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집 아이들을 함께 모여 키우자며 만든 공동체 주택에 10년 넘게 살고 있다. 시작은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단순한 바람이었다. 단독 주택을 선택하자니 마당도 좁거니와 함께 놀 친구도 없고, 결정적으로 너무 비쌌다. 그렇게 시작한 공동체주택은 우여곡절 끝에 2년여만에 완공되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입주를 해서 지금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여전히 함께 살고 있다. 열 네 가정과 하나의 커뮤니티가 있다고 해서 ‘일오집’이라 이름 붙인 빌라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선물을 받는다. 작은 사탕, 조그만 돌멩이, 달콤한 초콜릿 같은 작은 선물이지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벤트다. 일오집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웃 아이들도 참여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일오집 전체의 트리를 꾸미고 작은 선물을 고르는 것이 하나의 절기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새로운 제안이 올라왔다. 군대에 간 일오집 아이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아이디어.
오, 좋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우리는 집집마다 손편지를 적고 조촐하게 과자를 담아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드디어 선물을 받은 아이들의 메시지가 돌아왔고 일오집 카톡방에 공유되었다.
©facebook.com/USarmy
안녕하십니까, 일오집 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부산으로부터 날아온 소포 하나를 받았습니다. 위병소에서 택배를 가져와 행정반에서 까는 순간, 커다란 박스를 함께 지켜보던 저와 간부님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곧바로 사람들은 누가 보냈으며 왜 이렇게 챙겨주는지, 도대체 제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건지 궁금해했습니다. 한 번에 이들을 이해시키기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저를 함께 키워주신 분들이고 저와 함께 자란 친구들입니다"
가장 사실적이고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대원들과 간부님들께 간식을 나눠드리며 저는 부러움과 놀라움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저를 몇 번 보지 못한 동생들부터 한가족처럼 지낸 부모님들의 편지와 카드는 여자친구가 써 준 편지보다도 감동적이었습니다(지금 제가 할 수 있는 표현 중 최고로 감격스러움을 나타내는 말일 것입니다).
최근, 국군 통수권자로부터 비롯된 사태에 군 내에서는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내어주고 빛을 밝혀주신 덕분에 저희도 헤매지 않고 바른 길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오집 가족들이 있어 제가 어엿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푸짐한 간식, 그리고 응원과 걱정 모두 감사드립니다:)
눈 없이 추운 부산... 그립습니다
한 살 어린, 또 다른 군인아저씨의 글.
잘 지내고들 계신가요? 저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름대로 군생활도 적응하고 병사들과도 잘 지내고 있어요.
추운 날씨에도 방한대책 강구해서 건강도 잘 챙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오집 식구들이 보내준 선물도 잘 받았어요.
정성껏 쓴 편지도 한 장씩 다 읽어보고 과자도 같은 포대(여기는 포병이라 중대를 포대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랑 나눠 먹었습니다.
워낙 양도 많고 맛있어서 병사들 중에서는 저 몰래 훔쳐먹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너무 감사하고, 지금 시국에 기분도 안 좋았는데 일오집 식구들 덕분에 힘도 많이 받았습니다.
추운 날씨에 시위하느라 고생 많으시고 부산은 얼마나 추운지 모르겠지만 건강 조심하세요.
편지를 읽어보니까 최근 일어난 일들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저희 부대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뉴스를 요즘 들어 자주보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폭군이 똥을 싸질러대도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지위를 이용해 아무리 휘두르고 시치미를 떼도 국민들은 속지 않습니다.
결국에 그 거짓은 들통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것이 정치적인 문제라고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표현 해주시기 때문에
저도 힘을 받고 군인으로써 국가를 수호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절이 참혹하다.
그래도 우리들의 12월은 따스했노라고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세상을 구하는 것은 이렇듯 작고 진실되고 친절한 것이다.
옷깃을 여미며 세상에 감사한 것들을 떠올려본다.
첫댓글 일오집~^^
따뜻함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공간이 눈에 보이는듯 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할 줄 아는 아름다운 세상은 진실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곧 따뜻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