스님의 얼굴을 쳐다보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필자의 오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작은 발견은 순식간에 필자의 우주를 180도 바꿔 놓았다. 15분만에 식사를 끝내야 하는 것도, 마룻바닥을 박차고 독대를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것도, 움직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모니터의 지적도, 죽비의 위협적인 소리도, 스님의 법문 시간에 졸음에 빠지는 사람들도, 나른한 오후 마치 잔잔한 물결같은 스님의 법문 소리도, 스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항상 아래도 두어야 하는 것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 모든 것은 단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나의 마음이 만들어 낸 불만과 불평의 소리들이었다. 비교할 수 있는 과거가 없었다면 아마 불만과 불평도 없었을 것이다. 난 세신(Sesshin) 수련이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경험하고 있고, 온전히 그곳에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 생각이 바뀌자 갑자기 평화가 밀려왔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필자의 마음을 통과했고, 마음에는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명상 수련은 끊임없이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매 끼니를 통해 우리가 육체의 허기를 달래듯, 사람들은 각자에게 맞는 명상 수행을 통해 하루 동안 쌓였던 마음의 얼룩들을 닦아내야 한다. 집중적인 명상 수련은 마치 사람들이 온천에 들러 묵은 때와 피로를 씻어내 듯, 그동안 우리도 모르게 쌓여 있던 마음의 때와 얼룩을 발견하고 닦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준다. 스님의 모든 법문과 걷기 명상, 좌선 수행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필자의 몸과 마음속으로 쏘-옥 쏘-옥 스며들었다. 필자는 왜 사람들이 계속해서 명상 수련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명상 수련과 같은 소중한 시간을 통해 인생의 불필요한 무게를 덜어 내고, '참 나'를 통한 가벼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Chapin Mill Retreat Center
8603 Seven Springs Rd, Batavia, NY 14020
Tel.(585) 343-56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