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초 필자는 TV에서 뉴스를 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이 서양인(유럽계)보다 치매에 더 잘 걸리는 이유를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는 내용이다. 아포이(APOE) 유전자의 T형 유전변이가 G형 유전변이보다 치매 발병률이 2.5배 높은데 동아시아인의 70%, 서양인의 50%에서 T형 유전변이가 있다는 것이다. 뉴스에 따르면 동아시아의 치매 발병률이 OECD 평균보다 1.3배 높고, 발병 시기도 2년 이상 빠르다고 한다. 서양인에서 알츠하이머병(신경세포에 엉킨 단백질 덩어리가 보이는 치매)에 취약한 APOE 유전자 변이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던 필자로서는 뜻밖의 사실이다. 다만 변이의 내용은 다른 것 같다.
APOE 유전자는 ε(그리스어 알파벳 ‘엡실론’이다)2, ε3, ε4 세 유형이 있는데 가장 흔한 ε3을 기준으로 ε2는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성이 낮은 반면에 ε4는 높다. 특히 부모 양쪽에서 ε4 유형을 받으면(ε4/ε4) 위험성이 수십 배 높아진다는 게 필자가 아는 바다. 그리고 서양인이 동아시아인에 비해 ε4 유형의 비율이 더 높은 걸로 알고 있었다. 따라서 서양인이 오히려 치매 발병 위험성이 높을 것 같은데 동양인이 더 높고, 그것도 APOE의 유전변이 때문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한번 확인해볼까 하다가 곧 잊어버렸다. 의도한 가짜 뉴스는 아니겠지만···
그런데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10월 31일자에 실린 한 논문을 읽다가 불현듯 이 연구결과가 떠올랐고 아무래도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인의 치매 발병 위험성이 높은 이유는 APOE 유전자가 아니라 다른 데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학술지 <임상의학저널> 사이트에서 논문을 검색해 다운로드받았다. 논문 제목을 보는 순간 필자는 뉴스가 왜곡됐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제목은 ‘APOE ε4 유형에서 T형 변이가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성을 높인다’라고 풀어쓸 수 있다. 먼저 ε2, ε3, ε4 유형과 T형, G형 변이에 대해 알아보자.
전자는 APOE 유전자에서 아미노산으로 번역되는 부분의 염기가 달라 그 산물인 단백질의 구조가 달라지는 변이다. APOE ε4 단백질은 기능이 떨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참고로 APOE 단백질은 지질 대사에 관여한다. 반면 이번에 국내 연구팀이 찾은 T형, G형 변이는 APOE 유전자의 프로모터(promoter) 영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친다. 부모 양쪽에서 T형을 받으면(TT) 단백질이 적게 만들어진다. ε2, ε3, ε4 유형이 단백질 질의 문제라면 T형, G형 변이는 양의 문제인 셈이다. 그렇다면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APOE 단백질의 질이 더 영향을 미칠까 양이 더 영향을 미칠까?
아래 그래프는 유전형에 따른 알츠하이머병 발생 시기 추이를 보여주는데 질이 양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부모 양쪽에서 ε3 유형을 받으면(ε3/ε3) GG, GT, TT에 관계없이 부모 양쪽에서 ε4 유형을 받은 경우(ε4/ε4)는 물론이고 하나씩 받은 경우(ε3/ε4)보다도 발병 시기가 꽤 늦다. ε3/ε4도 GG, GT, TT에 관계없이 ε4/ε4보다 발병 시기가 늦다.
그리고 ε3/ε3는 설사 TT로 유전자 발현이 떨어지더라도 알츠하이머 발생 시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단백질만 똘똘하면 좀 적게 만들어져도 괜찮다는 말이다. ε3/ε4도 TT의 영향은 미미하다. 오직 ε4/ε4만이 GG에 비해 GT일 때 발병이 약간 빨라지고 TT는 꽤 빨라진다. APOE 단백이 부실한 데다 양까지 적으면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급증하는 것이다. 그 결과 ε3/ε3 대비 ε4/ε4의 발병 위험성은 T형의 비율이 높은 동아시아인이 무려 25배인 반면 유럽계는 14배이고, T형의 비율이 낮은 아프리카계는 8배 수준이다.
동아시아인 ε4/ε4 비율은 0.9%에 불과
그렇다면 전체 인구에서 T형 변이가 영향을 미치는 ε4/ε4인 사람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논문에 딸려 있는 보충정보 파일을 다운로드받아 훑어보니 ε2, ε3, ε4 유형의 비율을 정리한 표가 있다. 부모에서 하나씩 받으므로 모두 6가지 조합이 있다. 우리의 관심인 ε4/ε4의 비율을 보면 동아시아인은 불과 0.9%인 반면 유럽계(서양인)는 2%로 2배이고, 아프리카계(흑인)는 3.1%로 3배나 된다. 필자의 기억이 맞았다.
