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묵상으로의 초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속 집 모양을 따라 세워진 ‘제주 추사관’에는 독특한 형태의 추사 글씨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소창다명 사아구좌’(小窓多明 使我久坐)입니다. ‘窓’이라는 글자 대신 창의 모양으로, ‘坐’에 담긴 두 개의 ‘人’을 놀란 눈의 모양인지? 놀란 입의 모양인지, 네모 두개로 표현한 것에서 추사의 자유로움이 드러납니다. ‘소창다명 사아구좌’는 ‘작은 창에 빛이 밝아 나로 오래 앉아 있게 하네’라는 뜻입니다. 작은 창을 비추는 빛이 밝음보다 맑음으로 다가옵니다. 눈을 찡그리게 만드는 환한 빛이 아니라 마음을 맑게 하는 고요한 빛 말이지요.
촛불을 켜면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촛불 앞에서는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 어떤 등만큼 환하진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촛불은 자기 몸 한가운데 심지를 박고, 녹은 만큼 타오릅니다. 자기를 녹인 만큼 빛이 되기에 촛불은 거짓과 위선을 사릅니다. 촛불은 어둠에 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캄캄하다고 해도 그 캄캄함이 촛불을 꺼트리지 못합니다. 촛불은 어둠을 지워내고, 어둠은 촛불 앞에서 물러갑니다.
어쩌면 2024년은 우리가 보내는 가장 선선한 해일지도 모른다고 하지요.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는 재해를 넘어 재앙처럼 여겨집니다. 인간의 욕심과 탐욕의 결과가 부메랑처럼 거칠게 돌아오는 것이겠지요. 어디 자연뿐이겠습니까?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대신, 바닥이 드러나 쩍쩍 갈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간을 밟고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2024년 대강절에는 ‘위기의 시대를 산 믿음의 사람들’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어쩌면 우리보다 극심한 고난의 시대를 믿음으로 이겨낸 사람들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분투와 인내가 오늘 우리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에 대한 갈망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은총과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심지 끝에 맑고 환한 빛을 밝혀주시길 빕니다.
2024년 대림절을 맞으며
한희철
순서대로 '세한도', '소창다명 사아구좌', 그리고 '제주 추사관' 입니다.