한편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ε4/ε4의 비율은 동아시아인이 8.6%, 유럽계가 14.8%, 아프리카계가 14%로 동아시아인에서 T형이 많아 비율의 차이는 꽤 줄었지만 절댓값은 여전히 동아시아인이 가장 작다. ε4 유형과 T형의 효과를 종합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데이터를 대립형질 빈도(allele frequency)로 재분류한 결과를 전체 인구와 알츠하이머병 환자에서 보면 동아시인은 각각 9%와 29.1%, 유럽계는 14.8%와 39.8%, 아프리카계는 19.3%와 38%다. 따라서 동아시아인의 70%가 T형 유전변이가 있어 50%인 서양인에 비해 치매 발병률이 높다는 설명은 사실이 아니다. 논문에는 당연히 이런 언급이 한 문장도 나오지 않는다. 참고로 70%란 수치는 T형 대립형질의 빈도로 TT인 55%와 TG인 38%(이 경우 1/2인 19%로 계산)를 합친 값(74%)의 어림인 것 같다.
이런 왜곡은 우리나라가 초고령 사회를 향해가면서 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일이 아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치매의 가장 큰 발병 요인은 나이(노화)다. ε4 유형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동아시아인의 83%)도 80이 넘으면 두세 명에 한 명꼴로 치매다. 따라서 현실적인 방안은 치매 발병을 최대한 늦추는 길을 찾아 환자와 가족의 고통과 사회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발병 위험 요소의 경중을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언론의 잘못된 해석을 토대로 정책당국과 대중이 APOE 유전자의 변이를 한국인 치매 발병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인식하면 최선의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소금 섭취량, 여전히 WHO 권고량 2배
그렇다면 동아시아인이 APOE 유전자의 불리한 변이 ‘때문’이 아니라 유리한 변이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유전의 측면을 보면 치매 발병 위험성에 관여하는 또 다른 핵심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런 유전자와 관련 변이를 찾는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환경 요인을 살펴보자. 수년 전 미세먼지가 치매를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그렇다면 미세먼지가 동아시아인의 치매 발병률이 높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영향력은 ‘중국〉한국〉일본’일 것이다. 잠도 중요한 환경 요인이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이나 수면 질 저하는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동아시아인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평균 수면시간이 짧다.
또 다른 유력한 환경 요인이 필자가 지난주 <네이처>에서 본 논문이 다룬 주제다. 지나친 소금 섭취가 인지 장애를 일으키고 치매 발병 위험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동아시아는 장류와 국물 요리가 발달해 소금 섭취량이 많다. 따라서 짜게 먹는 게 치매의 위험 요인이라면 말이 된다. 우리나라는 최근 수년 동안 보건당국의 노력으로 하루 평균 소금 섭취량이 2010년 12.4g에서 2017년 8.8g으로 꽤 줄었음에도 여전히 “5g보다 적게 먹으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량보다 한참 많다. 짠 음식이 많은 일본도 하루 평균 섭취량이 11g에 이르고 중국은 9.1g이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지난 2014년 학술지 <BMJ 오픈>에 실은 논문에서 세계 21개 지역 187개 나라의 소금 섭취량을 조사했다. 2010년 데이터로 만든 지도를 보면 지역별로 중앙아시아가 1위이고, 아시아태평양(선진국)이 2위이며, 동아시아가 3위다. 소금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고혈압을 비롯해 심혈관계질환이나 신장질환, 위암 등의 발병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짜게 먹는 동아시아인은 위암 발병률이 높고 고기와 유제품을 많이 먹는 서양인은 유방암과 대장암 발병률이 높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인의 위암 발병률은 정체된 반면 유방암과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소금 섭취는 정점을 지났고 육류 소비는 급증한 게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두 가지 치매와 다 관련된 듯
그런데 최근 과도한 소금 섭취가 뇌에 영향을 미쳐 인지능력을 떨어뜨리고 치매에 걸릴 위험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코넬대의 코스탄티노 이아데콜라 교수팀은 그 메커니즘을 규명해 지난해 학술지 <네이처 신경과학>과 이번 <네이처>에 연달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작년 연구는 혈관성 치매와 관련이 있고,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있다. 과도한 소금 섭취가 가장 흔한 치매 두 가지 모두의 원인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작년 연구부터 살펴보자.
연구자들은 생쥐를 둘로 나눠 비교군은 소금이 0.5% 함유된 먹이를 주고, 실험군은 소금이 4% 또는 8% 함유된 먹이를 주었는데 사람으로 치면 극단적으로 짜게 먹는 경우다. 8주쯤 지나자 실험군 생쥐의 뇌 혈류량이 눈에 띄게 감소했고, 12주가 되자 미로찾기 등에서 인지 장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짠 먹이를 먹은 생쥐의 소장을 조사해보자 조력T림프구(TH17 cell)라는 면역세포가 많아졌고, 그 결과 이 세포가 만드는 신호물질인 인터류킨-17(IL-17)의 혈중 농도가 높았다. IL-17은 혈관을 타고 뇌에 들어가 혈관 벽을 이루는 내피세포가 일산화질소(NO)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게 했다. 일산화질소는 혈관 벽을 이완시켜 혈류를 늘리는 신호물질이다.
결국 짜게 먹으면 장에 거주하는 면역세포가 증식해 신호물질을 많이 만들어내고, 그 결과 뇌의 혈관이 좁아져 피가 제대로 흐르지 못하면서 산소와 영양이 부족해져 인지 장애가 온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가 심해지면 혈관성 치매가 온다. 흥미롭게도 실험군 생쥐에게 아미노산인 아르기닌(L-arginine)을 먹이자 짠 먹이의 영향이 꽤 상쇄됐다. 내피세포는 아르기닌에서 일산화질소를 만드는데 원료를 많이 공급해 낮아진 효율을 만회한 것이다. 참고로 아르기닌은 건강보조식품으로 쉽게 구할 수 있다.
10월 31일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짠 먹이에 따른 일산화질소 결핍이 과도하게 인산화된 타우(tau) 단백질이 신경세포(뉴런)에 축적되게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타우 단백질은 미세소관이라는 뉴런 내 도로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타우 단백질이 너무 많이 만들어지거나 미세소관에서 떨어져 나가면 서로 엉켜 뉴런 내부에 쌓이는데 이런 단백질을 보면 인산화가 많이 이루어져 있다. 건강한 성인은 타우 단백질 분자에 인산화가 두 곳 정도 일어나 있는데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여덟 곳이나 된다. 짜게 먹으면 일산화질소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타우 단백질의 인산화 반응이 과도해져 알츠하이머병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도 아르기닌을 먹이면 일산화질소 수치가 회복돼 타우 인산화가 억제됐다.
사람 대상 결과는 엇갈려
지난 1월 학술지 <아시아태평양 임상영양학저널>에는 소금 섭취가 인지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리뷰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은 결과가 엇갈린다. 짜게 먹는 게 인지 기능을 떨어뜨린다는 결과도 있고,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과도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아직 이 분야의 연구 건수가 적은 것과 함께 소금 섭취량만의 차이를 보기가 어렵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언급하고 있다. 반면 조건을 통제할 수 있는 동물실험의 경우 짜게 먹으면 인지 기능에 확실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동물실험에서는 실험군의 소금 섭취량이 너무 많고(비교군의 10배 내외) 생쥐의 생리가 사람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해석에 신중해야 한다.
소금 섭취의 농도 효과라는 게 있다. 같은 양을 섭취해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농도가 희석되어 그 영향이 줄어든다. 바꿔 말해 음식을 적게 먹으면 소금의 영향이 커진다는 말이다. 동아시아인은 서양인(적어도 미국인)에 비해 식사량이 적기 때문에 설사 소금 섭취량이 같더라도 그 영향은 더 클 수 있다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치매 유형을 보면 서양인은 알츠하이머병이 압도적인 1위인 반면 동아시아인은 혈관성 치매 환자 비율도 꽤 된다. 이 역시 짜게 먹는 식습관이 치매의 원인이라고 보면 말이 되는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식사량이 줄뿐 아니라 미각도 떨어지기 때문에 짠맛에도 둔감해진다. 따라서 본인은 간이 맞았다고 느껴도 실제로는 소금이 너무 많이 들어갔을 수 있다. 이래저래 소금의 부정적인 영향에 취약해진다는 말이다. 의식적으로라도 싱겁게 먹도록 식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는 이유다.
우리나라 보건당국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소금 섭취 절감 캠페인을 펼쳐 7년 만에 29%를 줄이는 성과를 냈는데 주로 식품업체들이 가공식품에 소금 함량을 줄인 결과다. 크게 생색이 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과 수백만 명이 자신도 모른 채 치매 발병이 수년 늦어지는 혜택을 보고 있거나 볼지 모른다. 앞으로도 꾸준히 캠페인을 진행해 WHO의 권고량 상한선인 5g에 이르기를 바란다.
※ 필자소개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로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고,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